10월의 마지막 밤에
북-미-중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지난 10월 31일 베이징에서 만나 ‘가까운 시기’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북핵 국면이 새롭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의 회담 복귀 배경과 회담 전망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가고 있다.
이른바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방침’을 확고하게 공유하고 있는 한-중은 탕자쉬안 특사의 지난 10월 18-19일 방북을 통해, 양국 ‘대북포용정책’의 ‘레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유보시켜 외교적 해결에 전념할 시간을 벌었고, 한-미, 한-중 간 실무선 논의에서 구체화시켜온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통해 회담 재개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회담 재개의 일등공신은 중국이다. 중국의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10월 12일 부시 미 대통령,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북-미 양정상간 간접대화를 성사시켰다. 그는 10월 19일 김정일 위원장에게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설명했다고 복수의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추가 핵실험 유보’, ‘금융제재 해제 보증시 6자회담 복귀’라는 선물을 보낸 것이다.
그 결과 중국 외교부가 밝힌 바와 같이, 10월 31일 “3개국은, 6자회담을 다시 추진하는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도 깊숙한 의견 교환을 했”으며 “6개국이 편리한 가까운 시기에 6자 회담을 개최한다는데 합의”하게 된 것이다. 관심을 끌었던 회담재개 조건과 관련, 11월 1일 북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6자회담 틀 안에서 조미사이에 금융제재 해제문제를 론의 해결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베이징에서 회담 재개 사실을 발표하면서 북한이 6자회담에 아무런 전제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혀 북한이 사실상 ‘무조건적으로’ 회담에 돌아오는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과 힐 차관보의 발언과 일치한다는 것은 회담 형식에 있어서는 미국의 입장이 관철된 셈이다.
또 “(금융제재 해제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하였다”는 북의 발표는 “우리는 북한이 반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금융제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실무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미국 측 발언과 일치한다. 내용적으로는 북한의 입장이 관철된 것이다. 미국은 ‘무조건 6자회담 복귀’를 관철했다고 주장할 수 있고 북은 ‘사전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금융제재 해결 보증’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셈이니 서로 체면을 구기지 않고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북미 양자대화를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그간 미국 측 입장의 점진적 변화에 고스란히 반영 돼 있다. 당초 미국은 ‘금융제재’ 문제는 불법행위에 대한 법집행 차원의 조치로서 6자회담과 무관하다며, 단지 ‘6자회담 틀 내에서의 양자대화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결론적으로 6자회담 재개 및 금융제재 해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선 금융제재 해제’에서 ‘선해제 보증’으로 양보했고, 이를 취급할 북-미 ‘금융’회담에 대해서는 미국이 ‘선 6자회담 복귀’에서 ‘선복귀 보증’으로 양보한 셈이다(이광길, “북미, 뭘 주고 받았나”, <통일뉴스>, 2006.11.1).
명분과 실리 추구를 위한 미국의 연막전
여기서 주목할 것은 힐 차관보가 10월 21일 예정에 없었던 홍콩을 방문해 마카오의 북한자금 동결문제를 협의했던 사실이다. 그 당시 그의 홍콩방문은 중국의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뒤 그 내용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전해준 직후에 이뤄졌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다행히도 나의 평양방문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평양보따리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는데,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 괴롭히지 않으면 추가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미국이 금융제재 해제 약속을 하면 6자회담에 참여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완강했던 선 금융제재 해제 입장을 완화함으로써 중국의 중재역할에 숨통을 열어준 것이다.
그런데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중국방문을 마치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가핵실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런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부인하고, 또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구체적 언급도 듣지 못했다고 말해 북한의 새로운 제안을 못들은 척 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힐 동아태 차관보를 홍콩으로 파견해 북한의 제안에 대한 구체적 검토 작업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2차 핵실험 유보’, ‘한반도 비핵화 실현 의지’ 그리고 ‘조건부 6자회담 견지’ 발언에 대해서 미국 측이 협상전술로 봐야 한다면서 평가절하 하였는데, 이를 두고 필자는 북한이 6자회담에 들어오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는 분석을 한 바가 있다(배성인, “북핵문제에 대한 올바른 독해”, <현장에서 미래를>, 2006년 11월호).
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새로운 제안에 대한 내부적 검토 작업을 거쳐 중국의 중재로 열린 북중미 3자 회담에 참가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6자회담 재개 합의로 북한은 핵실험으로 빚어진 국제적 비난과 고립, 외교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으며,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사실상 유명무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 더 나아가 금융제재 문제를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별도로 논의키로 합의함으로써 금융제재 해제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미국의 선택은 패배를 피하기 위한 절박함
지난 10월 31일의 7시간의 마라톤 협의와 6자회담 재개 합의에 대한 성과 자체를 두고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 공동소장인 존 페퍼는 “3국이 모두 승리한 ‘윈-윈-윈’ 게임”이란 평가를 내렸다.
북한은 어쨌든 핵을 보유했으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됐고 어려운 중재에 성공한 중국은 명실상부한 ‘동북아의 맹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 역시 오랜만에 외교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존 페퍼에 의하면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겠다는 북한의 결정을 통해 이 결정을 이끌어 낸 미국, 중국과 북한이 모두 승리하는 구도(win-win-win situation)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북한의 회담 복귀는 미국 입장에서는 '10월 위기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계기였고, 중국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중재 노력이 성공한 외교적 성과였으며, 북한으로서도 협상력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 재개가 낳은 효과가 협상 자체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화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해서 대화가 저절로 잘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John Feffer, “North Korea Returns to the Negotiating Table”, http://www.fpif.org/fpiftxt/3660, 2006.11.1)
여기에서 북미 직접대화를 결단코 기피해 왔던 미국이 어떤 이유로, 비록 중국의 중재에 의한 비공식회담이기는 하지만,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나섰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의 기본입장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면서 북한의 일방적 굴복, 즉 6자회담에의 무조건 복귀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한 태도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주변 국가들의 비협조적 태도를 들 수 있다. 이미 “해상검문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중국은 무력에 의한 문제해결 역시 단호히 배격하고 미국에게 오히려 대북강경입장을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한반도 핵문제를 외교적 수단과 대화를 통해 푸는 것이 모든 당사국에 유리하다”면서 “이것 말고 다른 선택은 생각할 수 없다”며 냉정함과 차분함, 신중한 행동을 미국에게 촉구했다.
러시아와는 협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러시아 역시 대북 제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선 북미간 금융제재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며 북미대화를 오히려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초반의 기세는 사라지고 라이스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길은 외로운 길로 전락되고 말았다. 게다가 11월 7일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시 행정부의 강경일변도 대외정책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조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미국은 제재일변도의 대북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탕자쉬안 대북특사의 중재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북한의 선택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다
한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9월 한달 동안 북한에 대한 석유수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북한에 회담 복귀를 압박했고, 미국에 대해서도 북미대화 재개를 강력하게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중국은 10월 18일 북한에 탕자쉬안 특사를 파견해 추가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보도와 달리 탕자쉬안과 김정일의 실제 만남에서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경고 메시지가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동북지역 일부 은행들의 대북 계좌 동결과 북중 국경 일부 지역에서의 철조망 설치 같은 간접적인 압박 전술도 주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지도부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경우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도 북한의 생존 자체를 위협했을 법한 중대한 소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등은 외부관측과 달리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고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전문가들이 전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을 중단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석유나 식량의 대북 공급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전문가들이 밝혔다(연합뉴스, 2006.11.16).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과 압박에 대한 위기감도 북한의 회담 복귀의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북한으로서는 유엔 대북 제재위원회,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그리고 핵테러방지구상 등에 한국, 중국,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이를 완화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최근 ‘6자회담 재개해도 안보리 제재는 계속된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6자회담이라는 마지막 대화 틀마저 없어질 위기를 감지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회담 복귀가 곧 제재 완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해 왔다.
이와 관련하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0월 25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북한이 비핵화에 진전을 이룰 때까지”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 1718호는 유지키로 동북아순방에서 합의했다고 밝혔었다. 안보리가 지난 10월 14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1718호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거부에 따른 제재결의가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포괄적인 제재결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간선거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북한의 회담 복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미국 민주당이 하원은 물론 상원까지도 장악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주장해 온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데에 맞춰 6자회담에 돌아오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압력과 대결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미국 대북정책의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당당하게’ 6자회담에 나오려 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핵보유 국가가 되었으니 협상 테이블에서의 입지가 강화됐다는 것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핵 카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1대 3(미국, 중국, 한국)의 주고받기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핵실험을 통해 유리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유엔 등의 대북제재 압력을 완화시키고 미국의 차기행정부까지 시간을 벌려는 목적도 배제할 수는 없다.
두루두루 살펴 볼 때 이번 6자회담 재개 합의의 최대 승리자는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무조건 6자회담 복귀를 고집하는 미국과 선 금융제재 해제를 주장하는 북한이 각각 반 발자국씩 물러나게 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도록 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다시 한번 과시했기 때문이다.
향후 미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제재와 대결론’보다는 한국, 중국, 러시아 등이 선호하는 ‘대화와 협상론’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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