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재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며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 신장”을 강변하던 정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정권의 관심은 멀어졌지만 인권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민중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진보진영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평화네트워크가 주최한 ‘정부의 북한인권결의안 찬성과 북한인권정책의 방향’ 토론회가 지난 27일 명동 청어람에서 열렸다. 서보혁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이 발제하고 이영환 북한인권시민연합 조사연구팀장,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이승용 좋은벗들 평화인권부장,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사회는 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이 맡았다.
두 머리 한 몸의 유엔
서보혁 연구위원은 정부의 찬성 결정에 대한 국제사회적 배경과 관련해 유엔에서 북한인권 논의가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고 밝혔다. 유엔총회나 인권이사회와 같이 유엔헌장에 바탕을 둔 헌장기구와, 국제인권조약에 기반한 유엔 조약기구가 그것.
서보혁 연구위원은 “헌장기구가 회원국 대표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회원국의 국력과 국익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일종의 권력정치 성격을 띤다”고 지적했다. 회원국인 미국이나 중국의 인권 문제가 한번도 결의안에 채택되지 않은 사실은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유엔 헌장기구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반면 유엔 조약기구의 경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북한에 구체적인 개선 권고를 하는 등 기능적인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조약기구 내 총 4개의 국제인권규약위원회(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해 보고서 제출 등 이들의 요구에 응하고 있다.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정치적 공세”라고 반발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
양 기구의 차이를 분석하며 서보혁 연구위원은 “유엔에서 논의되는 모든 인권 논의들을 순수하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은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정부의 북한인권결의안 찬성 결정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등 정치적 고려의 산물이라는 것이 참가자들의 대체적인 분석. 그러나 “선의의 정치적 고려”라고 밝힌 서보혁 연구위원과는 달리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인권은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낙인찍기’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유엔 결의안은 아무런 효력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박석진 상임활동가의 주장이다.
북핵실험에 따른 국제여론 악화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등 찬성 결정의 실질적인 배경으로 거론되는 사안들은 북한 인권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주장해왔지만, 실제로는 북한 인권에 대해 얼마나 정치적으로 접근해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며 “정치적 접근으로는 인권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북한 인권에 대한 기본 원칙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시했다. △북한 사회 내 인권 침해 발생 개연성이 높지만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대해 면밀히 조사할 필요 △북한 인권 상황을 역사적, 사회구조적 배경에서 파악할 것 △북한 인권 개선의 일차적 주체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 등이다.
그는 “체제 경쟁에서 비롯된 이북의 정치적 자유 제한은 이남의 국가보안법을 통한 정치 사상의 자유 제한과 같은 맥락에 있다”며 “북한 인권과 남한 인권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했다.
개성공단,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과 같은 남북경제협력사업이 북한 인권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성공단은 개혁개방정책의 틀에서 인권정책의 핵심이자 본보기”라고 말했다. 7~8천여 명의 주민과 주민 가족들이 직장을 갖고 이로 인해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이승용 평화인권부장 역시 “노동착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환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인권적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기본적인 입장에는 동의하면서도 “북한 인권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장기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빈부격차 문제에 직면한 선례를 통해, 북한 경제특구가 사회 내부에 미치는 역할과 영향력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인도적 지원의 재개 방안, 국제 사회 및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 접근 방안 등에 대해 토론 참가자와 청중 간 논의가 진행됐다.
한편 토론회에 국가정보원(국정원) 소속 직원 한명이 참석해 박석진 상임활동가가 이를 공개적으로 알리며 자리를 떠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아무리 개인적으로 참석했다고 해도, 최근 ‘일심회 사건’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행태를 봤을 때 사회단체에 대한 부적절한 사찰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보기관의 국내정보수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청 발언 이후 문제의 인물은 쉬는 시간 사이 자리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