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같이 장보고 여행가는 삶이 너무 좋았어요”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146) 정리해고철회·영업정상화 투쟁하는 세종호텔 노동자들 이야기②

고맙다는 인사말이 가장 큰 보람

12월 7일 저녁, 서울 명동역 10번 출구 세종호텔 앞.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일 평균 5천 명을 넘어섰지만, 퇴근을 하거나 쇼핑이나 저녁 약속을 위해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

올해로 세종호텔(대표이사 오세인)에서 근무한 지 21년이 된 최영석 씨(가명)도 불과 얼마 전 까지 비슷한 일상을 보냈다. 운전을 잘 하고 좋아했던 영석 씨는 가족여행 두 달 전에 숙소를 예약하고, 숙소 주변 맛집을 찾아보며 행복감에 미소 짓던 소박한 삶을 살던 노동자다. 10년 동안 임금동결인 박봉에 과중한 업무였지만, 오래된 정겨운 동료들과 영석 씨의 노력을 알아주는 고객들이 있는 세종호텔이 영석 씨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일터다. 한 달 전 그 소중한 일터에서 해고 예고통보를 받은 영석 씨는 그 뒤로 이 호텔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영업정상화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있다.

  12월 7일 저녁,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세종호텔 노동자들 [출처: 연정]

“관광영어 공부를 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일을 했어요. 젊을 때는 3교대 근무하고 주말에 못 쉬는 게 싫어서 호텔에 들어올 생각을 안했거든요. 그러다가 하던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호텔에 지원을 하고 임시직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직원이 3백 명 가까이 됐을 거예요. 손님들도 많고 호텔이 북적북적 했죠.”


열심히 일한 덕분에 3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 돼 레스토랑과 연회장에서 서빙과 고객 응대 업무를 하는 웨이터로 근무했다. 그렇게 10년을 일하다가 객실 관리팀으로 옮겨와서 객실 시설과 안전관리, 청소 업무 배정, 손님 컴플레인 처리 등의 업무를 했다.

“손님 응대 잘 해서 ‘고맙다’ ‘잘 한다’는 인사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어요. 코로나 전에는 객실 손님들의 거의 70% 이상이 일본 손님들이었어요. 일본 손님들은 웬만큼 불편하지 않는 한 한 번 이용한 호텔을 계속 이용하거든요. 자주 오는 손님들한테 알아서 잘 해드리고 하니까 넥타이도 몇 번 받아보고, 과자는 엄청 많이 받았어요.”


단골 손님의 취향을 파악해서 이용 중에 불편이 없도록 서비스 하는 것은 오래 근무한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큰 장점이다. 손님들 역시 영석 씨를 기억하고 일본에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길에 일부러 선물을 챙겨 와서 건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버린 지금, 그때가 참 그립다.

정말 노예처럼 일했어요

“월급이 10년 전 월급 그대로예요. 월급이 깎인 분들도 많았어요. 300만 원 받던 사람이 최근까지도 200만 원도 안 되게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버텼어요. 4대 보험도 되고, 퇴직금도 쌓이고, 연차도 쓸 수 있으니까 버티고 버티고 했는데….”


2011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이후, 사측 주도로 설립된 한국노총 소속 세종연합노조가 교섭대표 노조가 됐다. 세종연합노조는 기존에 민주노총 소속 세종호텔노조가 체결했던 단체협약 ‘비정규직 1년 후 정규직 전환’ 조항과 ‘고용안정협약’을 무효화했다. 그리고 2012년에서 2016년에 걸쳐, 성과연봉제 대상자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는 임단협을 체결한다. 법정 제수당을 포괄하는 포괄임금제가 시행되고,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았다. 20년 이상 일해 온 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회사에 바른 말 하고 민주노조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임금이 반 토막 났다. 그사이 세종호텔은 주차장 관리와 객실 청소, 시설관리 업무를 모두 외주화 했다. 세종호텔노조의 투쟁으로 최근 까지도 정규직이 일하던 객실청소와 시설관리 업무도 지금은 모두 용역업체 노동자가 하고 있다. 이제 남은 정규직 노동자는 40명. 12명 마저 해고가 되면 20여 명이 333개 객실을 가진 세종호텔의 업무를 다 해야 한다. 현재, 손님들이 많이 와도 인력 부족으로 객실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소속)은 “일부 방만 정비를 하고, 나머지 방들은 말 그대로 한 번씩 가서 물 이끼 차지 말라고 변기 물만 내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나중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인원을 너무 안 뽑아서 정말 노예처럼 일했어요. 3명 근무할 건데, 두 명 시키잖아요. 그러면 회사는 ‘한 명도 할 수 있겠는데’ 거의 그런 식이었어요. 인원이 너무 타이트했어요. 솔직히 인원 2~3명 늘어난다고 해서 회사가 휘청거리는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인원을 뽑아서 하자는 건데…. 그래도 회사가 어렵다는데 ‘내가 참자’ 했어요. 회사에서 아무리 부당한 지시를 내려도 저는 어지간하면 그거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항상 지시에 묵묵하게 따른다고 해야 되나.”


코로나19로 호텔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코로나를 핑계로 호텔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정부지원도 마다하면서 정리해고 하는 세종호텔이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난다. 더군다나 대양학원(이사장 최세모)은 충남 당진 목장(공시지가 8백억 원 이상)을 포함해 3천 억 원에 가까운 부동산·건물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대양학원 이사회도 당진 목장 등 수익성이 낮은 부동산을 매각해 수익성 사업에 재투자 한다는 결정(2021년 4월)이 났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오로지 노동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와 영업정상화를 요구하기 위해 마련한 세종호텔지부의 로비 농성장 [출처: 연정]

“작년에 희망퇴직으로 그렇게 많은 인원이 나갔으면 남아있는 인원들은 어떻게든 고용 유지를 해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안 하려고 정리해고를 하잖아요. 그 와중에 또 민주노조 파괴하려고 안에서 갈라치기 하는 모습 보면 안타깝죠.”


세종호텔노조(현 세종호텔지부) 조합원이었던 영석 씨는 복수노조 설립 이후 사측의 압박에 못 이겨 한국노총 노조에 가있다가 최근에 다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노총 사측 노조는 노동자들을 보호해 줄 만한 조직이 아닌 것 같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나갔는데, 국가에서 지원해주겠다는 것까지 다 무시하면서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하잖아요. 회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분명히 회사 말 잘 듣는 사람들만 남기고 다 내보낼 거다. 그래서 엄청 많은 인원이 세종 노조로 다시 돌아왔어요. 회사에서 엄청난 압박을 했고요.”


지난해 말 40명을 모집하는 희망퇴직 공고에 49명이 신청을 했음에도 회사는 올해 계속 희망퇴직 공고를 냈다. 영석 씨는 계속되는 사측의 압박에도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버텼다. 몇 개월 분의 희망퇴직 위로금을 받고 나갔을 때, 기다리는 것은 1년에 한 번 씩 이력서를 들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 온 영석 씨는 이곳을 나가야할 그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육아휴직 끝나고 복귀하는 날 해고

그러자 세종호텔 측은 객실관리팀을 없애고 총무팀 소속의 환경관리과를 만들었다. 회사는 영석 씨를 포함한 희망퇴직 신청을 하지 않은 객실관리팀 노동자들을 환경관리과로 보내 화장실 청소와 쓰레기 정리를 하면서 객실관리 업무를 같이 하게 했다. 희망퇴직을 하라는 압박이었다. 영석 씨는 새롭게 주어진 일을 그저 열심히 하면서 버텼다. 결국 한 달 전에 영석 씨는 해고 예고통보를 받았다. 이런 어이없고 황당한 해고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다른 직원들은 해고 예정일이 12월 10일인데, 저는 조금 달라요. 저는 2월 1일 까지가 육아휴직인데 그 다음날이 해고일이에요. 참 할 말이 없더라고요.”


세종호텔은 정리해고와 관련해 직원 현황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육아휴직 중인 영석 씨에게도 재산세 납부증명서를 요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하지 않던 외국어구사능력평가에 응시하라고 했다. 이에 응하지 않은 영석 씨는 육아휴직 기간 중에 복귀 예정일인 2월 2일 자로 해고 예고통보를 받았다. 단 하루도 근무를 시키지 않겠다는 사측의 강고한 의지와 다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해고 통보를 받은 날, 영석 씨의 육아휴직은 끝이 났다. 불안한 마음에 육아휴직에 전념할 수가 없던 영석 씨는 집과 회사를 오가며 육아와 해고문제 대응을 하고 있다.

  세종호텔 로비 농성장에 있는 피켓 [출처: 연정]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에는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육아휴직 기간에는 그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한다’라고 돼 있다. 그리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을 좀 안다는 어느 사업주가 ‘당신이 육아휴직을 썼으니 해고 한다’라고 공식적으로 해보통보서에 적겠는가. 더군다나 ‘법무법인 세종’ 같은 대형 로펌에서 법률자문을 받는 세종호텔이 말이다. 육아휴직 중 해고 금지 조항은 노동자들의 온전한 육아휴직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인데, 해고 통보를 받는 순간 그 취지는 사라져 버린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은 “휴가 중에는 회사의 정기 인사발령이나 순환보직 시기 도래 등 통상의 인사 관행에 의한 배치전환 외에 해고를 포함한 모든 인사 처우는 부당하다”고 이야기한다. 문재훈 소장은 법적 정당성 유무 이전에 세종호텔 사측의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세종호텔의 이런 행위는 법이 주는 공포 효과와 시간이 주는 방황의 효과 속에서 분리·분열 ·이탈을 노리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법의 승패 문제는 아닙니다. 반드시 이기는데, 이기는 시간을 버티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문재훈 소장)


각오는 노동자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세종호텔이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세종호텔 사측도 각오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그동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이 감추어온 많은 부정부패가 드러나게 돼, 부당한 이익을 취해온 이들이 기득권을 내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과 뜻을 함께 하는 세종대학교 교수·학생·졸업생, 시민들도 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이걸(해고예고 통보서) 받아들고 후회 비슷한 걸 조금 했어요. 아, 희망퇴직을 했어야 했나? 근데 그건 잠깐이었어요. 육아휴직 중인데 해고 통보를 한 거잖아요. 이거는 진짜 못 참겠어요. 정말 못 참겠어요. 이건 정말 아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지만 한 번 싸우자. 그런 심정으로 여기 있는 겁니다.”


인생의 성공보다는 행복을

“뭐 큰 꿈이 있겠어요. 결혼해서 맞벌이 하면서 둘이 열심히 모으고 살면 우리도 중산층 비슷하게는 되지 않을까. 내 차도 한 대 굴리고, 대출이 좀 끼더라도 작은 집 한 채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노동자가 그러하듯이 영석 씨 역시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을 향해 20년 넘게 살아온 영석 씨는 그 꿈이 이루기 힘든 것이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영석 씨의 꿈을 세종호텔이 앗아갔다.

“저는 인생의 성공보다는 행복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이거든요. 월급을 적게 받아도 와이프랑 같이 맞벌이해서 아껴가며 살았어요. 남들 좋은 해외여행 갈 때 우린 국내 여행이라도 짧게 한 번씩 갔다 오고, 같이 장보고, 병원 가고 그렇게 사는 게…. 남들도 그렇게 살지만, 저희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영석 씨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흐느낀다. 세종호텔에서 힘들게 일했던 이야기를 할 때도, 부당한 정리해고를 하는 세종호텔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노동자를 지켜주지 않던 어용노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울지 않았던 이가 운다. 참으로 소중했던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을 떠올리며 울고, 그 소중한 삶을 빼앗긴 분노와 서러움, 그리고 암담함에 운다. 둘째아이를 가진 아내와 첫째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또 운다.

“회사가 자신의 주체하지 못할 욕심 때문에 직원들을 이렇게 벌레처럼 짓밟고 진짜 이렇게 빈손으로 내몰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울음) 제가 잘못한 게 없잖아요. 우리가 물건 만들 때 쓰는 볼트 너트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최소한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정말 기업이면 본인들이 채용해서 일 시키는 직원들의 최소한의 행복은 보장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세종호텔 로비 농성장에 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만든 ‘복직’ 크리스마스 트리 [출처: 연정]

끝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영석 씨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틀 뒤에 열린 집회에서 영석 씨의 못 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석 씨는 ‘1년 후의 나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독했다.

“인생의 성공보다는 행복을 더 중요시하던 너, 지금 행복한지 궁금하구나. 행복하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 엄마,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우리 어머니, 동생, 장인어른, 장모님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너도 건강했으면 좋겠고. 너는 항상 이야기했잖아. 희망 속에 행복이 있다고. 지금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어 즐겁게 살아가면 좋겠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다. 힘내고 씩씩하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랑한다. 일 년 전 집회 현장에서, 최영석 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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