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라고 답한다

[새책] 나는 언제나 술래 (박명균, 헤르츠나인, 2016)

중년의 사내가 눈물을 훔친다. 1톤 탑차 트럭 운전석에 앉은 그는 문방구, 슈퍼, 골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곤 자꾸 울어 버린다. 하루 12시간 동안 30여개의 가게를 돌며 과자를 팔아야 한다. 한 가게에서 물건을 내리고, 흥정을 하고, 상품을 진열하고, 수금을 하기까지 쓸 수 있는 시간은 7,8분이다. 빨리 다음 가게까지 운전해서 이동해야하는데, 그 짧은 순간 누군가의 ‘마음 지문’을 만나 버렸다. 그 느낌을 글로 옮기고 싶다. 초조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몇 줄, 아니 몇 개의 단어라도 수첩에 옮겨 놓는다. 다시 트럭을 움직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메모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트럭을 출발 시킨 날은 밤늦게 집에 돌아와 다시 수첩을 펼친다. 하지만 감정은 이미 날아가고 단어들만 헛헛하게 굴러다니는 걸 발견한다. 그런 날은 그 단어들과 함께 잠자리에 눕는다. 점심은 늘 김밥 한 줄이니, 집에 돌아와 먹는 저녁은 늘 수북하다.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피로와 식곤증이 범벅이 되어 밀려오고, 내일 12시간 쉼 없이 일하려면 빨리 잠들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한 날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단어들과 함께 눕는다. 그렇게 몸으로 써 내려간 63개의 이야기가 <나는 언제나 술래>에 담겨있다.

‘대기업에 잠식당하는 골목 상권’이라는 짧은 말에 다 담기지 못하는 구체적 울분과 땀내 가득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갈 곳 없는 이들이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견디거나 견디지 못하는지, ‘그런 서로’를 어떻게 알아보고 침묵으로 위로 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먹고 먹히는 현실에서 먹히는 쪽이 되지 않기 위해 ‘악마’가 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 죽을 때 까지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자신을 고백한다. 상대적 빈곤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삶에서 가난은 ‘손발이 묶인 나를 쥐새끼가 물어뜯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런 글은 읽기가 힘들다. 열기와 핏물이 남아있는 심장을 꺼내 놓은 것처럼 체온과 비릿한 삶의 냄새가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자나 르뽀 작가들이 어떤 ‘밑바닥의 삶’을 며칠씩 함께 살며 써 내려간 글을 읽는 게 편하다. 생생함을 묘사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발견하며 공감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당사자가 아니기에 발생하는 거리감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명균의 글엔 그런 거리감이 없다. 본인과 이웃의 삶이 그러하듯 독자의 감정을 바닥까지 밀어부친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다. 삶을 설명하거나 분석하려 하지 않고, 현실과 마음을 그대로 묘사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거칠고 가난한 삶은 보통 기자나 르뽀작가 같은 이들을 통해서만 글이 된다. 밑바닥을 사는 이들은 잠자는 것도 돈세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돈이다. 시간도 없고 여분의 기력도 없다.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는 자신의 눈과 언어(권력)를 획득하고 있기 어렵다. 박명균은 스무살부터 생계를 위해 노가다를 시작했고, 지금은 19년째 과자장수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눈과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박명균은 고등학생운동 출신으로 참교육 1세대에 속한다. 경쟁과 입시지옥 속에서 변혁을 외치며, 대학 대신 노가다의 세계로 진학(進學)했다. 그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를 하며 후배들과 몇 년간 고등학생운동을 계속했다. 시멘트 먼지보다 뿌연 미래 속에서, 일이 끝나면 졸린 눈을 부비며 1,000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것도 읽지 않는 것도 늘 두려웠기 때문이다. 90년대 중후반 고등학생 운동의 쇠퇴와 함께 그의 조직도 해산했고, 그는 생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노가다에서 과자장수로 옮겨간 소시민이 되었다.

고등학생운동은 역사적으로 거의 평가되지 않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뜨겁게 진행되었고, 9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91년 5월 투쟁만 보더라도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던진 6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고등학생운동 출신이고, 1명은 고등학생이었다. 또한 80년대 말 전교조 창립, 대규모 해직 과정에는 고등학생운동도 있었다. 학생들은 교육의 또 하나의 주체라고 주장했고,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전교조에 대한 전면적 지지투쟁을 벌였으며, 그로 인해 구속과 퇴학처분을 겪기도 했다. 고등학생운동은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 공개 단체에서 비공개 단체에서 일상적으로 조직하고 투쟁했다.

당시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이 후배들과 학습용으로 많이 읽었던 책 중에 『친구야 세상이 희망차 보인다 (1990, 동녘)』, 『불량제품이 부르는 희망노래 (1989, 동녘)』 가 있었다. 비민주적인 사회와 교육 현실을 담고 있는 책이다. 둘 다 박명균이 10대 였던 고등학교 시절 단독저자, 공동저자로 펴낸 책이다. 뜨거웠던 그 시절, 글 잘 쓰고 우직한 선배였던 10대 박명균은 이제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쫓겨나고 내몰리는 헬(hell) 조선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생활인이 되었다.

그런 박명균이 27년 만에 『나는 언제나 술래』를 들고 나타났다. 컴맹이라는 그가 군살 잔뜩 박힌 손가락으로 반년 만에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숨에 써냈다. ‘글을 쓰지 않고, 과자를 파는 자신이 서운했던’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하명희 작가 덕분이라고 한다. 더 정확히는 하명희의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2014, 사회평론)』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당시 고등학생운동을 면밀히 묘사한 소설로 <2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 했다. 하명희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당시 해직되었던 전교조 선생님들도 복권이 되었는데, 그때 학교에서 쫓겨났던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왜 아무도 그들의 삶을 물어주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역사는 관심을 갖지도 묻지도 않았지만, 박명균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답한다. 그때처럼, 사회의 바닥을 밀도 높게 채우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목소리를 소환해서 세상에 직구를 던진다.


노가다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바닥을 밟고 있어서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바닥에 뭐가 있든 우리는 그 바닥을 밟아야, 그 바닥을 밟고 걸어야 하루 일당을 번다. 우리가 넘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124쪽

장사꾼들이 그 (뭉칫)돈을 세어보고 또 세어보는 그 이유를 안다. 경제용어로는 손익분기점을 따진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살아도 되는지, 죽어야 하는지 세어보고 있는 거다. -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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