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마차는 달려간다

[파견미술-현장미술] 대추리의 마지막 밤 그리고


2009년 용산참사 현장에는 낡고 신기한 차가 한 대 있었다. 참사 직후 경찰들의 철통같은 방어벽을 뚫고 남일당(용산참사 건물)과 레아(고 이상림의 가게가 있던 건물)를 지켜준 자동차다. 이 차의 이름은 ‘꽃마차’, 이 차의 주인은 군산에서 활동하는 평화바람과 문정현 신부다. 꽃마차는 2005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당시 대추리 마을에서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었다. 꽃마차에는 여전히 2005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대추리 투쟁이 끝나고 지칠 대로 지친 문정현 신부는 용산참사 현장으로 꽃마차를 타고 왔다. 꽃마차 안에는 최소한의 음향시설과 거리노숙으로 고단한 신부님과 평화바람 활동가들이 쉴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2007년 2월 13일 정부의 강압에 시달리던 대추리 주민들은 결국 정든 마을을 떠나야 했고, 마지막 촛불문화제를 대추분교가 있던 자리 바로 옆 농협창고에서 진행했다. 서러움의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대추리는 텅 빈 마을이 되어 늙은 신부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대추리의 마지막 밤. 어두운 밤 대추리 황새울 벌판이 고요하다. 빈집들 사이로 모닥불이 보인다. 가까이 보니 모닥불이 아니다. 빈집에서 나온 폐가구들을 태우는 중이다. 불빛 사이로 하얀 수염의 문정현 신부가 울고 있다. 불꽃은 하늘로 튀어 오르고 신부의 눈물은 흙 속으로 스며든다. 어느 샌가 신부님은 꽃마차에 올랐고 음향을 최대로 키웠다. 스피커의 방향은 어둠 속 보이지도 않는 미군 부대 쪽이다. 울부짖으며 소리를 치신다. 영어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가슴 속 응어리진 이야기를 하시는 모양이다. 밤새도록 황새울 벌판은 신부님의 눈물과 분노 섞인 함성에 깨어있었다.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그 밤은 잊히지 않는다.

꽃마차는 문정현 신부의 역사다. 파견미술팀은 역사의 한 장면을 다시 그리기로 했다. 용산 참사현장에서 나오던 즈음 신부님과 약속했다. 꼭 그림 그리러 군산에 가겠다고. 그리고 차일피일 약속을 지키지 못하던 파견미술팀은 2010년 12월 20일 드디어 꽃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자동차 색칠을 하기에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한 해를 넘기기엔 죄스러운 마음이 컸다. 군산으로 가는 길에 디자인 논의를 했다. ‘뺏지카’로 만들어 보자. 온갖 투쟁현장에서 만들어 낸 뺏지를 모아놓은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낸 이름이다.

눈이 많이 내린 군산은 길이 얼어 있었고, 날이 너무너무 추워 야외작업이 무리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군산 미군 피해상담소에 있는 구중서의 도움으로 군산공항 근처에 있는 카센터 수리창고를 빌려 실내작업을 할 수 있었다. 5시간 작업하고 밥 먹고, 5시간 작업하고 밥 먹고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야간까지 작업했다. 모두 힘들 때면 서로에게 힘을 주는 말로 기운을 북돋우며 대략 16시간 만에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물론 야간작업으로 잠을 못 자서 눈이 퀭하게 들어갔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5시간 작업하고 밥 먹으러 식당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작업하던 이윤정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쳤다. 다들 왜? 왜! 하며 쳐다보니 꽁꽁 언 길바닥 얼음 속에 5만원 지폐가 숨어 있는 것이다. 다들 우르르 몰려가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고생한다고 하늘에서 선물을 준 모양이다. 모두 배도 부르고 돈도 주워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수면 부족에 추위로 힘겨울 만도 한데 파견미술팀은 늘 즐겁다. 함께여서 그런가 보다.



지금 수명을 다한 꽃마차는 신기하게도 돌고 돌아 평택 대추리 이주 단지 안에 있다. 더 이상 움직이는 꽃마차는 아니지만, 대추리의 상징처럼 마을 운동장에 역사를 품고 서 있다.

자동차 도색작업이야기를 하다 보니 2013년 쌍용자동차 ‘H-20000 프로젝트’도 생각나고, 안산공단 지역 노동자들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렸던 ‘나눔의 트럭’도 생각이 난다. H-20000 프로젝트는 쌍용자동차 투쟁 이야기 중에 묶어서 전하기로 하고, 나눔 트럭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2013년 6월 어느 날, 철폐연대 김혜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SJM노조 투쟁 당시 투쟁 물품을 나누던 트럭을 안산공단 지역을 다니며 노동상담도 하고 커피도 나누어 마실 수 있는 차로 만들고 싶다며 트럭에 예쁘게 그림을 그려 줄 수 있냐는 것이다. SJM노조에 연대 현수막 그림 그리기와 본사 정문 앞 농성장을 함께 디자인했던 인연으로 부탁해온 것이다.

파견미술팀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물색하다가 이주 단지 대추리에 있는 창고를 생각했다. 사전에 공간사용 요청을 하고 안산에 연락했다. 평택 대추리 평화 마을로 와 달라고. 트럭을 몰고 한걸음에 달려온 안산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트럭을 제2의 꽃마차로 변신시켰다. 지금은 안산 어디에서 멋지게 달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계속]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문화연대가 발행하는 이야기 창고 <문화빵>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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