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 데울 시간도 없던 그 시절, 여산휴게소 노동자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40)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 노동자들 이야기 ①

고속버스 기사들에 대한 대우가 하늘을 찌를 때

10월 14일 오후,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천안방향 여산휴게소 앞. 평일이지만 주차장에 승용차와 화물차가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햇살 좋은 나른한 가을 오후, 밀려오는 졸음을 쫓고 출출함을 달래려는 시민들이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휴게소 화장실을 다녀온 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야외 열린 매장으로 향한다.

“뭐 먹을까?”

휴게소에 들른 시민들이 호두과자와 오징어, 핫바, 커피 매장 앞을 서성이며 메뉴를 고른다. 발열·방문체크를 하고 휴게소 건물 안에 들어가 편의점에서 음료 등 간식거리를 사거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여느 휴게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모습이다.

여산휴게소는 1977년에 설립돼 45년의 역사를 가진 호남고속도로의 대표적인 휴게소 중 하나다. 전성기 시절에는 수도권·충청권―광주·순천 등을 오가는 고속버스 대부분이 정차해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위치한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 상행선 [출처: 연정]

“저 입사할 때만 해도 정말 주차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꽉 찰 정도로 고속버스가 엄청 많이 들어왔었어요. 실시간으로 내리는 손님들로 북적북적 했죠. 큰길 우동이나 어묵이 정말 많이 나갔어요. 명절 때는 어묵이 데워질 시간이 없었어요. 우동 코너 앞에 스탠드 테이블이 있었는데, 승객들이 그냥 서서 먹고 가요.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은 가져가서 차 안에서 드시기도 하고. 우동 면 해동만 되면 육수 붓고 건더기 블록 하나 넣어서 바로 나갔거든요. 굉장했어요. 어묵도 김치 공장에서 쓰는 플라스틱 박스 큰 거에 48개씩 들어있는걸 거의 들이 붓다시피 했으니까요.”


최은아 씨(공공운수노조 전북지역평등지부 여산휴게소분회 분회장)가 입사 당시인 90년대의 여산휴게소를 회상한다. 갑자기 직원이 그만뒀다고 며칠만 아르바이트 해달라는 지인의 요청을 받고 “아, 싫은데…” 하며 와서 일한 게 23년이 됐다.

“무료식사를 포함해서 고속버스 기사들에 대한 대우가 하늘을 찌를 때였어요. 무료식사는 물론이고 명절이 되면 선물도 나가고 했거든요. 기사님들 드시는 식당에 우리는 얼씬도 못하고.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전혀 없죠. 도로공사 지침이기도 하고.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또래 여직원들이 많아 재미있게 잘 지냈어요. 일 끝나면 나가서 술 먹고 놀기도 하고….” (최은아 분회장)


최은아 씨는 그 때 그만큼 대중교통 이용자가 많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만큼 회사는 돈을 많이 벌었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길고 노동 강도가 높았을 때다. 그렇게 30년에 가까운 이른바 리즈시절(지나간 전성기)을 보내고, 2000년 대 초반 서해안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여산휴게소 이용자는 줄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안알밤휴게소가 고속버스 환승휴게소로 지정(2010년)되면서부터 일부 심야버스를 제외한 고속버스는 더 이상 여산휴게소에 정차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고속버스의 빈자리를 승용차와 화물차가 메우면서 여산휴게소는 여전히 호남고속도로 대표 휴게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0월 14일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최은아 분회장 [출처: 연정]

한국도로공사 휴게소 99%가 민간위탁 운영

여산휴게소는 한국도로공사가 관리·운영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 소속이 아니다. 현재 한국도로공사가 관리·운영하는 전국 고소도로 휴게소는 199개이며, 이 중 3개 휴게소(하남 만남의광장·문막 인천방향·문경 양평방향)만 도로공사가 직접운영 하고 있다. 도로공사 직접운영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98.5%에 해당하는 196개 휴게소는 한국도로공사가 입찰을 진행하여 낙찰된 민간업체가 위탁운영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휴게소 운영업체로부터 매출액에 따라 0.1~23% 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운영업체는 휴게소 내 외주 업체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데, 식품이나 식당의 경우 수수료가 매출액의 40~50%에 달한다.

2019년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민간위탁 운영으로 소비자인 휴게소 이용자가 도로공사의 임대료와 위탁업체의 운영비가 포함된 높은 음식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바 있다. (5천 원에 판매되는 라면이 대표적인 사례) 우 의원은 휴게소 판매 상품의 적정 가격과 품질·위생 등의 서비스 질을 향상하여 휴게소 관리·운영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도로공사가 휴게소를 직접 운영케 하는 ‘한국도로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휴게소 직영법)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여산휴게소 역시 한국도로공사가 민간업체에 위탁하여 운영되고 있는 휴게소 중 하나이다. 40년 동안 여산휴게소를 운영해온 업체는 (주)큰길(구 해태관광)로, 2017년에 분뇨 무단방출 등 관리부실로 계약해지 됐다. 그 뒤에 (주)한남상사(대표 이해창. 동서식품·농심 등 식품을 유통하는 업체)가 새로운 운영 업체로 선정돼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휴게소. 2층에 한남상사 사무실이 있다 [출처: 연정]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

업체 변경 후 채 1년도 되지 않아 10~20년 이상 일해 온 기존 노동자 50명 중 절반이 여산휴게소를 떠났다. 남은 노동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거죠.”


최은아 씨는 처음 경험한 업체 변경에 대한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예전이라고 다 좋았던 건 아니다. 세월이 흘러 힘든 기억이 옅어지기도 했을 거다. 지금은 코로나19 등으로 예전만큼 경기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지 않느냐고 은아 씨는 이야기한다. 한남상사가 위탁 운영을 맡은 이후 여산휴게소에는 임금 문제를 포함한 노동조건 저하와 인권침해·직장 내 괴롭힘·갑질, 부당노동행위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7년부터 시작된 문제들이다.

“여산휴게소는 2017년 12월 운영업체가 변경되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 입찰 규정에는 운영업체 변경 시 고용 승계와 근로 조건이 저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한국도로공사가 수수방관 하는 사이 여산휴게소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근로 조건이 하락하였습니다.”

휴게소 주차장에 서있던 방송차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 조합원 단결하여 임단협 투쟁 승리하자’ ‘노동탄압 중단하고 살맛나는 일터 보장하라’ 휴게소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도 눈에 들어온다. 여산휴게소 노동자들은 ‘임단협 승리’라고 적힌 리본을 달고 일하고 있다. 2021년 임금 단체협상에서 한남상사는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최저임금의 1.5% 임금인상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되면서 노동조합은 쟁의행위를 가결하게 되었다. 실제 노사 간의 임금인상 금액 차이는 노동자 1인당 월 5천 원에 불과하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각 매장에서 업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 명 두 명 나오기 시작한다.

길이 좋지 않아 덜컹거리는 45인승 버스로 장시간 동안 고향을 오가던 때. 10분 남짓 정차하는 동안 즉석 어묵과 우동으로 허기를 달래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여산휴게소는 여전히 특별한 추억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그 추억의 시간을 기억하며, 여전히 이곳에 방문하는 이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일하고 있는 여산휴게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도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행을 떠나고 고향에 가는 이들의 휴식과 요기를 위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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