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명의 동료들 꼭 다시 웃으면서 얼굴 보고 싶어요”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142) 대성산업 본사에서 고용승계 요구 단식농성 하는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 ② :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송인환 씨 이야기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거라도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일은 하면 되는 건데, 마음은 또 다르더라고요. 위에서는 그냥 앉아 있어도 정신적인 압박이 밑에 보다 더 하잖아요. 나도 도움이 안 되더라도 우옛든 위에서 같이 해야 되는데….”


11월 1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앞에서 만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송인환 씨(전국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소속)는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고 했다. 송인환 씨는 대성산업 본사가 있는 디큐브시티 11층에서 농성을 하다가 대성산업 측과 노동자 두 명이 내려가는 조건으로 침낭과 식사 반입을 하게 해주겠다는 합의를 하면서 밑으로 내려오게 됐다. 평소 몸이 안 좋은 인환 씨에 대한 동료들의 배려이기도 했다. 그런데 두 명의 노동자가 내려가자마자 대성산업 사측은 말을 바꾸었다. 대표가 안 된다고 했다며, 식사와 침낭은 물론이고 마스크와 혈압약 등 의약품도 못 올라오게 했다.

“내가 왜 내려왔을까? 500일 가까이 이렇게 같이 하다 보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버티지 몬할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같이 있었으면 마음은 더 편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요. 일 할 때부터 거의 매일 같이 생활하다 보니까 이젠 서로 눈빛만 봐도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거든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11층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인환 씨는 하루를 더 바쁘게 움직인다. 기자회견이나 집회에 참석해 사진 촬영을 하고, 연대오는 이들을 챙기고, 필자처럼 취재 오는 이들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는 역할도 한다. 지하 로비 농성장을 살피러 오가기도 하고, 이따금씩 11층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동료에게 손을 흔들기도 한다. 지하 로비 농성장은 연대오는 이들이 머물고, 인환 씨는 같은 해고노동자 송해유 씨와 함께 디큐브시티 앞에 마련한 천막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대성본사가 있는 디뷰크시티 앞 한국게이츠지회 천막농성장 [출처: 연정]

송인환 씨는 타이밍벨트·마이크로벨트·오토텐셔너 등 자동차와 산업용 동력전달 벨트를 생산하던 한국게이츠 오토텐셔너 조립 공정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해왔다. 한·미·일 법인이 합작 투자해 1989년 설립된 한국게이츠를 2013년에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인수했다. 한국게이츠는 코로나19에도 휴업이나 정부 지원금 없이 운영되던 연 평균 52억 원의 흑자 회사였다.

인환 씨는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2020년 6월 26일 오전 10시. 회사가 갑자기 다른 날과 다름없이 출근해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식당으로 모이게 했다.

“2020년 6월 26일 한국게이츠는 금일 부로 한국 내 제조 시설을 폐쇄하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한국게이츠는 2020년 6월 26일 부로 한국 내 제조 시설 폐쇄와 함께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채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폐업 공고문을 읽고 바로 나가버렸다. 영문도 모르고 식당에 모였던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멍’한 상태로 한동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일방적인 통보에 노동자들은 항의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500일이 넘는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공장 재가동의 희망을 꺾어버린 대성산업

“처음에는 그냥 겁을 주려고 그러나 생각했어요. 근데 이게 사실로 다가오니까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게 과연 맞나 고민도 들었고요. 재가동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20년 동안 일만 열심히 해온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나가야되나 생각도 들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남겠다고 하는데, 내가 그냥 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남았습니다.”


인환 씨는 1년 넘는 투쟁 기간 동안 동료들의 많은 배려와 도움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며, 19명의 동료들을 꼭 웃으면서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공장 안에 설비랑 기계가 있기 때문에 잘 보존하면 다시 돌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근데 10월 말에 큰 차가 와서 장비들을 싣고 나가는 거예요. 희망이 사라지기 시작했죠. 대성산업이 갑자기 나타나 땅을 매입하면서 재가동이라 카는 목표를 사라지게 한 거예요. 20년 동안 일한 이 공장이 눈앞에서 없어지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인환 씨는 140명 노동자의 손때 묻는 기계가 공장에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막지 못한 게 가슴 아팠다고 했다. 한국게이츠가 19명의 해고 노동자에게 한국게이츠의 흑자·위장폐업에 항의하며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3억5000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한국게이츠는 김앤장 변호사가 대리한 사건을 김앤장 출신 판사가 처리하게 하여 노동자에 대한 부동산가압류 결정을 인가하게 했다. 인환 씨는 손배가압류 때문에 이사를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성산업 본사가 있는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앞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송인환 씨 [출처: 연정]

송인환 씨는 11층에서 농성을 하면서 대성산업 고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대성산업이 인수하는 바람에 우리의 실낱같은 희망이 흔들려서 많이 갑갑했는데, 그 고문이라는 분이 이런 문제가 있어서 아무도 안 사려고 하니까 헐값에 매입을 했다고 하는 거예요. 땅만 사고 공장을 안 돌리겠다고 하고…. 너무 충격적이었고 마음이 아팠어요. 국내 큰 기업이라고 하는 곳이 우리 19명 노동자의 작은 희망을 꺾어버린 거죠.”


끝을 보자는 각오로 올라와

공장 재가동을 위해 투쟁한 것인데, 대성산업은 이를 이용해 공장 가동 계획도 없이 ‘헐값’에 공장 부지와 건물을 인수했다. 대성산업의 부동산 투기를 위해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500일 동안 투쟁을 해온 것이 아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올라왔는데, 대성산업은 노동자들과 대화는 하지 않고 물품 반입을 막는 등 제재를 가하는 행동 이외에는 노동자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인환 씨는 이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대성산업이 직접 고용문제를 책임지든지, 블랙스톤을 압박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든지 대성산업이 결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대성산업 본사가 있는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11층에서 점거농성 중인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노동자 [출처: 연정]

“여기 있다는 얘기는 안 하고, 처음에 이틀 정도 있었던 꿀잠(노동자 쉼터)에 있다고 해요. 화상통화 해보자카면 바빠서 안 된다 하고. 사진이라도 한 번 보자 카면 백화점 쪽 사진을 보내주면서 ‘이렇게 편한 데서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래 해요. 어린 아이들이 있는 분들은 ‘언제까지 갈게’ 이렇게 달래가면서 버티고 있는 거죠.”


인환 씨는 대구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잘 지내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장갑을 끼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던 시절이,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에 동료들과 웃으며 이야기 나누던 시절이 많이 그립다.

“이번에 19명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후회 없이 싸워보고 끝을 보고 가자는 각오로 올라왔어요. 이렇게 한 마음 한 뜻이 되면 잘 안 되겠나 라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분들, 건강 잃지 말고 마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9명 동료들 꼭 다시 웃으면서 얼굴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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