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가 당신의 말을 듣겠습니다

[질문들]


어떤 이상한 답변

‘핼러윈과 관련해서 범죄 예방 목적으로 전체적으로 배치했다. 인파 관리를 위해서 배치한 것은 없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국정조사에서 한 말이다. 국정조사를 보지 않은 사람이 이 말을 글로 읽는다면 무엇을 예상할까? 10만 이상 몰리는 인파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말에는 어떤 마음과 태도가 담겨야 할까? 미리 대비했더라면 참사를 막거나 최소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반성이나 회한 또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실제 이 말을 한 맥락까지 보면 오히려 항변, 변명의 느낌이 짙었다. 질문의 의도와 다르게 대답은 묘하게 어긋났다.

서울경찰청장은 국정조사에서 경찰 배치가 필요한 위험을 예견하고도 배치하지 않은 점과 참사 발생 초기 경찰의 대처가 늦은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받았다. 문제를 지적받을 때마다 서울경찰청장은 ‘인식하지 못했다’란 답변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사전 인지와 보고가 있지 않은 한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도 했다. 끊임없이 ‘다중운집에 대한 안전대책은 계획하지 않았고 인식이 없어서 빠르게 지휘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다 보니 너무 이상했다. 위험을 예견했건 안 했건 대비에 실패했고, 인식했건 안 했건 참사 상황 대처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 실패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책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몰랐다’는 사실이 책임을 덜 수 있다는 듯 당당하게 말한다. 대비하지 않았(못했)기 때문에 참사가 된다. 참사 대비와 대처를 신의 영역으로 놓는다면 참사는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된다. 서울경찰청장이 범죄 예방을 위한 경찰계획을 세우는 것도 범죄 발생을 신처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이상한 건, 이런 말을 하고도 서울경찰청장 자리에 그대로 있는 현재의 상황이다.

어떤 이상한 질문

말도 안 되는 질문이나 딴지에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애를 써서 설명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그랬다. 지난 3월 21일 159번째 희생자 이재현 님의 100일 추모제가 있었다. 그는 다행히 생존했지만, 친구를 잃은 슬픔과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 등의 2차 가해를 겪으며 괴로워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날 고인의 어머니는 아들을 비롯한 피해자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떠난 지 100일째에도 여전히 아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그 말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참사 이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한 건 ‘놀러 가서 죽었는데 왜 국가에서 배상해야 하는가?’라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놀러 가서 난 사고라는 말에 유가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왜 그곳에 갔는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런 힐난 속에 배상은 말도 꺼낼 수도 없다.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말보다 비난의 말이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이런 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가해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미나 창원시의원의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막말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며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 유가족 모두를 위축시키는 말, 159번째 희생자에 대해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 좀 이런 생각들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며 피해자를 탓하는 한덕수 총리의 말.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척도, 슬픔에 대해 공감하는 척도 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참사의 책임을 묻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장책임자에게만 전가된 꼬리 자르기 특수본 수사와 참사의 구조적 원인 규명으로 나아가지는 못한 국정조사로는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해의 말을 만드는 시선

핼러윈 축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은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놀이고 문화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분장하고 회사에서도 직원이 즐기도록 파티를 열고 가족 단위로 핼러윈 분장이 가득한 거리를 구경하기도 한다. 기업은 핼러윈 마케팅에 여념이 없다. ‘놀이’를 즐기기 위한 행동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벚꽃놀이에, 불꽃놀이에 거창한 의미가 있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핼러윈 축제가 못마땅한 감정은 각자의 것이니 마음에 두더라도 참사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일터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일을 한 노동자를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경찰과 구청의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경찰의 시선은 범죄와 교통마비에, 구청의 시선은 쓰레기 투기와 소음에 집중됐다. 10월 28일 주요 언론은 핼러윈과 마약을 연결 짓는 기사를 냈다. 이틀 전 경찰이 작성한 〈2022 핼러윈데이 종합 치안 대책〉에 있는 마약 등 범죄 예방 활동의 내용이 보도됐다. 경찰의 치안 대책은 이태원, 홍대, 강남에 인파가 몰리고 112신고가 급증할 것이 예상되기에 교통질서를 관리하고 마약, 폭력, 성범죄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에만 집중한 경찰의 시선은 위험의 징후가 드러났을 때 그 위험을 간과하게 했다. 구체적 위험을 알리는 시민의 신고는 무시됐고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도 못 했다.

시민이 축제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단속하고 통제하겠다는 국가의 태도로 놀이는 더 부정적인 것이 됐다. 범죄와 무질서라는 시선을 강조할수록 시민에게 자유롭고 자율적인 축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핼러윈 축제에 가본 적은 없지만 올해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가 열리길 바라고 함께 하고 싶다. 그러나 경찰의 통제가 아닌 시민의 자유로운 놀이를 돕는 경찰의 협력과 지원을 바란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축제를 위해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선 10월 29일 국가의 실패가 무엇이었는지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부터 들어야 한다. 이것이 진상규명의 과정이다.

이제는 피해자의 말을 들어야 할 시간

아직 말하지 못한 희생자의 가족과 생존자들이 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친구 신홍누리 님이 159번째 희생자 100일 추모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안전하게 나의 피해를, 나의 아픔을 이야기하려면 그 사회가 나의 아픔에 공감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이 세상에서 어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가 먼저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해야 할 때다. 구조 신고를 외면했던 귀가 아니라 비난을 보내는 시선이 아니라 힐난의 말이 아니라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위로의 마음으로 안아줄 우리가 있다고 먼저 말해야 한다. 그들이 말하고 우리가 들을 때 진상규명도 가능하다.

〈덧붙임〉
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에서는 그날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재난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곁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를 기억하는 생존자, 구조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연락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었다. 카카오톡 채널 : 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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