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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틈에서 자라난 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50) - 고들빼기

좁은 길을 넓히면서 그 우람하던 가중나무를 무참히 베어버렸다. 당당하던 가중나무 검은 줄기가 전기톱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하게 댕강댕강 잘려나갔다. 콘크리트로 싹싹 발라버려 그 나무가 섰던 자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람이 다니던 흙길은 이제 차가 다니는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가중나무가 베어진 자리에선 금방 시들고 말 헛된 욕망이 자라나고 있다.

'새 길이 나서 차가 잘 다닐 수 있으니 우리 살림살이도 나아지겠지. 장사도 더 잘될 거야. 혹시 집 값이 오르지나 않을까' 하는…….


이미 오래 전 콘크리트로 포장된 옆 골목길 구석구석엔 고들빼기가 자라나 꽃을 피우고 있다. 쓰레기봉투 옆에서 너무나 싱싱하게 꽃을 피웠다. 담장 위 틈에서도 여럿 자라 올라 꽃을 피웠다. 콘크리트 작은 틈에 어찌 그 큼직한 뿌리를 내렸을까?

그저 흙먼지 조금 가지고도 이렇게 싱싱한 꽃을 피울 수 있다니! 가중나무가 베어지는 데 한 마디 항의조차 하지 못했던 무기력함에 돌아서서 절망하지 않았던가. 절망스러웠던 굳은 콘크리트 틈새에서 고들빼기는 자라나 희망을 꽃 피우고 있었다.

고들빼기는 씀바귀랑 닮았다. 자라는 때가 같고 자라는 곳이나 모양새가 비슷하다. 노란색 꽃이 닮았다. 줄기나 잎 뿌리에서 흰 즙이 나오고 그 맛이 쓴 것도 닮았다. 그 쓴맛 때문에 고들빼기를 쓴나물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고들빼기는 씀바귀에 견주어 줄기가 더 굵고 잎도 더 억세어 보인다. 또 뿌리도 더 굵다.

고들빼기는 가을에 뿌리내리고 겨울을 견뎌내고 봄에 줄기가 자라 꽃이 피기 시작해서 여름까지 꽃을 피우는 두해살이풀이다. 가을에 연한 잎과 뿌리를 캐서 김치를 담그는데 큼직한 뿌리로 담근 고들빼기김치를 한번쯤 먹어보았을 것이다. 그 씁쓰름한 고들빼기김치를 떠올리면 입에 침부터 고인다. 고들빼기김치에 더운 밥 한 그릇을 먹으면 힘이 불끈 솟는 듯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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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들꽃 , 고들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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