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은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인의 미래를 미국에게 팔아넘기더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생명의 생사여부도 미국에게 맡기고 있다. 이번 피랍사태에 아프간 정부, 한국 정부, 탈레반은 등장하지만 정작 그 배우들을 출연시킨 깡패국가(Rogue State) 미국은 피랍사태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야기는 분명히 해 두자. 1979년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미국은 탈레반을 도왔다. 아프가니스탄이 미소 포스트냉전의 볼모로 잡혀 있을 때 미국은 구소련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탈레반의 저항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 탈레반이 이제는 미국에 의해 테러무장단체로 낙인찍힌 사태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라는 속설과 전혀 무관한 사태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 부시정권의 군사전략 변경이라는 맥락을 누락시킨 채 앰한 이야기만을 늘어놓을 수는 없다. 그 맥락이란 바로 1997년 7월 통합참모본부 의장 명의로 나온 <국가군사전략 - 형성, 대응, 준비 - 새로운 군사전략>, 1998년에 발표된
미국은 전쟁 개념을 대규모지역분쟁에서 대규모전역(戰域)전쟁으로, 다시 소규모긴급사태작전으로 변경시키면서 전쟁의 이미지를 탈바꿈시킨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상징 - ‘테러’ 혹은 ‘테러전’이라는 단어 - 을 기가 막힐 정도로 부각시킨다. 자국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전쟁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바꿔치기하여 제국주의적인 침략을 정당화시키는데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2001년 9.11 사태는 그 테러라는 상징효과를 극한으로 몰고 간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테러전쟁이 아니고, 이번 한국인 피랍사태도 그 책임을 탈레반에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갈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배형규 ‘목사’가 먼저 처형되었다고 해서 화살을 그 곳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과 오해는 미국이 과거 국가와 국가 간의 대칭적인 전쟁을 국가와 비국가(테러조직, 국제범죄조직, 게릴라 등) 간의 비대칭적인 전쟁으로, 전쟁의 이미지를 바꾼 효과 때문에 생겨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를 알고도 눈감은 것인지 그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후방 지원을 일삼다가 정권 말기에 큼지막한 사고를 계속 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같은 경제적인 사고에 이어 자이툰부대 파병, 이번 피랍사건 등 군사적인 사고까지 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다국간 안보강화란 것도 결국엔 동맹국의 부담을 늘리고 자국 미국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발상이고 부대 파병 시 후방 지원만 하라는 것이 미국의 군사적 의도인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국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휘두르다가 결국 큰 사고 한 번 더 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번 피랍사태는 피랍사건도, 피랍사고도 아니다. 자동차추돌‘사건’도 음주‘사고’도 아니다. 이번 피랍사태는 앞서 말한 미국의 바꿔치기 전략처럼 ‘사고의 군사화’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퍼부은 돈이 1조 달러에 이르고 대아프가니스탄 작전에 최초 1개월만 해도 18조 원을 퍼부었던 사실을 기억해 보자. 미국은 전시국채까지 발행해 가면서 아프가니스탄 부흥비용을 250억 달러로 잡았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국을 아프가니스탄에 끌어들인 의도는 분명하지 않은가.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한 편으로는 자국 미국의 부담을 줄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저강도전쟁(LIW)을 통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자, 제국주의적인 침략으로 돌아가야 할 시선을 탈레반에게도 돌리는 것뿐이다.
앞에서도 암시했듯이 미국의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소규모긴급사태작전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도 쌓이면 그것도, 지구 구석구석에서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대규모가 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이 한 명이든 소규모이든 계속 미국과 한국 및 노무현정권의 공모 하에 죽어나간다면,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저지르는 사기전쟁의 희생물들이 대량으로 쌓여나가는 꼴이 되고 만다.
글을 쓰다 보니 탈레반이 최후통첩으로 보낸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이 생산해 낸 테러라는 이데올로기도 공포스럽지만 피랍된 한국인 22명은 지금 상상도 못할 공포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세뇌공작으로 테러가 당연하게 테러로만 보이는 지금, 무기와 컴퓨터로 무장한 테러의 이미지 때문에 자기 모습을 은폐시키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군사전략과 그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 필자의 눈에는 아프가니스탄과 거기에 억류되어 있는 피랍 한국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볼 수 없다는 것, 시야 저 너머에 있다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살아 돌아오는 얼굴들을 인터넷에서나마 보고 싶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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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재 님은 대구카톨릭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