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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슬람

[해방을향한인티파다](50) - 더 나은 토론을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가 있는지 없는지, 전쟁이 났는지 멈췄는지, 탈리반이란 게 무엇인지 등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던 한국 사회가 요즘은 탈리반이란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을 기회로 TV 뉴스만 쫓아가지 말고 제국주의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에 대해 좀 더 토론하고 생각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참고가 될까봐 책 세 권을 가져나왔습니다.

1. 근본주의의 충돌 / 타리크 알리 / 미토

요즘 탈리반에 대해서 얘기하면 미국이 어떻게 탈리반의 성장을 도왔고, 그래서 미국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 탈리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분은 ‘그냥 테러리스트라고만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요? 그래도 한 나라를 집권하고 있던 정치세력인데...’라고 하시더라구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탈리반의 성장과 집권 과정에 대해서는 얘기가 많으니깐 일단 빼기로 하구요, 저의 대답은 미국이 테러리스트면 탈리반도 테러리스트라는 겁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세계판 탈리반이고, 탈리반은 아프가니스탄판 미국입니다. 미국에 맞서 싸운다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곧바로 착한 편이 되지도 나쁜 편이 되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미국과 탈리반이라는 두 개의 큰 문제 집단이 있는 거죠.

이 책은 남아시아, 서아시아 등의 역사와 정치, 미국 제국주의와 이슬람 등에 관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슬람을 ‘테러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이슬람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는,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하지?’ 싶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한 구절은 제 마음에 큰 울림이었습니다.

뉴욕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와 대담을 하며 내용을 녹음하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1917년이 20세기를 규정하는 해라는데 동의했다. 내게 20세기를 형성한 사건은 러시아혁명이었고, 사이드에게는 벨푸어선언이었다. - 58쪽

그리고 책의 끝부분에 나오는 한 구절도 제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광적인 보수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의 후진성을 쓸어버릴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오늘날 서구에서 제시하는 사상보다 더 진보적인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사상에 이슬람 세계를 개방시키는 이슬람 종교개혁이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이슬람 종교개혁을 위해서는 엄격한 정교분리, 성직자 집단의 해체, 이슬람 문화 전체의 집단적 소유물인 쿠란을 해석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무슬림 지식인들,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자유와 상상력의 자유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 507~508쪽

2. 문화와 제국주의 / 에드워드 사이드 / 문예출판사

몇 년 전이었습니다. 한 분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그래도 여성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을까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조지 부시도 2002년에 ‘아프가니스탄의 어머니와 딸들은 그들의 집안에 감금되었고, 일을 하거나 학교를 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여성들은 해방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냐보다는 우리는 왜 아프가니스탄하면 ‘부르카’를 쓴 ‘억압받는’ 여성을 먼저 떠올리느냐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억압 받으면 해방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지역을 떠올릴 땐 안 그러더니 오직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서만은 왜 여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을까요?

이같은 보통의 제3세계 여성은 본질적으로 (성적으로 제약된) 여성적 젠더에 기반하여 평면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무식하고,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전통에 얽매인,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가족지향적인, 피해자 등등) “제3세계”적 존재로 규명된다. 이는 (암묵적으로) 교육받고 근대적이며 자신의 육체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으며 또한 자기 고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자유롭게 자기재현을 할 수 있는 서구여성과 대비된다. -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 [경계없는 페미니즘] / 여이연 / 42쪽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미국 제국주의의 작업이 있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침공의 명분으로 ‘여성해방’을 이용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침공 전후로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거죠. 미국이 갑자기 여성해방을 위한 투사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제국의 지배는 군사적 수단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수단을 함께 동원합니다. 흔한 예로 ‘서양’을 표현할 때는 깨끗함, 합리적, 논리적, 강인함, 너그러움 등을 이용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을 표현할 때는 더러움, 신비로움, 종교적, 나약함, 잔인함 등을 이용하는 거죠. 그래서 유럽+미국은 세계에서 우월한 지역이 되고 그 밖의 지역은 열등하고 혼란스러워 누군가가 관리해 주거나 문명화 시켜줘야 하는 지역이 되는 거죠.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는 제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문화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관한 분석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장점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방을 기획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합니다.

우리가 최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세계 지도에는 신성불가침이라는 형태로, 또는 교조적으로 다른 것으로부터 성스럽게 구별된 어떤 공간도, 본질도, 특권도 존재하지 않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 585~586쪽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번역을 하면서 즐거웠다고 합니다. 좀 어려운 말들이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추천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제국주의, 문화와 지배, 해방의 기획 등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제국주의론 / J. A. 홉슨 / 창작과비평사

몇 주 전 한 토론회에서 어떤 분이 ‘자본주의 최고단계로써의 제국주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주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고단계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것이 제국주의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미국의 역사만 봐도 그렇구요.

한국의 진보가 제국주의로써의 미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일들과 함께 제국주의에 관한 이론적 연구도 좀 더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하다못해 정세분석에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해서 열심히 분석하고 행동할 때는 ‘내가 언제 세계체제에 대해서 얘기했지?’하는 식으로 내팽개치는 상황은 좀 바꾸면 좋겠구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반미’하면 ‘NL이 하는 운동’ 또는 ‘(남성우월주의에 빠진)민족주의자들이 하는 운동’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쟤들이 하는 일은 난 안 할 테야’식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습도 있는 것 같구요.

20세기 초반에 [제국주의론]을 쓴 홉슨은 영국 제국주의를 주된 대상으로 제국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행태를 분석합니다.

새로운 제국주의는 전체 국민을 위해서는 쓸모없는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계급이나 어떤 직업을 위해서는 훌륭한 사업이었다. 막대한 군비 지출, 값비싼 전쟁, 대외정책에서의 심각한 위험과 곤란, 영국 국내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개혁에의 견제 등은 영국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산업이나 직업들의 사업상의 당면 이익을 위해서는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 45~46쪽

100여 년 전에 씌어진 위의 글에서 영국이라는 글자를, 지금은 미국이라고 바꿔도 내용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국주의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한반도 등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직접 관련 있는 현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또 일국적 차원의 노동, 여성, 생태 운동 등만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국제주의적인 행동은 사회체제의 뿌리를 바꾸는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라는 나무의 뿌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도끼질이 가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제국주의로부터 이익을 얻는 계급이 제국주의적 돌파구를 찾는 잉여 수입을 박탈당하지 않는 한 제국주의나 군국주의를 한낱 정치적 수단이나 정책으로서 공격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 87쪽

물론 홉슨의 주장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없는 사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주장이나 사상의 한계에 주목하기 보다는 지금 우리의 사상을 풍부하게 하고 깊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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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제국주의 , 이슬람 , 탈리반 , 아프가니스탄 , 사이드 , 홉슨 ,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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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님의 글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에 대한 책을 몇 가지 책을 더 추천하면 이렇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1. <신제국주의> 한울아카데미\데이비드 하비 저/최병두 역 | 한울 | 2005년 05월
    2. <제국이라는 유령> :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론 비판
    알렉스 캘리니코스,엘린 메익신즈 우드,조반니 아리기 등저/김정한,안중철 공역 | 이매진 | 2007년 03월
    3. <문화제국주의> 존 톰린슨 저/강대인 역 | 나남출판(사회비평사) | 1999년 06월

  • 미니

    고맙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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