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빈곤대중의 권리를 선언한다!'

[사회운동포럼] 빈곤심판 민중법정 참가기

“빈곤은 인간을 인간일 수 없게 하므로 범죄이다. 빈곤은 인간에 대한 가장 잔혹한 거부이다”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들어간 유치장에서 난 한 노점상 아저씨와 같은 방에 있게 되었다. 시청에서 나온 도시관리과 직원과 용역 깡패가 단속이랍시고 노점을 때려 부수자, 대들었다고 잡혀온 것이다. 그 아저씨는 시청 직원으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았지만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또 노점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노점상 아저씨에게 국가는 공무집행방해죄 등을 이유로 체포해온 것이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빈곤층은 언제나 범죄자 취급을 받아오며 살았다. 노점상은 물론이고 노숙인, 철거민, 금융채무자들에게 역시 범죄의 낙인이 함께 따라 다녔다. 그/녀들이 왜 빈곤한지, 빈곤 속에서 왜 탈출하지 못하는지, 과연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물을 기회조차 잃은 채 저들이 만든 법은 언제나 우리들을 멋대로 판단하고 심판해 왔다. 그런 법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빈곤 당사자는 언제나 무능력한 범죄자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의 유일한 문화 행사였던 '빈곤심판 민중법정'의 모습.

‘빈곤심판, 민중법정’은 반대로 민중들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주범을 심판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그 동안 범죄자 취급을 당해왔던 빈곤 당사자들이 인간에 대한 가장 잔혹한 범죄인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 질서, 그리고 그런 질서를 양산해내는 세력들을 법정이란 형식을 통해 폭로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그 동안 지배세력은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력과 나태함으로 몰아가며 빈곤의 책임을 민중들에게 전가해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한국 사회에서 급속하게 확산된 빈곤인구는 700만 명을 넘고 있으며, 이중 다수가 불안정노동으로 인하여 일을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노동빈곤층’이다. 이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 전면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빈곤의 본질이 결코 개인의 무능력과 나태함 때문만은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해 금융시장을 활성화하고, 복지를 후퇴시키고, 사회서비스를 시장화 하는 등, 민중의 삶을 총체적으로 공격한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빈곤의 양상 역시 다양해진다.

민중법정은 이런 다양한 빈곤의 모습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1부, ‘빈곤의 또 다른 얼굴,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다!’에서는 금융자본의 배를 채우기 위한 정부의 금융정책으로 인해 ‘신용불량자’라는 법적, 도덕적, 경제적 낙인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금융피해자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경험을 담은 리얼한 연기와 증언으로 금융채무의 진실을 밝혔다.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와 몇몇 시사프로그램으로 사금융이 비난받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사금융이 활개 치도록 만든 것은 이자제한법, 대부업법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자유롭게 만든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이로 인해 무분별한 카드 발급이 횡행했고, 많은 사람들은 사채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며, 결국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불법추심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금융채무 당사자들은 이 자리를 통해 사채업자와 카드사, 금감원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공개 수배 했다.

  8월 31일 진행된 사회운동포럼 빈곤심판 민중법정의 모습

2부에서는 노동빈곤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폭로했다. 2부는 원고,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와 피고,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공방으로 진행되었다. 노무현 정권이 내놓은 비정규보호법안은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불안정노동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과 동시에 집단해고당한 이랜드 노동자의 투쟁을 극화하여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비정규직들의 실상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빈곤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일자리를 통한 빈곤 탈출’을 기조로 내놓은 정부의 노동연계복지정책은 오히려 사회 서비스를 기업의 손에 맡겨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변질시키고 거기에 종사하게 될 빈곤층을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구조로 몰아넣고 있다. 그/녀들이 빈곤한 원인은 단지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을 적절한 일자리가 없어서이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부에서는 마지막에 이랜드 노동자들의 입을 빌려 노동빈곤층이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선언한다.

박준 동지의 감동적인 노래공연 후, 3부가 시작되었다. 3부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서울시 발전 프로젝트를 고발했다. 이명박, 오세훈으로 이어지고 있는 서울시 발전프로젝트는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사업, 뉴타운 개발에서부터, 오세훈의 ‘서울시정 운영 4개년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발전을 통한 양극화 해소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그런 발전계획에서 빈곤층은 철저히 소외당할 뿐 아니라 죽음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균형, 문화, 환경 등의 수식어를 남발하며 초국적 자본의 유치를 위한 조건을 형성하고 일부 자산계층의 부를 늘리기 위한 개발의 과정에서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 등은 삶의 공간에서 내쫓기고 있으며, 그/녀들의 저항에 대해 공권력은 극악무도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이명박, 오세훈과 노점상, 노숙인, 철거민들의 대화는 공간의 불평등한 분배 이상으로 기존의 공간에 대한 담론 자체가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고민을 던져준다. 공간은 정치적이며, 당연하게 존재하는 공간 자체가 빈곤층에게는 목숨을 건 투쟁의 공간인 것이다.

  8월 31일 진행된 사회운동포럼의 '빈곤심판 민중법정'의 모습

‘빈곤심판, 민중법정’은 박 터뜨리기와 함께 천만 빈곤대중의 권리를 선언함으로써 그 절정에 다다랐다. 사회운동포럼의 유일한 문화행사인 민중법정은 이렇게 관중들의 박수와 함성 속에서 끝을 맺었다. 민중법정은 진행되는 세 시간 내내 웃음과 함성 박수, 감동이 멈추지 않았다. 기획이 치밀해서나, 연기가 훌륭해서만은 아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빈곤심판, 민중법정’은 단지 한 편의 연극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출연자와 관중이 분리되지 않고, 빈곤을 확산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쟁취하고 빈곤을 철폐하고자 하는 결의를 함께 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당사자들의 증언은 준비되었던 것이든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든 하나같이 시사프로그램의 그것과는 달리 가슴을 울리는 선동이 되었고, 선전이 되었으며, 우리들의 함성 하나하나는 선언이 되었던 것이다.

‘빈곤심판, 민중법정’은 빈곤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빈곤의 다양한 양상과 민중의 삶이 빈곤으로 귀결되는 메커니즘을 폭로함으로써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에 일반화된 빈곤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이후 투쟁의 결의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빈곤사회연대(준) 자원활동가인 허승 현장기자의 '사회운동포럼, 빈곤심판 민중법정' 참가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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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채무 , 사회운동포럼 , 빈곤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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