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삼성 특검법안'에 비판적 입장을 밝혀 온 청와대가 결국 실현가능성이 전무한 조건을 제시하며, 거부권 카드를 꺼내 들어 논란이 예상된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삼성 특검법안 재논의와 함께 이번 국회에서 공직부패수사처법(공수처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공수처법 처리'와 '특검법안 재논의' 두 가지를 거부권 행사 유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공수처법 국회 통과 가능성 ‘제로’
청와대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발의된 '삼성 특검법안'을 대폭 수정하고, 게다가 공수처법까지 이번 회기 내 통과시켜야 한다. 공수처법은 한나라당의 반대와 정당 간 이견으로 지난 3년간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번 회기 내 통과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게 중론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공직비리수사처는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검사제보다 독립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수처법에 대해 "대통령이 직속 사정기관을 두어서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감시하고 통제 하에 두려는 발상이 아니냐"며 "그런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공직비리수사처의 도입을 반대한다"고 공수처법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공수처법 처리와 관련해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최재성 원내대변인조차 "(공수처법 회기 내 국회 통과는) 정당 간 협의가 진행되지 않으면 논의조차 어려운 사안"이라며 "청와대가 삼성 특검법안을 공수처법과 연계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할 정도다.
‘공수처법’ 통과시키고, ‘삼성 특검법안’도 너덜너덜하게 만들라?
또 설령 한나라당이 입장을 급선회해 공수처법을 통과시킨다손 치더라도, 청와대가 제시한 입맛에 맞게 '삼성 특검법안'도 대폭 손을 대야 한다.
청와대는 민주노동당·대통합민주신당·창조한국당 3당이 제출한 '삼성 특검법안'에 대해 수사 대상과 기간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대폭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서는 핵심 내용인 대선자금과 당선 축하금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결국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를 막으려면, '삼성 특검법안'을 너덜너덜 하게 만든 뒤 각 정당이 '화합'해 공수처법도 통과시켜야 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향후 청와대는 '삼성 특검법안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날 정례브리핑에서도 이 같은 기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청와대 “참여정부는 그런 일 없다. 두려움 없다”... 그런데 왜?
"사실상 청와대가 당선 축하금 또는 대선자금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 공수처법을 이유로 삼성 특검법안을 명분 없이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천 대변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두려움이나 부담을 갖고 있지 않다"며 "자신이 있는 부분이다. 그것과(대선자금 및 당선 축하금 문제) 자꾸 연결해 생각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청와대도 규명의지가 있다고 한 삼성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하지 않고, 대신 공수처법을 국회에서 처리하라고 하는 게 맞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청와대가 무엇을 숨기려고 한다', '누구를 봐주려고 한다'는 시각을 전제로 한 지적"이라며 "참여정부는 그런 일이 없다"고 잘랐다.
"정윤재 전 비서관, 변양균 전 실장 그리고 전군표 국세청장의 비리 문제가 나왔을 때는 공수처법에 대해서 일절 이야기하지 않다가 왜 지금 제기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때는 그런 사건이 계속 터졌기 때문에 공수처법을 굳이 연결시켜서 주장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수처법의 필요성에 대해서 미루어 온 것은 아니다"고 궁색한 해명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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