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부패수사처법(공수처법) 처리와 연계해 '삼성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강력 시사해 온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특검법안 수용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국회를 통과한 삼성 특검법안에 대해 재의 요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삼성 특검법안이 국회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통과함에 따라 거부권 행사의 명분과 실효성 모두를 상실했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만약 삼성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국회가 3분의 2 찬성으로 재의결하면, 법안은 원안대로 통과되게 된다.
노 대통령도 이날 거부권 행사 입장을 철회한 것과 관련해 "(삼성 특검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런 상황에서 재의를 요구한다고 해도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재의 요구를 할 경우 검찰 수사에 혼란이 있고,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있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며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그 부당성을 다투어야만 할 정치적 이익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삼성 특검 통과, 국회의원들의 횡포이자 지위의 남용"
노 대통령이 삼성 특검법안을 원안대로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날 노 대통령은 자신이 거부권 유보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공수처법 처리'와 '삼성 특검법안 수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 국회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국회가 이 같은 삼성 특검법안을 만들어 보내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횡포이자 지위의 남용"이라고 국회를 싸잡아 비판한 뒤 "다리가 있으면 다리로 다니면 되는데 왜 굳이 나룻배를 띄워야 하냐"며 공수처법 도입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특검법은 다수당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으로 다수당의 무기"라며 "여대야소가 되면 정부에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특검은 도입될 가능성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각 당이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약속한 공수처법을 2004년 11월에 국회에 제출했는데, 국회가 이를 심의도 하지 않고 처박아 버렸다"며 "국회의원들이 부담스러워서 공수처법을 반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삼성 특검, 국회가 결탁해 대통령 흔들기 위해 만들어"
이날 노 대통령은 '당선축하금' 항목이 포함된 삼성 특검법안이 정치권 합의로 통과된 것에 대해서도 "국회가 결탁했다"는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대통령 흔들기"라고 맹성토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특검제도의 문제점과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번처럼 국회가 결탁해서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 만들어낼 때만 특검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배경에서 이번 삼성 특검이 대통령 흔들기 의도가 있다고 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특검 항목에 '당선축하금'이라는 게 있으니, 대통령 흔들기라고 말한 것"이라며 "순수하게 삼성 특검이라면 대통령 흔들기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당선축하금' 의혹의 근거는 홍준표 씨와 안상수 씨가 말한 것인데, 전혀 그 근거가 없다"며 "의혹의 단서도 너무 의문스러운데, 하물며 이것을 가지고 수사의 단서로 삼겠다는 것은 대통령 흔들기가 맞지 않냐"고 이번 특검법안에 '당선축하금'이 포함된 것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 사람들, 옛날부터 춥고 배고픈데 살던 사람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이용철 변호사(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폭로로 청와대 비서관들의 뇌물 수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난 그 점에 관해서는 상당한 자신을 가지고 있다"며 "지난번에 큰 소리 치다가 좀 구겨줬지만, 또 구겨지더라도 우리 참모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소위 인맥관리 측면에서 떡값 관리라는 것도 건너가는 다리가 있어야 건너는 것이지, 아무나 명단에 넣고 다 건너가는 것이 아니다"며 "이용철 변호사 사례를 놓고 청와대 일반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를 깊이 있게 보지 않은 결과"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우리 청와대 사람들은 옛날부터 춥고, 배고픈데 살던 사람들이라서 인맥이 별로 시원치 않다"며 "참여정부가 양지쪽에 있던 사람들이 와서 인맥을 콱콱 뚫어놓고, 삼성하고 거래해 가면서 따뜻하게 비서관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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