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희네의 아픔과 남북의 평화

[두 책방 아저씨](11) - '금희의 여행'을 읽고

이 책에 나오는 북쪽 고향은 내가 어릴 때 살던 모습 그대로다. 먹을거리, 입을거리는 늘 모자랐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 옛날을 떠오르게 한다.

1970년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학교를 갔다 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놀기 바빴다. 해가 서쪽 하늘에 쑥 떨어져도 집에 들어갈 줄 몰랐다. 어머니가 골목에 나와 밥 먹으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동무들과 아쉬운 눈빛을 나누며 헤어졌다.

그때 내가 사는 마을에도 텔레비전 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해질 무렵 아이들이 좋아 하는 만화 영화가 나오는 날이면 텔레비전 있는 집에 몰려다녔다.

어른들은 가난한 살림을 꾸리느라 뼈를 깎는 아픔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내 또래 아이들은 늘 웃고 떠들며 즐겁게 살았다. 아무튼 그때는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따뜻한 정이 흘렀다. 가난한 이웃끼리 살가운 정을 나누며 살았다.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한반도 북녘처럼.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한반도 북녘 땅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먹을거리가 모자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배고픈 사람들은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 몰래 집 가까이 텃밭에 먹을거리를 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도 김일성 주석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는 할 수 없었다. 굶주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것을 훔치며 목숨을 이어가려 했다. 이런 일을 하다 들키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글쓴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형 집행은 계속되었고 사형 당하는 사람들의 죄명도 다양해졌습니다. 강냉이 이삭을 훔쳐서 사형 당하고, 고위급 간부 자식이 도박을 했는데 그 누명을 써서 사형 당하고, 길 가는 여자 시계를 빼앗아 사형 당했습니다.”

그런 북쪽에서 살 수 없어 금희네 식구들은 그곳을 떠난다. 고향 땅을 떠나며 꼭 다시 돌아오리라는 다짐을 하며 큰절을 하고 눈물을 삼켰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4년 만에 꿈에 그리던 한반도 남녘에 왔지만 이곳도 살기 좋은 땅만은 아니었다. 먹을거리가 많고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끝없는 경쟁이 소용돌이치는 메마른 땅이었다.

글쓴이는 한반도 남쪽에 오고 나서 더욱 한반도가 평화롭게 하나 되어서 북쪽 고향 땅에 꼭 가는 것이 꿈이 되었다. 헐벗고 굶주린 땅이지만 마음을 터놓고 함께 뛰놀던 동무들이 있고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키워준 산과 들과 강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글쓴이는 한반도 남녘에 내려와서 알 수 없는 일들을 많이 보았다. 이곳 동네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1시쯤 학원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그곳에서 무슨 잔치가 있었나 생각했는데 늘 그렇게 늦은 때에 큰 책가방을 들고 아이들은 학원 문을 나섰다. 글쓴이는 어릴 때 산으로 들로 다니며 마음껏 뛰놀며 배웠는데 이곳 남녘 아이들은 오로지 책 속에서 배운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또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공부를 못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들고 믿지 않았는데, 늘 겨울 이맘때만 되면 대학 가는 시험을 못 봤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어 놀랐다고 했다.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지 않고서는 이렇게 한반도 북쪽도, 한반도 남쪽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오지 않는다.

남쪽은 미국에 빌붙어 살고 북쪽은 핵무기로 힘자랑을 하며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워서는 안 된다. 금희네가 겪었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어야 한다. 그 길에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이 책은 그 길을 걷는 데 힘을 준다.

2007년 12월 28일 어두운 밤을 걷고 아침이 환하게 밝아 올 무렵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덧붙이는 말

은종복 님은 풀무질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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