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천의 노을> [출처: 황재형] |
처음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이 중학교 때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는 어디 책에서 읽어서 그런지 죽는다는 것도 괜히, 약간은 멋진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괜히 죽는 흉내도 내 보고... 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는 죽음을 흉내 내는 것 보다 강했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 가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의 길이 좀 더 뚜렷해지는 것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에겐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해 보면 사는 것에 좀 더 겸손해 지고 진지하게 된다.
내가 떠올리는 나의 죽음은 함께 싸우다 죽는 거다. 스페인에서 그랬고, 팔레스타인에서 그랬고, 니카라과에서 그랬고, 이라크에서 그랬듯이 자기만의 세계를 넘어 꿈을 실천하며 죽는 게 내 꿈이다. 정말 그럴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나 멀리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다 세월 다 보내고 싶진 않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영화도 있고, 소설도 있다. 난 둘 다 봤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본 그 영화의 한 장면에는 잉글리드 버그만이 게리 쿠퍼 앞에서 자신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순간이 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모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이고 멍멍이고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나???
아무튼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그렇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의 찬가’도 그렇고,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도 그렇고 이런 작품들의 공통점은 꿈을 위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스페인에서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국경을 넘어 자신의 삶을 던지며 꿈을 찾고 있다.
내가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잘 생겨서도 아니고 나한테 막걸리 한 사발 받아줘 본 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꿈을 위해 국경을 넘은 그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얼굴과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안전띠를 잘 매는 까닭
그럼 난? 아직은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 이건 자신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곳, 어느 때를 내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잡을 것인지를 아직 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만 정해지면 내일이 아니라 오늘 밤이라도 길을 떠날 생각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단 얼마라도 왜 적금을 넣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물론 난 그런 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금을 넣는다는 것은 다음 달에도 내가 이 땅에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 자동차를 타거나 하면 안전띠를 꼭 매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매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 듯 느끼는지 모르겠는데 난 반대다. 내가 안전띠를 꼭 매는 것은 내가 선택한 그 순간, 그 곳에서 죽기 위해서이다. 원하지 않는 때 죽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이며 조심하는 것이다.
평소에 가려 생각하고, 가려 행동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 순간에 과감한 실천을 할 수 있다. 이것저것, 이것도 대강, 저것도 대강하는 사람은 꼭 필요한 순간이 와도 그게 꼭 필요한 순간인지도 모를 뿐더러, 무슨 결정을 해도 제대로 실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저것 대강대강 해대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자신을 과감히 던지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작은 약속이라도 일단 약속을 하면 지키라고 나에게 말하는 이유도 죽음의 단 한 순간을 위해서다. 그 한 순간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과감하게 던지기 위해서는 작은 결정과 행동의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삶은 곧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용기
죽음을 생각하면, 그러면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물론 나에게도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사람이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프지 않을까.
그런데 봄이 오는 하늘을 보자. 저 맑은 햇빛과 푸른 구름은 나의 소중한 인연이 아닌지. 개나리 핀 길을 걸어보자.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사랑하면 안 될 것인지.
▲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출처: Rana Ghassan] |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두렵다면 지금 뜨겁게 사랑하자.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달려가서 만나고, 안을 수 있다면 가슴뼈가 부서지도록 안아 보자. 사랑한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면 더 참지 말고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자. 전화할 수 있다면 전화하고, 편지라도 보낼 수 있다면 제 마음을 다 담아 글을 쓰자.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서 하지 못하게 될 순간을 걱정하는 것을 두고 비겁이라고 하는 거다. 용기는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며, 해야 할 때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한 생을 그렇게 살다보면 나중에는 살았냐, 죽었냐가 남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기 살다 죽었냐, 비겁하게 살다 죽었냐가 남게 되지 않을까?
허투로 쓰던, 소중히 쓰던 누구나 삶도 죽음도 한 번이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죽음을 생각 하자. 내가 어디서, 어떻게 죽을 지를. 그리고 죽음의 거울로 오늘의 나를 보자.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