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오전 8시에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병원 로비가 침탈당했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늦은 저녁 때 강남 성모병원으로 가는데 손전화 문자가 왔다.
‘강남성모병원전경차떴음조만간침탈예상병원으로집결바람업무방해로걸었다고함’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밑에서 덜컹거리는 지하철이 한없이 더디게 느껴졌다. 뜨악해진 기분으로 서 있는데 잠시 후 다시 문자가 왔다.
‘죄송!확인결과최○○때문에장례식장에기자몰릴까전경차왔대요’
최○○라면 아침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연기자? 강남에 산다더니 이 부근으로 기자들이 몰려올 것인가 보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용역 깡패들은 둘째 치더라도 죄 없는 사람들을 지켜 주는 것이 임무인 경찰들을 보고 조합원들이 더럭 겁을 먹어야 하는 현실이 참 씁쓸했다. 언제부터 경찰들을 보고 ‘우리를 보호해 주러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성모병원 입구에서 보건의료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을 만났다.
“지금 상황 어때요?”
“로비에서 조합원들 모여서 간담회하고 있어요.”
“다시 들어간 건가요?”
“아침에 뜯겼다가 다시 들어갔어요. 큰일은 없었구요.”
“다치신 분들은......?”
“크게 다치신 분들은 없고, 천막두 아직 있어요. 아마 이제 늘상 이럴 거예요.”
“전경차 왔다는 건.......?”
“왔다 그냥 갔어요.”
“......”
“이제 병원에서는 소송을 거는 작전으로 나올 거예요. 업무방해다 뭐다......”
로비 한가운데 있던 깔개들은 어느새 벽 한구석으로 밀려 있었다. 찢겼다가 다시 붙여진 듯 구깃구깃한 자보들은 깔개 부근 바닥에 한 줄로 붙여져 있고 벽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오셨네~”
오전에 거친 몸싸움을 겪은 분들답지 않게 웃음이 밝았다. 다행일까? 속이 저릿했다. 진보신당 칼라뉴스에서 오신 기자분도 내 옆에 앉았다.
“어디 다치신 데는......?”
“괜찮아요. ^^”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어제두 두 번이나 여기에 쳐들어 왔었어요. 한 번은 보안 업체에서 왔고 나중엔 병원 직원들 중에서 팀장급 중심으로 왔죠. 벽보 뜯고 바닥 뜯어내고....... 근데 어젠 사람은 안 끌어냈어요.”
“어제도 왔었어요?”
“네. 오늘은 보안 업체 직원들이랑 병원 직원들이랑 합쳐 한 오십여 명 왔나?”
옆에 있던 칼라뉴스 기자 분이 물었다.
“오늘...... 카메라가 파손되기도 했다던데요?”
“아, 그건요. 다큐 찍으려고 오신 분들이 카메라 여기다가 두고 밥 먹으러 가셨다가...... 몸싸움하는 와중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망가진 거죠.”
다른 조합원 분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다른 분들은 밖으로 밥 먹으러 가고 여기에 김밥 먹는 사람들 한 네 명이 있었는데 저쪽에서 여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라구요.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오는 건가, 아니면 단체로 마트를 가나 했는데 아무튼 저기 저쪽으로 가버렸어요.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이쪽에서 한 떼가, 저쪽에서 한 떼가, 그리고 아까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던 여자 직원들 한 떼가 세 곳에서 몰려오는 거예요. 그때부터 뜯기 시작했죠. 바깥 천막 쪽에 있던 촛불 시민들이 달려 왔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진 뒤였고.”
“병원 측이 작전을 짠 거지. 지능적으로.”
“그 와중에 어디 다치셨을 거 같은데......?”
“현수막을 뜯어 가길래 거기에 매달렸죠. 저 입구까지 질질 끌려갔는데...... 우리 떼어놓으려고 직원들이 막 비틀고 꼬집고 잡아당기고...... 여기저기 타박상이랑 찰과상은 많이 입었어요.”
“직원들이 몸을 붙들고 끌고 나가지는 않았나요?”
“현수막에서 우리 떼어놓고, 밖으로 내보내려고 우리 잡고 끌어냈죠. 바깥으로 쫓아낸 다음에 보안 직원들이 우리 못 들어오게 하려고 문을 부여잡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밖에 있던 촛불 시민들이랑 합세해서 뒷문으로 다시 들어왔죠. 인원이 조금 불어나니까 직원들도 함부로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또 실랑이하다가 다시 농성장 설치했죠.”
“현수막에 우리가 매달리니까 가위를 꺼내서 현수막을 잘라 버리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왜 무기를 들이대느냐!’라고 항의하니까 ‘이게 무슨 무기냐’고 그러더라구요. 아니, 그 상황에서 가위가 무기 아닌가?”
“그러면 남자 직원들이 여자 조합원 분들 붙들어 끌고 나간 건가요?”
“막 꼬집고 비틀고 그래서 우리가 현수막을 놨더니만...... 남자 직원들이 끌고 나갔죠.”
“상황이 벌어졌을 때 로비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나요? 환자 분들이나 보호자 분들......”
“8시 이후에 외래 진료가 시작되니까......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슬슬 많아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죠.”
“진료 보는 사람이 많으면 아무래도 쳐들어오기 그렇겠죠. 8시부터 5시까지 외래 진료 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에는 북적북적해요.”
“근데 보안 직원들은 시간 안 가리고 아무 때나 와서 벽보 떼어 가고 시비 걸고 그래요. 어쨌든 걔들도 CCTV에 찍히고 있으니까...... 자기네들이 일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할 테니까요.”
“아까 듣기로는 병원 측에서 소송도 걸었다던데......?”
“일곱 명한테 업무 방해로 소송 걸었어요. 농성장에서 자주 보이는 조합원들 찍어서 걸었겠죠.”
“연휴 기간에는 좀 어떨까요?”
“환자가 더 없죠. ‘이번이 기회다!’ 생각하고서 쳐들어올지도 모르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거예요.”
“용역 직원들 보다는 아무래도 병원 직원들이 좀 살살하지 않나요?”
“그런 거 없어~”
“직원들로만 우리와 상대하기엔 한계가 있긴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직원들은 우리랑 평소에 친분도 있고......”
열심히 수첩에 적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조합원이 내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때 사복 입고 있던 덩치 큰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 여기 직원 맞대요.”
“네? 근데 왜 옷을 그렇게 입고 있었죠? 옷차림만 보면 조폭이던데?”
“그러게요. 근데 지난 번 글에서 완전 깡패처럼 묘사해 놓으셔서......”
로비 안 농성장으로 다른 사람들이 속속 오고 있었다. 진보신당 당원도 있고 전교조 선생님도 있다. 조합원들은 그때마다 환한 표정으로 맞아들인다.
“근데 아까 전경차 왔던 건 뭐예요? 간 건 확실하구요?”
“최○○이 삼성 병원에 있는데 경찰들이 잘못 알고 온 거였어요. 금방 갔어요.”
청소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조합원들에게 좀 어떠냐고 안부를 물었다. 조합원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며 괜찮다고 했다. 새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아무런 표정 없이 바삐 지나가기만 했다.
나는 다음 일정이 있어 겸연쩍게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왜 벌써 가느냐고 타박을 받았다. 머리를 긁으며 웃고 있노라니 한 조합원이 뭣 좀 먹고 가라며 빵을 주섬주섬 꺼내 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또다시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겠습니다.”
병원 측은 해고 조합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매일매일 직원들을 동원해 힘으로 조합원들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 완력이라고는 없는 여자 조합원들이다. 남자 직원, 여자 직원 할 것 없이 죄다 모아들이고는 ‘어떻게 하면 저것들을 쫓아낼까?’ 병원 측은 그 생각만 하고 있다. 이미 깡패들까지 불러들여 천막도 뜯어간 적이 있다. 신의 이름으로 다음에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정말 어느 영화 홍보 문구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 같았다.
병원을 나서는데 입구 옆에 세워져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보였다. 인자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성모 마리아는 기도를 하고 있을까? 무슨 기도를? 성모 마리아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사람을 일하는 부속품으로밖에 보지 않는 병원 측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가면에 지나지 않는데.
- 덧붙이는 말
-
박병학 님은 서울 서부비정규직센터(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