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백석 – 고향
어둑해진 겨울 저녁, 찬바람을 훅훅 들이마셔 가며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우두커니 서서 불빛에 징그럽게 번들거리는 전경들의 투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백석의 ‘고향’이라는 시였다.
고작 10분만 있으면 끝나는 ‘비정규직 권리선언 촛불 문화제’를 기어이 훼방 놓으려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와 대오를 울타리처럼 둘러싸 버렸고, 일곱 시까지 촛불 문화제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사회자가 거듭 이야기했지만 종로 경찰서에서 나온 듯한 늙수그레한 간부는 코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경악과 분노와 허탈함으로 차갑게 식어 버린 온몸의 피돌기를 이왕 떠오른 백석 시의 힘을 빌어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며 잠시 생각해보니 백석의 시가 떠오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의 마지막 줄 때문이었다. 백석에게는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지만, 그곳에는 전경도, 물대포도, 휴대용 색소 분무기도, ‘방송녀’도 다 있었기 때문이었다.
▲ 동화면세점 앞을 온통 차지해 버린 전경들 |
동화면세점 앞을 밀고 들어와 꿈쩍도 하지 않는 전경들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명 차량에서 비추는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셔 소리가 들리는 쪽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똑 부러지게 발음하는 그녀의 목소리. 오랜만이었다.
“여러분은 지금 문화제를 가장한 불법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어서 해산하십시오! 해산하지 않을 시에는 검거할 수 있습니다. 깃발을 내리고 촛불을 끄세요.”
지난 여름 ‘방송녀’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그녀. 그녀가 누군지도 모르고 말 한 마디 나누어 본 적 없으며 서로 얼굴 조차 본 일이 없지만 나는 그녀에 관한 추억이 너무나 많다. 어느 서양 시인의 시 구절처럼 ‘천 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갖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그 많은 추억들은 저마다 똑같은 모습이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 전경 버스들이 늘어서서 오로지 대통령이 사는 곳을 보호하기 위해 벽을 만든 어느 날 밤, 나는 우꾼한 분위기 한 가운데 있고 사람들은 깃발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소화기 분말과 물대포에 맞선다. 전경 버스에 쇠줄을 건 사람들이 으쌰으쌰 구령을 붙여 가며 잡아당기니 버스는 흔들흔들 기우뚱거리고, 위에 올라앉아 있던 전경들은 넋이 나간 듯 허둥거린다. 광우병 대책위 쪽 스피커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 이슬’ 같은 노래들이 연방 흘러 나오고, 전경 버스 뒤쪽 어디에선가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가 그 모든 혼잡과 소음을 뚫고 아련하게 들려온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 폭력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행위를 중단하고 어서 해산하십시오.”
때로는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점잖게 타이르기도 한다.
“여러분의 요구사항은 법과 절차에 따라 요구하셔야 합니다. 폭력적인 방법으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법 폭력 행위를 중단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나는 처음엔 방송 내용을 경찰서에서 미리 녹음해 와서 집회 때마다 틀어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위대가 소화전을 뽑아 거센 물줄기로 경찰의 물대포에 맞서던 어느 날 밤에 그녀는 자기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그만 흥분을 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그 목소리를 듣고 ‘아, 그녀도 지금 어느 안전한 곳에 앉아 우리들과 함께 이 밤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내뱉던 성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또렷하다.
“여러분은 자신을 민주 시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불법 폭력 행위를 하고 경찰 기물을 파손하는 것이 민주 시민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민주 시민이라 부를 자격이 없습니다!”
전경 버스가 여러 대 끌려 나와 박살이 나던 날, “폭력 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광화문 밤거리에 울려 퍼졌고 그녀 역시 악에 받친 목소리로 시위대와 맞섰다.
“저희는 폭력 경찰이 아닙니다! 아니란 말이에요! 지금 누가 폭력을 쓰고 있습니까?”
미리 씌어진 원고를 그대로 읽는 듯한 틀에 박힌 말이 아닌, 그녀의 진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 목소리를 들으며 옆 사람들과 함께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시위대에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누가 폭력을 쓰고 있습니까?” 촛불을 든 사람들에겐 곤봉도 방패도 물대포도 없었는데 말이다. 폭력을 쓰면서 폭력 경찰이 아니라 함은 도대체 어느 왕조의 욕된 유물이었을까? 사람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얼굴에 대고 휴대용 소화기를 뿌린 건 그럼 전경이 아니라 깡패들이었나?
▲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협하던 물대포와 전경들 |
사람들끼리 키득거리며 이야기도 나누었다. “도대체 그 방송녀는 누굴까?” “여경이겠지 뭐.” “근데 정말 그 바보 같은 원고를 읽으면서도 양심이 하나도 찔리지 않을까?” “위에서 시키는데 어떡하겠어. 읽으라면 읽어야지.” “정말 원고일까? 그럼 그 원고는 또 누가 써 줄까?” “글쎄, 경찰 간부가 종이에 괴발개발 써 주면 아랫사람들이 열심히 타자 쳐서 뽑아 오는 게 아닐까?” “근데 야, 저런 말을 맑고 고운 목소리로 들으니 더 짜증난다.”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표현들이 너무 진부해서 듣기 민망할 정도야.” “네티즌들이 방송녀 추적해서 신원을 밝혀 내지 않을까? 요새 네티즌들 못하는 게 없던데.” “아무리 원고를 읽는다지만 목소리 들어 보면 너무 확신에 차 있어.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원고를 읽는 거 같아. 혹시 속 깊이 동의한 채로 방송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자기는 지금 법과 질서를 집행하고 있는 신성한 경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경찰 내부에서도 군대와 비슷하게 세뇌 공작 비슷한 걸 할 테니까.” “근데 정말 어떻게 저런 말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할 수가 있지?” “어떤 생각 가지고 살아가는 여잔지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여경이 무슨 죄야. 위에 있는 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너무 방송녀만 몰아붙이는 거 까딱하면 성희롱으로 갈 수 있어.”
그런데 정말 그랬다. 젊고 풋풋한 여성의 목소리라는 이유로, 전경들의 폭력 행위를 뒤에서 엄호해 주고 있다는 이유로 여경은 온갖 욕설을 들어 먹어야 했다. 내가 들었던 욕설들은 대강 이런 식이었다. “야, 이 **년아! 입 닥쳐!” “저 *년이 또 **이네. 집에 가서 애나 봐!” “* 같은 년아! 너는 남자친구도 없냐! 이 밤에 뭔 짓거리야!” “숨어서 방송만 하지 말고 이리로 나와! 쌍판도 목소리처럼 예쁜지 보자! * 같은 년.”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그때 당시 집회 현장은 한 순간 한 순간이 급박하고 위험했다. 방패를 치켜든 전경들이 언제 짓쳐들어올지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최루 가스를 섞은 소화기 분말은 사람들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 버렸으며,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전경 버스를 비롯한 경찰 기물들을 와장창 때려부수었다. 전쟁터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불법 폭력 집회 어쩌고 하는 방송을 듣고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사람들은 여경을 표적으로 삼아 마구 화풀이를 했고 가끔씩 그 화풀이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기도 했다.
여경에게 집에 가서 애를 보든지 남자친구나 만나러 가라고 하는 건 사실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나는 치열한 현장 속에서 그런 욕설들을 들으며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했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되었고, 교육이든 경제든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들은 똥 묻은 걸레마냥 너절했으며, 사람들이 아무리 거리에 나와 외쳐도 정부는 그 어떤 목소리도 들으려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무지막지한 힘을 앞세워 사람들을 때려눕히기만 했고 경찰 쪽 방송녀는 법과 질서를 운운하며 사람들을 살살 약 올리고 있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여성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설을 자신도 모르게 그 현장에서 내뱉었을 것이다. 화가 난 나머지 심한 욕설을 뱉는 것은 충분히 인간적인 행동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여경 뿐만이 아닌 이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욕을 먹는 진부한 방식에 대해서였다. ‘*년’이나 ‘*년’ 같이 낱말 자체에 가시가 돋혀 있는 욕설은 차라리 정직하지만, 너는 여성이고 여성은 집안일이나 하거나 연애에 몰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데에 주제 넘게 나설 거 없으니 너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그 말을 여경에게 했든 누구에게 했든 다른 모든 여성들의 삶에 먹칠을 하고 심지어 지금 누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에 흙탕물을 끼얹어 본질을 흐리게 하는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방송녀는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이기 때문에, 경찰이라는 신분임에도 정당한 집회를 불법 행위라 매도하고 있기 때문에 욕을 먹어야 했다. 경찰이 왜 멀쩡한 사람들을 불법 폭력 행위자들이라 부를까, 그런 생각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욕설이 여경이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만을 겨냥해 비뚜름하게 엇나가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수많은 여성들에게 공연히 미안해졌다. 그런 욕설을 퍼붓는 쪽으로 가서 뭐라고 한 소리 해 주고 싶기도 했지만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긴 했다.
나는 그녀가 목소리처럼 얼굴도 고운지 궁금하지는 않았으면서도 꼭 한 번 그녀를 만나 보고 싶었다. 만나서 술이나 한 잔 나누었으면 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를 가진 일인지 알고는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억지로 읽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정말 불법 폭력 행위자들이라 생각하는지, 경찰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이명박 정권이 말하는 법과 질서가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지 나는 다소 무례하도록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녀가 젖은 눈으로 술 한 잔을 왈칵 털어 마시며 “저도 힘들어요.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 하소연이라도 한다면 나도 함께 밤새 술을 마시며 이 시대와 현실을 싸잡아 욕하면서 꺼이꺼이 울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건 내 환상이었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낡은 부품이 새 것으로 갈아 끼워지듯 방송녀도 바뀌고 또 바뀌겠지만, 목소리가 달라진다고 해도 그녀는 늘 그녀로서, 경찰의 선전 도구로서 존재할 것이다. 참 슬픈 일이다.
촛불 문화제는 결국 전경들이 동화면세점 앞을 완전히 점거해버리면서 10여 분을 남겨 두고 끝나 버렸다. 나는 차분히 담배를 피우면서 전경들 한 떼거리를 바라보았다. 전경들도 2년 동안 국가에 고용돼 일하는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불쌍했다. 방송녀는 불법 집회를 중단하고 어서 해산하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를 부르고 사람들이 흩어져 가니 전경들도 철수하기 시작했다. 군홧발 소리 가득하던 동화면세점 앞이 눈 깜짝할 사이에 텅 비어 버렸다.
▲ 철수하는 전경들 |
경찰 쪽에서 비추는 조명 너머로 방송 차량이 보였다. 저 차량 안에 방송녀, 그녀가 도사리고 앉아 마이크에 입을 바싹 댄 채 정성껏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물었다. 왜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나요? 왜 우리가 하면 뭐든 불법 행위인가요?
그러자 거짓말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당신들을 향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서울 시내를 지나다니는 다른 사람들, 자신이 민주 시민이라 믿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만 제 말을 들어 주면 돼요. 그래야 당신들이 고립될 테니까. 그래야 당신들이 하는 행동이 불법으로 보일 테니까. 어차피 당신들에게 해산하라고 말해 봤자 당신들은 꼼짝도 안 하잖아요. 당신들은 제 말 듣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뭐라 욕해도 좋아요. 당신들이 믿는다는 그 신념을 좁다란 우물 속에 처넣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당신들을 외롭고 쓸쓸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찬바람은 사정없이 옷 속으로 파고 들었다. 손이 시려 담배를 피우기도 힘이 들었다. 촛불 문화제를 망쳐 놓고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유유히 물러나는 전경들을 바라보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촛불을 들고 전경들과 맞서던 더운 여름날에도 나는 똑같이 몸을 떨었던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