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서울시의 생각과는 달리 지난 9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 서울시의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주문하였다. 국가인권위의 결정과 같이 서울시의 명의도용 사전 예방 대책은 시종 홈리스에 대한 반인권적 처사로 일관되어 있다. 우선 정보 수집의 대상을 현재 사회적으로 낙인이 심한 ‘노숙인, 부랑인, 쪽방주민’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차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유엔과 OECD같은 국제기구도 “임의적인 차별을 유발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정보 폐기 단계에서의 문제점 또한 심각하다. 정보 삭제 요청 시 자활에 못 미치는 이들에 대해 경찰에 ‘인지 수사’를 요청한다고 하는데 이미 경찰이 노숙인을 예비범죄자로 충분히 ‘인지’하고 거칠 것 없이 활보하는 현실에서 그 부작용은 실로 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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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는 서울시 명의도용 예방사업에 대한 사실상 중단을 요청한 바 있다. 위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보도자료. |
물론 노숙인 등 빈곤계층의 명의도용 문제는 심각하다. 2006년 당시 실태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노숙생활자 넷 중 한 명은 명의도용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의도용 범죄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그 숫자는 계속 누적되고, 날로 그 수법은 정교해 지고 있다. 대포차로 인해 수급자 선정에 걸림돌이 되거나 수많은 세금, 2차 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 부동산 명의신탁으로 인해 세금은 물론 수급권을 포함 복지혜택에서 제외되고, 바지사장(허위사업자)으로 인해 세금 폭탄을 맞기도 한다.
명의도용 범죄로 인한 피해는 단지 세금, 채무와 같은 금전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공모 혐의가 성립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로 인해 벌금은 물론 인신구속과 같은 형사처벌 또한 병행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따라서 서울시의 인식과 같이 이러한 범죄를 막는 일은 너무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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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의도용 피해자의 체납사실증명원. 숙식 제공의 대가로 속칭 ‘바지사장’으로 명의를 도용당해 세금 체납 피해만 1억 4천 만 원에 이른다. |
그러나 서울시의 대책은 일부 명의도용 범죄는 예방할지언정 엄청난 낙인과 그에 따른 이차 삼차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최악수인 것으로, 홈리스에 대한 사회 경제적 사망선고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최근 서울시는 비공개 회의석상을 통해 이 사업을 추진할 의도를 비추고 있다. 물론, 사업의 일부 수정은 가할 수 있을 것이나 그 기본 방향이 노숙인, 쪽방주민과 같은 특정 상태에 처한 이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 그리고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출 불가자’란 코드를 생성할 경우 이들에 대한 낙인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홈리스에 대한 명의도용 예방책은 홈리스를 특정 하는 것이 아닌, 명의도용 범죄의 발생 구조에 작용하는 것이어야 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최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 국민의 7.3%가 명의도용 범죄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부 각 부처의 공동 작업을 통해 명의도용에 취약한 각종 제도, 법률에 대한 정비를 실시하고, 명의도용에 미끼가 되고 있는 생계, 주거, 일자리에 대한 사회정책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노숙생활자를 특정 표적으로 삼는 범죄 집단에 대한 별도 대책도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 주요 노숙지에 대한 ‘치안+법률구조’ 서비스를 갖춘 명의도용 전담 해결 기구를 설치하고, 이미 피해를 받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파산제도로서 포괄하지 못하는 체납세금 결손 등 해결대책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시 명의도용 예방 사업에 대한 당사자들의 의견은?
2009년 가을학기, 주말배움터 참여자들의 의견 중 발췌
- “대포차, 쉽게 말하자면 바지사장 내세워 사업자 등록 내는 거 있는데 홈리스 말고 전 국민의 문제라고 본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더 어려운 사람이 느는 것 같다. 그런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지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마에다 낙인찍는 거다. 인권을 떠나서 인간이하의 대책이라 본다.”
- “신청하는 사람이 많을 거 같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기관에서 하라고 그러면 할 수 밖에 없다.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야 하니까 그렇다. 물론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서울시에서 이거를 한다면 경쟁적으로 기관과 쉼터가 많이 할 거라고 생각한다. 기관 입장에서는 예산 문제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 “명의도용을 예방하기 위한 상담도 있고 교육도 있는데 그런 것을 하는 기관이 없는 거 같다. 그런 것을 통해 예방조치가 조금이라도 되면 좋을 듯 싶다. 춥고 배고프면 명의도용을 당한다. 바보 아니더라도 노숙을 오래했던 사람은 안 하는 데 갑자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하게 된다”
서울시는 명의도용 피해자에게 불량정보란 족쇄까지 채우려는 명의도용 예방사업을 즉각 폐기해야 할 것이다. 정부 또한 각 부처와 협력하여 명의도용 범죄 예방 및 해결대책 마련을 위한 물꼬를 즉각 터야 할 것이다.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가 열립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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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님은 홈리스행동(준)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