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08년부터 계속된 대불황이 단순히 공황을 찍고 호황으로 올라서는 경기순환주기의 한 지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오늘의 시대는 그 어떤 정부정책도 효력이 없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미 “써볼 수 있는 모든 수단이 고갈되었다”는 부르주아지의 고백서가 G20 등 세계정상들의 분주한 회의테이블에 제출된 상태다. 이 글은 1968년 프랑스 5월혁명 이후 나타난 “생활을 변혁하자”는 슬로건을 상기하면서 쓰는 매우 가벼운 제안이다. 이제 역사적 계급인 프롤레타리아의 느긋한 첫걸음을 시작할 차례다.
생산성향상운동에 단호히 저항하자!
* 생산성향상운동의 몇 가지 사례
생산성향상운동(productivity drive)은 자본이 노동에 대한 착취강도를 높여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사와 함께 하며, 운동의 형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에 의해 처음 나타났다. 1950년에는 이 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유럽생산성센터가 파리에 설립되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참가가 전제된다. 소련의 스타하노프 운동 역시 노동자 주도의 생산성향상운동이다. 한국에서는 국제경쟁력 강화와 부가가치 증대를 위해 1981년을 생산성향상운동의 해로 설정하면서 본격화되었다. 현재는 한국생산성본부가 계속 추진하고 있다. 최근의 한국생산성본부는 당면한 경제적 위기상황을 돌파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국가 생산성향상운동을 요청하고 있다. 산업과 사회 전 분야를 연계하는 생산성향상은 생산성정책 제언, 생산성전략 수립, 생산성동향 조사, 생산성과 노사·임금관계 연구, 생산성 수준 인증을 주요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다. 비용을 절감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전략에 기초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작년 77일간의 파업투쟁을 끝내고 조업재개에 들어간 쌍용차 평택공장 노동자는 “회생의 길에 불량 차는 없다”며 생산라인을 분주히 돌렸다. 자본에 대한 노동자파업의 타격은 업무 일상에서 급속히 회복된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1) 천리마운동 : 한국전쟁 이후 북한 노동당은 경제복구를 위해 ‘혁명적 군중노선’ ‘혁명적 사업방법’ ‘인민적 사업작풍’을 강조하며 대중의 창발성을 동원하였다. 이를 토대로 1958년부터 시작된 천리마운동은 북한식 국가자본주의의 총노선이었다. 하지만 이 노동경쟁운동의 포장은 “경제와 문화, 사상과 도덕의 모든 분야에서 온갖 뒤떨어진 것을 쓸어버리고 끊임없이 혁신을 일으키며 사회주의 건설을 비상히 촉진시키는 우리나라 수백만 근로자들의 일대 혁명운동”이며, 이 노선의 본질은 “모든 근로자들을 공산주의사상으로 교양 개조하여 당 주위에 더욱 굳게 묶어세우며 그들의 혁명적 열의와 창조적 재능을 높이 발양시켜 사회주의를 더 잘, 더 빨리 건설하는 데 있다”는 것으로 미화돼 있었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사업을 최대한으로 빨리 밀고 나가면서 그 질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 전투형식이며 혁명적인 사업 전개원칙”인 1970년대 속도전은 북한의 경제사전에 의하면 영화제작 과정에서 김정일에 의해 그 전형이 창조되었고 “일단 시작한 일을 낮잡지 않고 이악하게 달라붙어 불이 나게 해 제끼며 쉼 없이 새로운 혁명과업 수행에로 돌진해나가는 전격전의 원칙과 사업에서 중심고리에 힘을 집중하여 문제를 하나하나씩 모가 나게 해가는 섬멸전의 방법에 의해서 담보 된다”고 설명한다.
2) 새마을운동 : 농가 소득배가라는 미명아래 출발한 새마을운동은 도시와 공장에까지 확산된 한국의 대표적인 생산성향상운동이다. 경제 선진국대열에 진입해야 한다는 정부의 국민 총동원 의지는 실상 유신독재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남북한적십자사를 통한 판문점에서의 비밀접촉, 남측 정보부장의 평양방문과 북측 부수상의 서울방문, 그리고 상호 중상ㆍ비방ㆍ무력도발 금지, 남북한간 제반 교류의 실시, 남북 직통전화 개설 등으로 이뤄진 7.4남북공동성명, 이 모든 것은 26년만에 처음으로 남북대화의 통로가 마련했다는 의미보다 남북한 권력이 각자의 체제를 강화하면서 내부의 생산계급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개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아래 박정희의 3선개헌 근거를 마련하고 비상조치 통치에 이용하였다. 150년이 걸린 독일 경제성장의 상징을 의미하는 ‘라인강의 기적’을 15년만에 압축 성장시키려 했던 유신체제는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1961년 1,000만불, 60년대에 1억불, 70년대 10억불, 80년대 100억불의 환상적인 성장수치를 통계종이에 착착 찍으며 노동자계급을 철두철미 수탈하였다. 그것은 90년대에 1,000억불 수출로 이어졌고, 이러한 노력동원 방식은 몇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본축적에 사용되고 있다.
3) 생산성 임금제도 : 생산성증가에 따른 이익분배를 노사간에 상호 보장하는 제도 :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얄궂게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제안한 것으로 오늘날 세계 각국의 노사협력운동에 기반이 되고 있는 제도이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을 반혁명으로 돌리려는 개량주의 노동운동진영의 자본주의 성장운동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취지는 노동자의 생산성 기여와 이익분배의 투명성을 노사 간에 상호 보장한다는 그럴듯한 출발아래 노동자가 먼저 기업의 생산성향상운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이 족쇄도구는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집단행동을 피하려는 데서 발명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생산성향상운동, 즉 공장자동화로 인해 대량생산체제가 도입되어 노동자 일자리를 크게 위협했던 산업합리화운동이 폭발적인 노동자 파업으로 반발되어 자본주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부르주아지의 쓰디쓴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직접 부과하는 생산성향상운동으로서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공격과 노동의 저항이 동반되지 않는, 노동계급과 자본계급간의 물질적인 협력모델이다. 두 세력의 적대관계를 은폐하고 있기에 우리에겐 전혀 놀라운 제도가 아니지만, 충돌을 원치 않는 노동조합 관료들은 마치 상생의 모델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단단히 정착시켰다.
* 일터-지역평의회 연결망으로서 반생산성운동의 유효성
한 사회의 지배사상은 그 사회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오늘날 생산성향상운동은 별의별 이름을 달고 노동자계급을 동원한다. 하지만 그 기본 발상은 “더 빠르게” 노동력을 굴려 잉여가치를 창출하려는 데 있다. 이 전투의 승리자가 지배계급이라는 점은 재고할 여지가 없는 확증이다. 변혁기의 파업과 파업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문제! 직장 울타리를 친 자본의 형식적 지배공간에서는 개인적ㆍ집단적 태업을 수행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성향상운동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태업은 파업의 연장이며 파업은 태업의 압축된 표현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 대한 실재적 지배를 표현하는 직장 밖에선 어떻게 싸워야 할까? 경쟁적 생활템포를 비경쟁적 생활템포로 전환시키는 것! 노동하는 계급의 숙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주의에 맞선 상상력을 발휘하자. 자본에 포섭된 기업노조 등 현존하는 개량조직을 무너뜨리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책략은 무궁무진 열려 있다. 이 투쟁의 요지는 일터와 주거지 그리고 국가와 글로벌에서 이루어지는 부르주아지의 생산성향상운동을 잘근잘근 씹어 형해화 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활동의 한 보기로는, 집안 거실의 주인행세를 하는 재(財)테크 선전물들을 마당 쓰레기통에 처박아 불질러버리는 것도 훌륭한 모범이 된다. 이러한 일상의 저항은 일터-지역평의회와 인터내셔널의 목표아래 수집되어 자본주의 붕괴환경을 조성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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