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6일 안녕(사요나라) 핵발전소 10만집회에 모인 노동조합원들 |
수많은 조합원들이 반핵운동의 주체
일본의 노동조합은 사회변혁의 성격이 많이 약해졌고, 노동조합의 이름이 전면에 드러난 투쟁도 없었지만 반핵집회에 조합원들의 참여는 압도적이고, 노동조합의 깃발도 무수히 많이 보인다. 7월 16일 집회의 팜플렛에는 JR총련, 전노련, 렝고(연합)가 가입된 연대체인 평화포럼, 전노협 등 거대 노조의 자리 배치가 미리 적혀있었다. 그만큼의 조합원의 참여가 예상된다는 이야기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반핵집회에는 그 동안 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시민들도 많이 참여하지만, 조직된 노동자들 역시 반핵운동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규모가 큰 노동조합 외의 소수노조의 조합원들도 7월 16일 집회 뿐 아니라 총리관저 앞 집회와 같은 소위 인터넷을 통해 조직되었다고 알려진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등, 반핵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노동조합 가운데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반핵운동에 동참했던 곳도 많아, 핵발전소가 어떠한 하청체계 위에서 작동하는지, 이런 체계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위험으로 내모는지를 고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의 노동조합
후쿠시마 현지 노동조합의 상황은 또 다르다. 이들은 노동조합으로서 반핵운동에 연대하는 것뿐 아니라 핵발전소 사고의 피해자로서 그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후쿠시마의 노동조합은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방사선 물질로부터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 피난하는 것은 후쿠시마 주민들의 권리인데, 노동조합이 이러한 권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 직장을 잃을까봐 피난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가?
후쿠시마의 한 자주기업은 타 지역의 노동조합에 도움을 요청하여 모든 조합원의 가족을 후쿠시마와 인접한 야마가타 현으로 피난시켰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 곳에 거주하고 조합원들은 후쿠시마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특이한 사례로, 대다수의 노동조합은 이러한 선택을 하기 어렵다. 전국자동차교통노동조합연합회(이하 전자교) 후쿠시마지부에서 작년 진행한 논의에서는 ‘피난했을 때 그 지역에서 취직은 어떻게 하느냐’, ‘파견, 단기고용만을 전전했던 딸이 겨우 정식 직장을 잡았다. 이 회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출근하라고 얘기한다. 딸만 남겨두고 피난을 갈 수 없다’ ‘간호사인 딸의 친구는 1주일동안 자주피난을 했더니 해고되었다. 해고가 무서워 피난을 갈 수가 없다’ 라며 대부분의 조합원이 피난을 선택하지 않았다.
전자교 후쿠시마 지부 아가츠마분회 집행위원장인 아베 도시히로가 지난 12월에 밝힌 과제는 여전히 후쿠시마의 모든 노동조합에 유효할 것이다. “후쿠시마의 비극적 실태는 노동자계급이 상품으로서 지금까지 당연히 취급되어왔던 실태의 현재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고 하지만, 실제 노동자는 기계보다 싸지 않은가. 교통비를 지불하고 현장까지 혼자 달려오는 만능기계는 노동력상품으로서 인간 이외에는 없고, 하루 사용료는 렌터카보다 싸고, 쓰고 버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노동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조합원의 흔들리는 복잡한 감정을 담보할 수 있는, 현장노동에서부터의 의식적 활동가의 형성. 단결권을 사회적으로 복권시키고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계급투쟁이 본질이라는 점을 후쿠시마 현지에서 뿌리내리게 하는 지역적 노동조합과, 이러한 노동조합을 근거지로 한 전현민의 운동 추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핵발전소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 4월 22일 '어떻게 운동을 만들 것인가, 피폭노동문제' 토론회 모습 |
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핵발전소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이바라키 대학의 이나바 나나코는 지난 3월 한 계간지에 프랑스의 사례를 소개하며 일본이 같은 과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했다. 프랑스의 ‘모든 원전 하청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시민단체’의 발기인인 필립 비라르는 사람들이 사고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현시점에서 해야 할 것은 핵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인데, 그런 주장을 하는 반핵운동은 없다고 지적한다. 핵발전소가 폐로작업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또 폐로가 완료된 이후에도, 피폭을 동반하는 작업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러 노동조합과 단체들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에도 소개된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 준비회는 4월 22일, ‘어떻게 운동을 만들 것인가, 피폭노동문제’ 라는 교류토론집회를 진행하였다. 이 토론회에는 180여명이 참가하여 핵발전소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피폭노동 전반에 대한 현실을 나누었다. 토론회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현재 후쿠시마에는 핵발전소나 제염 작업 등 피폭이 동반되는 일밖에 없어, 일자리를 구해놓고 보니 핵발전소였다는 것이 현실이다. 젊은 층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라며 마치 특공대처럼 수습작업에 가기도 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핵발전소 노동자의 대부분이 일용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비정규노동자인데, 이는 국가가 지금까지 버려온 사람들에 대한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에서 배포하고 있는 피폭노동자들을 위한 매뉴얼 |
최근 위험수위가 낮아졌다는 이유로 임금이 격감한데에 대한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불만이 있다고 하지만, 이들을 조직하는 작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천황제 반대 운동을 하던 활동가 1인이 현재 후쿠시마 현지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나, 주위의 동료들이 너무 자주 바뀌어 조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 번도 비정규직이 집단적으로 싸워본 적이 없는 일본 노동운동의 경험도 어려운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81년, 일본 노동운동 역사상 딱 한 번 쓰루가 핵발전소에서 하청노조가 건설되었으나 사측의 탄압으로 파괴된 이후, 핵발전소의 하청노동자들이 직접 투쟁에 나선 적은 없다. 반핵운동이 일본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피해자인 핵발전소 노동자들과 후쿠시마에서 피폭을 감수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체가 될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