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의 새로운 투쟁에 연대하자

[낮은목소리](10) 9.23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에 부쳐

노동부의 사업장 변경지침의 본질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가 8월 1일부터 시행한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지침과 관련, 이를 반대하는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부는 사업장 변경 시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인업체 명단을 제공하던 것을 중단하고, 사업주에게만 명단을 제공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연락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노동부는 브로커들이 개입하여 사업장 변경을 부추기는 일이 많고,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라고 지침의 이유를 밝혔지만, 구체적인 수치나 사례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8월 31일 국회 토론회에서도 밝혀진 바다. 근거 없는 정책이 탁상에서 만들어져 이주노동자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업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는 당연히 불안하다. 이전에는 업체의 명단을 참고해 전화나 방문 등 사흘 안에 구직활동을 하고,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일터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업주의 간택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연락은 세 번 받았어요”, “문자메시지 받고 전화해보면 벌써 사람 구했대요” 등 구직난으로 현장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이 심각하다.

구직기간 3개월이 지나면 ‘미등록체류’가 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업장 변경이 극히 까다롭고 횟수도 제한적이라 UN과 ILO에서 지속적인 제한 해제 권고를 한 바 있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부 지침의 보이지 않는 근거는 사업주들의 요청이다. 2004년 고용허가제의 실시 이래 노동부는 주로 사업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도를 개악해 왔다. 1년 단위 계약에서 3년까지 계약을 가능하게 하여 한 사업장에 이주노동자를 더 길게 묶어 놓는다든지(사업장 변경 제한 강화), 3년 일하고 본국에 한 달간 다녀온 후 2년 더 일하던 것(3+2년)을 출국 없이 4년 10개월(3+1년 10개월) 일하게 만든 것이라든지(노동력 공백 방지), 4년 10개월간 사업장을 바꾸지 않은 노동자에 한해 이후 재입국을 허용한다든지(사업장 미이동 유도) 등이 그런 조치들이다. 결국 노동자로서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간다거나 인권침해와 같은 가혹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막는 것이 사업주와 정부가 원하는 것이다. 아무리 열악해도 참고 견뎌라! 너희들은 일하는 기계이자 노예다! 회사를 옮기지 말아라! 이것이 이번 지침의 본질이다.

  8월 19일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이동의 자유보장! 노동기본권 쟁취!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

이주노동자 투쟁, 젊은 세대의 진출

7월에 이 지침이 알려졌을 때부터 이주노조와 관련 단체들은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소속단위: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인권연대, 경기지역 이주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 인천지역이주운동연대,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를 결성하고 항의 행동에 돌입했다.

비대위는 기자회견과 7월 18일 과천 노동부 앞 집회를 시작으로 7월 말까지 각 지역 노동청 항의집회와 노동부 앞 릴레이 항의 행동, 1인 시위, 이주노동자 서명운동 등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공동체들과 함께 연대 회의를 개최하여 결의를 모으는 한편, 8월 1일 지침 시행 이후에는 현장 모니터링과 이주노동자 대중집회를 준비했다. 그리하여 8월 19일에는 고용허가제 시행 8년에 즈음하여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이동의 자유보장! 노동기본권 쟁취!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서울, 천안, 대구, 부산 등지에서 개최했다. 8월 31일에는 국회에서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권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다. 노동부는 자의적인 정당성만 강조하면서 지침 시행 3개월 후인 10월 이후에나 평가해보겠다는 말만 되뇌었다.

극적인 장면은 8월 19일 보신각 집회였다. 집회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많은 이주노동자가 모여들었다. 집회시작 30분 전에는 거의 3~400명이나 되었다. 센터를 통해 온 이들도 아니었다. 물어보니 인터넷, 페이스북, 친구들의 전화 등으로 집회 정보를 알고 왔다고 했다. 사업장 변경을 어렵게 만든 노동부 지침이 나쁘다고, 그래서 모이자고 했단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집회 시작 전에 무대 앞으로 사람들을 모아 투쟁에 관해 설명했다. 이들은 매우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질문도 했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통역도 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즉석에서 이주노조 가입원서를 돌리니 스무 명도 넘게 가입했다. 이어진 집회에는 족히 800명 정도가 모였다. 주최 단위에서도 깜짝 놀랐다.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왔을까? 과연 페이스북과 친구들끼리 주고받은 문자, 전화로만 이렇게 모일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했다.

집회는 시종일관 활기가 넘쳤고,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연설 하나하나마다 박수 치고 소리 지르며 화답했다. 명동까지 행진하면서는 더욱 놀라웠다. 집회에 처음 나온 노동자들인데도 맨 앞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정적으로 구호를 외치고 정말 열심히 행진을 주도했다. 명동성당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를 하고 나서도 흩어질 줄을 몰랐다. 즉석에서 또 발언이 이어지고 이후에 다시 모이자는 제안이 되었다. 그래서 향후 활동방향을 논의하기로 했고, 한 주 뒤 열린 모임에 7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활발한 토론을 했다. 이에 9월 23일 대규모 집회를 결의한 것이다. 이들은 이전에 이주노동자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본국에서 투쟁을 경험한 적도 없다.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와 불의한 현실에 눈떠 운동에 나선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다.

  8월 19일 보신각 결의대회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새로운 기회

이번 투쟁은 그간 침체되어 있던 이주노동자운동이 다시금 일어서는 투쟁이다. 2003~2004년에 단속추방과 고용허가제 실시에 맞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해 벌였던 명동성당 농성 투쟁에 이어 근 10년 만에 실질적인 대중투쟁의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즉, 이주노동자운동을 새롭게 조직하고 주체를 형성할 유력한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투쟁이 승리하려면 주체를 더 많이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지지와 연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주노조를 중심으로 조직화 사업을 하고, 각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운동 단체와 연대체를 통해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번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9월 23일 집회는 대단히 중요한 계기이다. 사실 지난 8월 19일 집회에서는 이주 운동진영 외에 연대단체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이번에는 노동조합을 위시한 수많은 연대단위들이 결집하여, 노동운동 진보운동 세력이 이주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고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집회는 전국 집중 집회여서 각지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스스로의 힘을 자각할 수 있는 계기이다. ‘한국 단체들이 이렇게나 많이 이주노동자를 지지하고 연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심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9월 23일은 이주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세대들과 어깨 걸고 함께 외치자!

STOP EPS! (고용허가제 페지하라!)
Free job change!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하라!)
We want labor rights! (노동권 보장하라!)
Down Down labor ministry! (고용노동부 규탄한다!)
Up Up labor rights! (노동권 쟁취하자!)
Labor is one! (노동자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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