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지난 4월 6일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극단적인 위협에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전쟁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냉전지역인 한반도 남쪽 땅에서 살아보면 이 정도의 위협과 공포에서 해방된 지는 오래전의 일이다. 간헐적인 국지전과 주택가 상공을 낮게 비행하는 군용기와 전투기들의 반복된 일상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설령 전쟁의 공포를 느낀다고 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최첨단 무기로 치러지는 21세기 전쟁에서 인간은 나약한 총알받이이자 희생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초전박살의 결의를 다진 박근혜 정부와 한반도를 최첨단 무기 전시장으로 만들어 버린 미국이 더욱 두렵게만 느껴진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도발하면 5일 이내에 북한의 핵심전력 70%를 궤멸시킬 수 있고, 또 북한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도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이 궤멸적 타격을 입을 동안 속수무책일리는 없을 테니, 북한의 공격으로 남한 주민들 역시 수만에서 수십만이 희생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숨은 북한을 궤멸시키기 위한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과연 박근혜 정부에게 인권에 대한 의식이 있는지 생명에 대한 존중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결국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쟁은 최종 승자가 누구냐와 상관없이 곧 남북한 모두 엄청난 인명과 재산 손실을 초래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한반도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영변 5㎿ 원자로 재가동 선언, '무수단'급 중거리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의 동해 이동, 개성공단 통행 제한 그리고 평양 주재 24개국 대사관에 대한 철수 권고 등 일련의 단계적 조치를 통해 남한과 미국을 향한 위협 수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B-52전략 폭격기를 지난 달에 보낸데 이어 핵잠수함 샤이엔과 B-2 스텔스 폭격기로 가볍게 위용을 과시하더니 ‘꿈의 전투기’로 불리는 F-22 스텔스 전투기 2대를 오산 공군기지로 전개하면서 일련의 첨단무기 배치의 정점을 찍었다. 이와 함께 지상에서 발사돼 날아오는 탄도미사일 탐지 전용 레이더인 SBX-1과 요격 미사일을 탑재한 구축함을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진입시킴으로써 최첨단 무기쇼는 모두 끝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 SBX-1은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핵심장비로써 MD체계 구축은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대북 정책이 과거의 ‘전략적 인내’에서 ‘맞대응(confrontational) 전략’으로 전환했음을 확인했고, 한국의 요청에 의해서 과시된 첨단 무기는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론을 일거에 불식시키고 핵우산의 위용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연일 긴장의 수위를 높여가는 북한의 위협이나 이에 맞대응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한국과 미국 모두 한반도 긴장의 공범인 셈이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의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으려면 결국 북한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러기위해서는 북한이 원하는 요구조건 중 일부를 들어줘야 한다. 그것은 핵보유국가로 인정을 하고 체제 보장을 해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후 논의하는 조건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무조건 해줌으로써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사를 파견하든 아니면 직접 발표를 하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국지전의 발발은 남-북-미 세 국가 모두에게는 모두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부담이 있어서 신중함이 요구된다. 미국은 이미 MD체계 구축, 12조원에 달하는 전투기 판매, G2 시대에 걸맞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정치군사적 패권 유지 등 많은 이득을 취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어도 된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한반도 긴장이 대내용으로서의 효과를 아직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다. 다만 전쟁의 전개양상과 결과가 지배세력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쟁 이후의 뒷일을 고려하면 쉽게 선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4월 10일~15일 전후로 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북한이 동해상에 미사일을 시험발사를 하면서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을 수도 있다. 북한이 지난 번 성명에서 핵군비 경쟁을 반대하고 핵군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듯이 여전히 비핵화 논의에 나설 여지를 완전히 닫아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명분이라면 한국과 미국이 조속히 명분을 제공해서 협상에 나서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은 5~6월까지 박근혜 정부의 반응을 기다릴 것이다. 4월 중순에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후 협상국면으로 전환하여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까지 지루하게 협상을 끌고 갈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현재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5월 미국 방문 결과를 기다릴 가능성도 매우 크다. 그 이후에도 대북 정책에서 별로 바뀌는 것이 없다면 도발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이렇게 현재의 한반도 상황이 전쟁으로 이어질지, 막판에 극적인 반전이 나타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북한이 사실상의(in fact) 핵보유국으로서 인정을 해주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는 북한을 둘러싼 주변 국가 모두의 대북 정책이 비핵화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비핵화는 당분간 물건너 갔다. 북한에게 핵무기가 어떠한 조건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체제유지 수단이자 협상카드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다.
지금은 북한에게 단순한 대화제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핵문제와 교류협력 문제를 연동해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와 무관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 활성화 방안을 공식화하는 것이 박근혜가 강조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단추가 아닐까? 대북 지원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도발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면 대북 인도적 지원이 매우 경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북핵 문제 해결의 첩경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서 생산적인 외교를 부활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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