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아파트를 찾아서

[최인기의 사진세상](29) 서울 지역 40년 이상 된 아파트 탐방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서울 종로구 내자동 일대에 있던 미쿠니아파트로 전해집니다. 이 아파트를 만든 것은 중국, 일본에 석유를 수출하던 미쿠니상회로 1935년에 4층(연건평 635평)과 3층(199평)짜리 건물 2동으로 지었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 를 살펴보면 1932년 조선주택영단은 여러 가지 주택 유형을 연구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에 여러 대안을 실현하게 되고 그중 하나가 충정로에 남아있는 아파트입니다. 초창기 건물소유주 토요다(豊田)씨의 이름을 따 한국식 발음인 풍전아파트로 개칭되었으나 혼용하다가 유림아파트로 바뀌게 됩니다. 해방 뒤에는 미군 숙소로 사용됐으며 아파트의 옥상에서는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는 군요. 1960년대 말에 한국인이 인수해 호텔로 사용하다가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일부가 철거가 되고 지금은 충정아파트로 이어내려오고 있습니다. 근처에 민중언론 ‘참세상’ 사무실이 있습니다. 광복 이후 최초의 아파트는 지금은 사라진 1958년 성북구 종암동에 세워진 종암 아파트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6학년까지 필자는 이곳 근처 숭례초등학교에 다녔는데요. 같은 반 친구가 그곳에 살아서 종종 놀러 다녔는데요. 당시에 집이 무척 컸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최근 자료를 살펴보니 한 가구당 크기는 17.3평(공용면적 포함)이었고, 4층짜리 건물 4동에 모두 152가구가 지어졌다고 전해오는데요. 아마도 친구네 집은 2가구를 한집으로 개조해서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군요.


사진은 1965년 지어진 종로구 창신동 동묘역 앞에 있는 동대문 아파트 입니다. 모두 131가구로 홍제동의 홍제아파트 81호, 돈암동아파트 90호 등 당시 건설된 몇몇 소형아파트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동대문 아파트의 특징은 겉에서 보기엔 하나의 아파트 이지만 관리실을 통해 1층으로 들어가면 작은 광장이 열려있고 광장을 기준으로 양쪽에서 세대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하늘은 열려 지도록 지어졌습니다. 한때 아파트의 고급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관리실에서 함부로 물건들을 내놓지 못하게 집집마다 관리를 하기도 하였다는 데요. 이밖에도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온돌방과 부엌, 화장실 등을 필수면적으로 하여 면적을 극소화하여 지었으며 마루방을 폐지하고 온돌화하였고, 화장실을 개인용 반 수세식으로 하였으며 마루 또는 다용도실을 두었습니다. 코메디언 이주일등 연예인들이 많이 거주를 해서 ‘연예인 아파트’ 로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손정목의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를 참조하면 본격적인 아파트 단지시대를 연 것은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만든 마포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는 애초 중산층 이상 시민들이 들어와 살 수 있게 10층 정도의 고층으로 지으려 했지만, 미국 대외원조기관(USOM)의 반대로 6층(6동 350가구)으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그럼 김장독은 어디에다 묻느냐”는 것이라는데 이 이야기는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발레리 줄레조’의 책 ‘아파트 공화국’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아파트를 부정적인 의미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가령 복잡한 도시문제와 ‘도시폭력’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대단지 아파트는 도시의 분열을 조장하고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주거 형태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약 30년 전 본격적으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을 당시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생소한 아파트는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아주 냉담했다고 합니다. 특히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를 통해서 아파트의 이미지는 썩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강서구 염창동 등마루 아파트입니다. 1970년에 지어진 아파트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전체 4개동으로 보입니다만 한 동에 두 개의 건물이 맞붙어 그사이로 오픈된 계단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정말 독특한 모습을 한 아파트입니다.


한국에서 도시계획이라는 물리적인 행위는 강제철거와 맞물려 돌아갑니다. 서울시는 1950년대 말부터 1972년까지 무허가 판자촌 주민 30만 명을 시 외곽의 98개 지구에 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 이주시키게 됩니다. 본격적인 재개발 정책이 추진되면서 도시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형태로 아파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옥 주들에게 시영 아파트 입주권이나 이주 보조금이 지급되면서 박정희 정부는 도시화와 함께 아파트단지를 적극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부유층과 상류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장려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학교 이전 등을 포함하는 거주환경에 대한 총체적인 개선책이 뒤따르게 됩니다. 사진은 남산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구의 회현 시민아파트입니다. 우선 정계인사 뿐만 아니라 안기부 직원들도 많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데요. 아마도 근처에 남산 안기부 대공 분실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랬던가? 봅니다. 이밖에도 한때 ‘아파트’ 라는 노래로 한 세대를 풍미한 가수 윤수일을 비롯하여 이곳도 많은 연예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상 10층, 1개동으로 구성돼 있다. 총 352가구로 면적은 대부분 전용 38.34㎡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영구임대아파트 크기에 불과한 작은 아파트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난방식으로 방 2개와 최신식 시설이었던 수세식 화장실과 작은 나무마루가 갖춰져 있습니다. 특히 외형적으로 출입구가 1층과 6층 두 곳에 있는 데요. 남산의 급격한 경사지에 짓다 보니 언덕이 6층 높이까지 올라와 있어 언덕과 6층에 구름다리를 설치하고 출입구를 만들어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 한 것입니다.


1968년 동부이촌동에 공무원 아파트 단지, 1970년 한강맨션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서며 아파트는 부유층이 사는 고급 주택 단지로 자리를 굳혀 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주춤한 아파트 개발붐은 중동건설 경기가 후퇴와 맞물려 한국의 아파트 개발붐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에 여의도 주변의 제방도로인 윤중제와 강남개발이 이뤄지며 한강을 중심으로 수많은 아파트가 지어져 병풍처럼 강변을 둘러싸게 됩니다. 사진은 1970년 용산구 한남동 한남 시범아파트입니다. 산허리에 지어진 한남 시범아파트는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외형은 양호해 보였습니다. 스카이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광장의 바닥은 시멘트와 콘크리트가 아닌 흙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곳은 곧 재건축이 추진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제 서울의 주거는 절반이상이 아파트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둘러싼 역기능이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때 부(富)의 대명사이자 욕망의 대상이 되었던 아파트가 과연 시간이 흐른 후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올까요?


2012년 여름에 방문한 서대문구 충정로 금화 시범아파트입니다. 몇 년 전 근처에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 했던 곳입니다. 이 아파트는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까지 방문한 아파트 가운데 가장 낡고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풍겨나는 쾌쾌한 냄새들 낡고 오래된 창틀과 거미줄, 계단을 따라 어이진 좁은 길을 따라 옥상으로 향하니, 깨진 장독과 그 사이로 누군가 그려 놓은 그라피티가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 있습니다. 어둑어둑 해지고 건물의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자 낡은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이 창밖으로 서울을 내려다보면서 수많은 불빛처럼, 희망을 꿈꿨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철거는 곧 아파트 건축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역의 주민들에게 분양권을 주는 대신 용적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시간이 흐른 후 주민들이 다시입주 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또 세입자들에게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주더라도 3-4인 가구가 살기에는 비좁은 현실과 높은 임대료와 관리비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무분별하게 지어온 아파트의 문제라 할 것입니다.


1970년도 지어진 미근동 서소문아파트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자고 일어나면 한집 두 집 이사를 가고 동네는 파헤쳐는 대신 새로운 공간을 지배하는 낮선 건물들이 차곡차곡 들어섰습니다. 이 나라는 모든 건물을 고층으로 만들려는 욕망으로 들끓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아파트들은 개발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낡고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로 남아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서소문 아파트는 근처 경찰청에 항의방문을 갈 때 마다 스쳐 지나던 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1층은 상가로 구성되어 있고 길의 굴곡에 맞춰 휘어 돌아가는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총 7층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각각의 층간의 높이가 매우 작고 각 세대가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가? 어떤 브랜드를 가진 아파트에 사는가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이처럼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것에 대하여 당당히 자부심을 갖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서소문아파트 근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1971년 지어진 중구 중림동 성요셉아파트를 찾아 봤습니다. 미근동 서소문 아파트가 도로를 따라 휘어진 모습이라면 총 60세대가 살고 있는 성요셉 아파트는 언덕을 따라 위로 휘어진 모습입니다. 커다란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편복도형이 길게 이어져 있고 주거공간이 배치된 형태입니다. 문마다 성당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니 주민들이 근처 약현성당의 신자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파트 이름이 성요셉 아파트인 것도 초기 약현성당의 소유였지만 그후 성당은 다른 사업을 위해 아파트를 민간에게 매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아파트를 매입하고 매매하는 것을 통해 부의 축적을 가져다주었고, 사생활의 보장이라는 것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콘크리트 담장 속의 배타적공동체와 고립된 섬이라는 지적 또한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작은 서민아파트들은 이러한 재테크의 수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며 전통시장의 분위가 엿보이는 주변의 크고 작은 상가는 사람간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1971년 지어진 성북구 정릉동 스카이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에 들어선 순간 마치 언젠가 와 본 듯한 ‘기시감’이 팍 들었습니다. 아마도 영화 촬영지로 많이 활용되어서 그런 듯싶습니다. 아파트 초입에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들과 나무들은 오랜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스카이 아파트는 붕괴를 대비하여 철 기둥을 박아 놓은 게 군데군데 눈에 띕니다. 아파트 내부구조는 개방된 편복도형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옥상에 오르니 근처 정릉의 푸르른 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삼각형 모양의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아파트는 모두 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운 흙바닥 그대로였습니다. 빈집을 슬며시 열고 들어가니 작은 수세식 화장실과 2개의 방이 보입니다. 아파트 외벽에는 ‘서울시와 성북구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라는 글씨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어 오래전 주민들의 저항이 있었던 흔적을 보여 줍니다.


가장 나이어린 1973년 지어진 동대문 맨션아파트입니다. 이아파트도 근처 필자가 삼일아파트에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유년기에 기억이 나는데요. 동대문 아파트 근처에는 1960년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대문 실내 스케이트장이 있었습니다. 엄혹한 시절 박정희 대통령 자녀와 소위 고관들이 이용을 할 때는 실내 스케이트장을 통째로 빌려서 사용을 하였으니 그 주변이 엄격하게 통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동대문 맨션아파트는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인을 통해 물어보니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함께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맨션’ 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로써는 매우 호화스러운 아파트였다는 겁니다. 아파트의 구조는 각 층마다 홀 형으로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고, 각 세대의 주택은 이 홀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동대문 맨션아파트는 오랫동안 계속 주거 기능이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청계천 삼일아파트는 최초의 서민아파트로 불리고 있습니다. 청계천 복개는 1955년부터 시작된 청계천복개공사는 꼬박 15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70년대 말에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청계고가 공사는 1967년부터 시작되어 약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청계고가는 김포공항에서 워커힐아파트까지 단숨에 달릴 수 있는 일종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 도로였습니다. 고가도로에서 내려 보면 청계천주변의 판자촌이 눈에 띄는데 이곳을 철거하고 들어 선 게 바로 삼일 아파트입니다. 삼일 아파트는 1~2층은 상가로 되어있고 3~7층은 주거용으로 건축되었으며 기다란 복도 양쪽에 각각 주거공간이 들어서 있습니다. 약 33.057㎡ 크기에 방 두 칸 그리고 작은 화장실이 있으며 나무마루와 연탄보일러를 갖춘 아파트 이었습니다. 당시로선 최신식아파트였지만 팔자가 삼일 아파트에 살 당시에는 이미 7층까지 연탄을 배달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으며 서서히 낡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청계천 7가와 8가 사이 일부 2층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1967년 세워진 세운상가(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뜻)는 총 공사비 44억 원을 들인 주상복합아파트의 효시라 할 것입니다. 총 13층 높이의 이 아파트는 서울을 횡으로 약 1km를 가로질로 종로에서부터 청계천과 을지로 충무로 그리고 퇴계로까지 이어집니다. 당시 이 자리는 1945년 조선총독부가 도심 폭격시 대형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폭 50m 약 1Km 정도의 화재방지용 도로와 공터였던 셈입니다. 이곳에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란민과 실향민들이 모여들어 무허가 판잣집만 2,200여 채가 모여 살게 됩니다. 이곳을 건축가 김수근이 35세에 맡아 상가이자 주택, 자동차 도로인 동시에 보행로라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게 됩니다. 1~4층은 상가, 5~17층은 아파트 지상은 자동차 전용도로와 주차장, 3층은 4개 상가군을 연결하는 1km 길이의 보행데크가 계획됐던 것입니다. 게다가 5층엔 인공대지를 만들고 동사무소·파출소·은행·우체국을 넣고, 옥상엔 초등학교를 만들어 각 지구가 하나의 작은 도시가 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계획은 결국 미완성으로 토막 납니다. 이 도심 속 매머드 건물은 청계·삼일고가와 함께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한때 동양 최대의 전자상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의 흔적은 이처럼 새로운 것을 낡은 것으로 변모시키고 말았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공원으로 개발하려던 세운상가가 현대식 타운형 상가로 리모델링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도심 내 대단위 재개발 사업을 공영 방식으로 진행하기 부담스러운 데다 통합개발에 나설 경우 보상금을 둘러싸고 지주간 갈등이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현재로써는 세운상가의 미래도 대단히 불투명해 보입니다.


이상 서울지역의 40년 이상 된 아파트들을 살펴봤습니다.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는 입장이었지만 아파트의 위치와 여건이 개발되기에 녹록치 않거나 현재 주택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방치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철거가 시작된 아파트를 빼고 몇몇 아파트는 그 구조가 튼튼하고 독특한 외형을 띄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는 창신동 ‘동대문 아파트’를 매입해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으로 임대를 할 것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후로 더 이상 진전되지는 않은 듯합니다. 문득 떠오르는 단상은 오래된 아파트들을 자치단체에서 구입하여 리모델링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제까지 아파트를 둘러싼 도시의 흔적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 터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거대한 아파트촌의 미래는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참고자료
-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후마니타스)
-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 손정목 (한울)
-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장림종,박진희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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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너무 달라요

    당시 1950년대~1970년대에 활동했던 유명연예인들이나 톱스타들은 거의 대부분 몇몇갑부연예인들을 제외하고는 저런 아파트들에서 많이사셨다고하네요? 물론 지금은 빈민들이 사는 아파트로 변모했지만요~!

  • 청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아파트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고있습니다. 좋은 참고자료가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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