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하고 무능한 조선정부와 동학혁명
구한말 조선에서 자주적인 국가의 위상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일본 청 러시아 등, 열강들의 꽃놀이패에 가려진 조선은 점점 멸망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다. 열강들의 중장기 지배전략으로 기획된 문화침탈은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변화시켰다. 기차가 놓이고 의식주가 바뀌며, 단발령도 내려졌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이 청에 승리하여 랴오둥반도 및 대만을 장악하는데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의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랴오둥반도는 다시 중국에 되돌려준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조선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으려 안간힘을 쓰고 결국은 아관파천(왕의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김)이 일어난다. 국가의 안위와 민중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할 임금이 자신의 권력유지 때문에 외국공관으로 도망가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여기에 지하자원 채굴권과 산림권, 어업권 등을 열강들에게 내 주는 것은 물론 외국군대의 주둔으로 조선정부는 자주적 국가이기를 포기했다.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는 을사늑약의 바탕에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실패와 청일전쟁이 자리한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면 상황은 더욱 명확하다.
1884년 갑신정변에서 수구파와 개화파는 각각 청나라와 일본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주변 열강들에게 조선침략의 명분을 주었다. 조선 내부의 정치투쟁에서 정파 간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욕망으로 외국군대를 요청하였다. 동학농민혁명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자주’와 ‘평등’을 모토로 왕조타도, 계급타파, 토지개혁, 체제(봉건제)혁파를 주창했던 전쟁이었다. 동학의 깃발을 세우고 출발한 파죽지세의 농민혁명군이 방대한 규모, 강한 전투력을 가진 것을 알게 된 조선 정부는 청나라 정부에 원병을 요청했다. 이에 일본도 조선을 침략할 속셈으로 군사를 보냈으며 이는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동학혁명군은 관군만이 아니라 조선정부의 요청에 따른 다국적 연합군(조선관군, 청나라, 일본군대)과 맞서 싸워야 했다. 엄청난 화력을 지닌 다국적군과 농민군 간에 전쟁의 결과는 실패가 예고된 싸움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동학혁명이 실패함으로써 조선의 미래는 긴 식민지배를 경험하고도 제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비극에 처해졌는지도 모른다.
금융세계화의 깃발을 움켜쥔 중국
그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오늘,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세력교체 현상이 나타나고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다. 1945년부터 짧지 않은 세월, 한국은 미국을 부모국으로 섬겨왔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고, 무조건적으로 미국에 호의적이다. 특히 국가지도자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미국정부의 눈도장을 찍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정작 미국과의 외교는 동맹 혈맹이라는 이유로 ‘해바라기 외교’가 되고 있는 열악한 상황임에도 말이다. 역대 정부가 공통적으로 자주외교와 실리외교, 그리고 자원외교를 주창했지만 이들이 실제로 자주외교를 통해 실리를 챙겼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과 불평등한 협약들은 다방면에 걸쳐 반세기가 넘도록 고착되어 있다.
세계경찰인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는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의 동력을 활용하여 최근엔 중국의 주도하에 새롭게 조직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 AIIB는 미국과 일본주도의 ‘세계은행’, ‘IMF’, ‘아시아 개발은행’에 타격을 가하며, 달러유일의 기축통화가 위안화로 변경,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AIIB에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약 60여개 국이 참가를 확정함으로써 중국은 세계 금융시장 지배의 포석을 깔았고, 머지않아 세계은행이나 IMF처럼 금융세계화, 구제금융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시장유연화와 구조조정을 압박할지도 모른다. 금융부문에서 미국은 점차 세력을 잃어가며 지는 해로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미국의 힘이 중국보다 훨씬 세다. 다만 달러유일의 기축통화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의 불공정협약과 동맹국(일본, 한국)을 활용하는 미국의 동북아정책
한국은 국방관련 과학기술분야에서 미국과 맺은 쌍무 협상에 의해 국방기술 개발을 제한받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 사거리의 경우 300km를 넘을 수 없고, 탄두 중량은 500kg를 넘을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는 현실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는 한국과 미국의 협상결과라기 보다는 미국의 ‘지침’이다. 미국은 미사일 탄두 중량이 500kg을 넘게 되면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고, 사거리가 300km 이상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의 미사일 기술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현대 국방력 측정에서 미사일이 갖는 중요도를 고려해볼 때, 한국의 자주국방 능력은 미국에 의해 심각하게 제약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전시에 외부의 공격이 있어도 전략적 방어, 공격은 맘대로 할 수 없는 ‘국가’이다. 이렇게 부실하고 취약한 군사력은 미군의 판단과 미국의 전략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균형 잃은 협약이지 정상적 협약은 아니며 국가와 국가 간의 협약으로는 더더욱 볼 수 없다. 전쟁무기 개발과 확산을 억제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인류평화의 가치로 봤을 때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국가의 전략이 자국이 아닌 타국(미국)에 의해 결정되고 규정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패권적이며 독립국가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미국이 동북아 패권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세계질서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미-중 사이에 세력 교체가 일어날 때는 필연코 충돌이 생긴다. 미국은 패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중국 또한 영향력을 높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이때 미국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일본과 한국이며 미국은 동맹이라는 잣대로 일본과 한국의 힘을 빌려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최근,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의 왜곡을 일삼으며 한일의 감정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데 일본 사회는 점점 우경화로 선회하며 ‘과거는 묻지 마세요’를 일관되게 열창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미국주도하에 동북아 재편을 위해 ‘과거는 잊고 미래를 기약해야한다’는 메시지만 남발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게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위해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다며 과거사에 대해 일본과 타협을 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데 일본으로선 아주 반가운 일이다.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일본의 재무장화 카드를 맘대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열렸던 미일 안보협의회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논의를 환영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이는 과거와 달라진 미국의 위상에서 기인한다. 시소의 올라간 반대편에는 역시 중국의 중량감이 급격히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배치, 미국의 한반도 지배와 자국 방어 전략...군비경쟁 촉발시켜
이런 상황에서 사드(고고도 미사일)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전시 군작전통제권을 미국에 양도한 한국으로서는 난감한 입장에 처해져 있다. 사드배치는 곧 한국의 미국MD(미사일방어)체제 편입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MD운용의 핵심인 상호통합운용 원칙에 따라 한미일 3개국의 군사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드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중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러시아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의 아시아 군사 전략 대원칙은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점차 본인들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MD를 통해 아시아 주요 2개국(한국, 일본)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중국의 아시아 영향력 확장은 집 앞마당에서부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사드배치에 대해 중국이 발끈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사드의 핵심 구성품인 고성능X-밴드레이더 때문이다. X-밴드는 성능이 아주 뛰어나 최대 탐지 거리는 1,000km를 넘어 서고, 파장도 짧아 정밀한 탐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그 크기도 작아 수송기로 실어 나를 수도 있다. 현재 사드는 미국영역이 아닌 곳에 배치된 지역이 없고, 미국의 X-밴드는 일본 오키나와 지역에 배치되어 있으며, 중국의 연안 지역까지 탐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사드가 설치되었을 때는 문제가 다르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이것을 운용하는 미국은 중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베이징을 샅샅이 뒤져볼 수 있게 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핵심 군사 시설이 24시간 감시당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에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또 다른 군사적 대응을 준비할 것이고 동북아에 새로운 긴장의 기류가 발생할 것이다. 결국, 미국과 함께 사드를 운용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가 지뢰밭이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보다 껄끄러운 상황은 없을 것이다. 사드배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의 이해관계가 중심이지 한국에서는 사활적인 것이 아니다. 미국의 자국 방어체제와 아시아중시정책에 따라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드 한국배치인 것이다. 중국의 반발에 대해 한국정부의 입장은 “미국으로부터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NO’입장이다. 미국에서는 연일 한국에 사드배치가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갈수록 사드찬성론이 굳어 가고 있으며 진보진영에서는 반대전선을 꾸리고 있는 정도이다. 한국정부의 ‘3NO’입장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외교적 전략이 부실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드배치와 한반도 평화는 역관계
이미 동북아의 안보상황이 극도로 복잡한 구도에서 사드배치는 동북아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고 한반도에 공포와 불안을 조성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발한 외교는 물론, 한국의 안보전략까지 간섭 개입하고 있는 과도함을 드러내며 한국을 ‘동네북’으로 여기고 있는 꼴이다. 한국정부도 이런 행태들을 모르지 않겠지만 ‘혈맹’, ‘영원한 우방’이라는 순진한 생각과 ‘전략 없는 외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사드배치는 한국에 이익보다는 한반도에 긴장조성으로 안정과 평화를 해칠 뿐이다.
영토 없는 국가가 존재할 수 없듯이 국민 없는 국가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국민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가 열강들의 주도권 싸움의 전쟁터가 된다는 것은 한반도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안정된 삶의 권리를 짓밟는 짓이다.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국가는 가장 강력한 조직적 폭력집단”이라고 했다. 이 말에 국가 대신 민족이나 인종이란 단어를 집어넣으면 제국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이해가 빨라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배 권력의 의도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1636년 조선은 주변국들의 권력이동이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명나라에 사대주의를 고집하다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짓밟히고, 민중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인조가 청 태조에게 항복하는 의미로 삼전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맛봤던 역사가 400년을 훌쩍 지난, 이전의 낡아빠진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미국, 일본, 중국 등)의 한국에 대한 간섭과 협박에 대응하는 한국의 ‘균형 없는 외교’, ‘전략 없는 외교’, ‘무능한 외교’가 한국에 제국들의 싸움판을 깔아주며 먼 과거가 현재에 되살아나는 역사의 생생함으로 오버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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