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하순]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국가와 자본의 매수에 무감각해진 게 아닐까요"

[민주노총진단연속기고](5) - 이수호 위원장님께

이수호 위원장님께

가을이 깊어가고 있군요. 설악의 단풍이 한창이랍니다. 안녕하십니까. 박하순입니다. 위원장님께서 민주노총 사무총장이셨을 때 총연맹에서 잠깐 같이 일한 적이 있지요. 술 한 잔 제대로 같이 한 적이 없는 사이로서 이렇게 남의 이목을 끄는 편지 형식의 글을 쓰게 되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실 저로서도 이렇게 남의 시선을 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저런 눈치 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위원장님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민주노조운동을 위해서 말입니다. 건방지다 생각지 마시고 한 번 읽어주십시오. 뭐 특별한 내용이 있거나 아름다운 글은 아니지만요.

위원장님, 지금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사퇴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듯 합니다. 런닝메이트인 이석행 사무총장도 설득하십시오.

우선,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왜 그리 다그치냐, 그리고 하반기 투쟁 좀 마무리하고 내려가겠다는데 왜 이리 성화냐 하시겠지요. 위원장님, 그러나 이번 사안의 성격 상 위원장님께는 이런 여유 있는 마무리가 용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이번 비리는 재판의 최종적인 판결이 나와 봐야겠지만(독재의 하수인이면서 수많은 비리의 온상이기도 한 검찰과 판사 등 사법부의 평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우리가 참 한심하군요), 검찰 기소내용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강수석의 비리는 매우 심각한 비리로 보이는군요.

강승규 수석은 전액 택시노동자의 처우개선에 쓰이도록 한 부가세 경감분 중의 일부를, 업주 요구에 밀려 업주에게 양보한 댓가로 돈을 받은 것 같습니다. 최종 확인은 있어야겠지만 박복규 택시사업자협회 회장이 ‘사업자 측의 부가세 경감분 관련 정책에 협조를 부탁하며 금품을 지급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업주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이익을 배반하고, 그 댓가로 업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매우 심각한 비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택시노동자 상태는 그야말로 극한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런 택시 노동자를 외면한 댓가로 업주에게 돈을 받은 것입니다. 전 부가세경감분 처리와 관련하여 업주들의 태도가 완강하여 노동자의 요구를 전면 관철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합원들의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거나 혹은 안하고 돈을 받은 것입니다.

택시업은 대표적인 내수산업으로서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지속적인 내수침체로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택시 요금 인상과 서울의 경우 버스노선 변경으로 그 나쁜 정도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택시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밑바닥 그 자체였습니다. 정부 공식 통계에 의하면 회사택시 노동자가 회사로부터 받는 1인당 연 급여는 2004년 8백71만 원이었습니다. 2003년에는 9백24만 원이었다가 5.5%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게 한국사회에서 정상적인 급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물론 택시노동자의 총소득은 여기에다 사납금을 채우고 남는 부분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사납금 채우기도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사납금을 채우고 나머지 소득이 있어서 총소득이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의 두 배가 되다하더라도 1천7백42만 원이네요.

택시노동자들의 소득을 보다 정확히 추정해 보기 위해 개인택시기사의 소득을 좀 볼까요. 회사택시 노동자들보다 아무래도 기능이 더 뛰어난 개인택시기사의 1인당 순소득(부가가치액; 택시보유에 따른 감가상각비와 자산소득도 포함된다는 것이지요)을 보면 2000년 2천1백75만 원, 2001년 2천2백7만 원, 2002년 2천56만 원, 2003년 1천9백99만 원, 2004년 1천9백39만 원입니다. 고숙련, 감가상각비, 자산소득까지 포함해서도 2천만 원이 안되는군요.

이런 개인택시 기사의 조건마저도 회사택시 노동자들의 조건보다 훨씬 양호했던 것 같습니다. 2004년에 회사택시 종사자수는 7.6% 줄어든 반면 개인택시 종사자 수는 2.2% 늘어났다니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노동시간이 비슷하다면 택시노동자들의 총소득은 1천5백만 원이 채 안되지 않을까 짐작이 됩니다. 도저히 정상적인 소득이라 할 수 없는 액수입니다. 강승규 수석 부위원장의 비리는 이런 열악한 택시 노동자들을 외면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안면이 있어서 막말을 하기는 그렇고 강승규 수석도 참 어리석기 그지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자본과의 이러저러한 경험 다 겪고 난 후 산별연맹 위원장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지위에까지 올랐으면서 자본의 매수 기도에 넘어가다니요.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조 간부를 매수하는데 얼마나 혈안인지 몰랐을까요. 수많은 사례들을 보도 듣지도 못했을까요. 파렴치한 자본의 덫을 자신은 빠져나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가난한 택시노동자(강승규 수석이라고 예외겠습니까), 조합비도 잘 안내 연맹도 가난한데, 개인적 조직적 용도로 돈은 필요하고... 그래서 눈 딱 감자고 생각했겠지요. 자주 대면하면서 연합회 회장과의 사이도 과히 나쁘지는 않았겠지요. 그가 그렇게 배신할 줄 몰랐겠지요. 어리석은 것이지요.

말이 나온 김에 관련해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이수호 위원장님께서도 찬성하신 국고보조금 문제인데요, 전 그 국고보조금 지급도 국가(즉 총자본)의 민주노총에 대한 매수행위라 생각합니다. 당시 노동부는 민주노총이 하루 빨리 국고보조금을 받아가란 입장이었지요. 조직이 결정을 하지도 않았는데 예산 배정을 해놓고선, 이번에 안타가면 예산이 없어진다면서 설레발을 쳤습니다.

노동부가 왜 그랬을까요? 내외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국가는 민주노총을 타락시키길, 길들이기를, 그래서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길 바라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당시 이런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고보조금을 받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 일로 인해 민주노총을 나오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해보자고 했지요. 제가 속이 좀 좁은 놈이긴 합니다만, 전 사무총국 안에서 국고보조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던 사람들을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강승규 수석 사건은 이렇게 우리가 국가와 자본의 매수기도에 무감각해지면서 터진 사건이 아닐까요? 민주노총을 설립하고 관여해온 우리 모두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라 여겨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한 짓은 아닌데 왜 날 그리 닦아 세우냐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위원장님도 사건이 터지고 나서 물러나시겠다고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이 임명하신 수석이고, 그래서 연대책임을 지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한선주 동지 등 많은 동지들이 이야기했지만 집행부 안에 이런 비리가 터지면 집행부 전체가 물러나는 것은 민주노조운동 안의 전통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부패와 비리로 썩어문드러진 지배계급들보다는 훨씬 수준 높은 민주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이런 우리의 전통에 대해 지배계급은 경외감과 질시의 마음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한겨레신문 등 제도언론에서는 몇 달 후 총사퇴하겠다는 이번 위원장님의 결정에 대한 평가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물론 자본의 이익을 전투적으로 수호하는 조선일보의 ‘비리 민주노총 “대정부 투쟁”’이라는 조롱이 있었긴 하지만요).

그러나 이런 제도언론의 호의적인 평가가 다 민주노총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해서, 민주노총을 별 볼일 없는 민주노총으로 만들어 놓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꿰뚫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당장 위원장님의 결정에 손을 들어 주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지요. 결국 위원장님이 이런 자들에 평가에 기대 현 사태를 넘어가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위원장님에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택시자본의 달콤한 유인에 점차 이끌려 오늘처럼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일으킨 강승규 수석의 어리석은 짓은 강승규 수석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둘째로, 하반기 투쟁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겠지요. 저는 현 집행부가 무슨 지도력으로 하반기투쟁을 지도하려 드느냐, 현 집행부가 사퇴해 ‘비상대책위’(비대위)를 꾸려 투쟁하면 투쟁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반기 투쟁을 위해서도 현 집행부는 사퇴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이 편지에서만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러저러한 실무적 준비를 많이 해 와서 그것을 충분히 활용해 일정한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석행 사무총장의 말대로 두 번의 비대위 경험이 별로 유익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현 집행부가 당장 물러나지 않고 하반기 투쟁에 일정한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의 좋은 전통을 잃어버리고, 비리가 있어도 확실한 책임도 지지 않고,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요구도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그저 그런 노동자조직이 되어버리는 것이라면 그 대가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느 것이 더 조합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위원장님 이하 현 임원들이 민주노조운동에 기여할 기회는 하기에 따라서는 앞으로도 많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도 지금 사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수호 위원장님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동지들이 정파적 이해에 근거해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부 그런 동지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원장님을 당선시키는 데 상당한 공을 세운 ‘민주노동자전국회의’도 위원장,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 보아도 이번 사퇴요구가 단순한 정파적 이해에 근거한 행동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 있은 사람은 직언을 하기 힘들고 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구애를 받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사실 운동진영에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에 사퇴를 요구한 이들 중에는 사퇴를 요구할 자격이 없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인 이런 사람들을 마음에 두고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노조운동에게나 위원장님 이하 임원들을 위해서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많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이미 했고, 여기 적힌 내용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제 목소리를 보탠다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사실 운동진영의 분열이 심각하고 그래서 지리멸렬해 있지만, 저는 우리 안의 많은 차이가 말과 글을 통한 논리적인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런 편지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단풍이 다 지기 전에 설악산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근교 산이라도 오르십시오. 잘 키운 딸과 아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군요. 불편하게 생각지 않으신다면 저도 불러주십시오. 열일 제처 놓고 달려가겠습니다. 가을단풍은 그 자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아무리 탐해도 남을 해하거나 배제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5년 10월 18일 아침
박하순 올림
덧붙이는 말

박하순 님은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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