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앞 투쟁문화제와 노숙농성, 무엇이 문젠가?

[기고]비정규직 이제그만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는 1박 2일 문화제를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과 집회‧시위를 불법으로 낙인 찍고 폭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이에 비정규직 이제그만과 문화예술인들은 오는 6월 9일 "지키자 민주주의!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라는 이름의 1박 2일 문화제를 열어 정부의 집회 금지 문제를 대응하기로 했다. 역시 정부의 탄압이 예상되는 가운데 1박 2일 문화제 참가자의 결의를 담은 글을 싣는다.

나는 금속노조 조합원이고, 한국지엠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2007년 9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그해 지엠 원청과 하청 관리자들의 폭력적인 탄압으로 조합원 대부분이 해고됐던 아픔이 있다.

우리는 고공농성 등 끈질긴 투쟁을 했고, 2013년 12명이 복직했다. 그리고 이어서 공장 내 불법파견 철폐 투쟁을 진행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과 복지, 불안한 고용, 차별적 대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불법파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미 한국의 파견법은 제조업 내 인력파견을 중간착취로 금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정규직, 비정규직 하는 일이 구별되지 않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2015년 진행된 소송은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2020년 7월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모든 소송에서 법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된 지 3년이 다되어 간다. 소송을 제기한 2015년을 기준으로 보면 만 8년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지엠이 파견법을 위반했는지 판단하는 데 8년이 걸린다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비상식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자동화, 생산량 축소 등을 이유로 한국지엠은 매년 인력감축을 진행했다. 동시에 노동강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도 하루가 멀다하고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당한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한국지엠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낸 우리 조합원들이다. 법원이 늑장 판결을 하지 않고 판단했다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해고되지 않았을 노동자들이다.

  2022년 1월 5일 금속노조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지엠 불법파견 관련 법원의 늑장 판결을 규탄했다. [출처: 금속노조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

그레서 우리는 더 이상의 노동자 희생을 막고자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요구하기로 했다. 2022년 5월 2일 한국지엠 창원, 부평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요구하며 그 앞에서 10박 11일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노숙농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문화제도 한차례 진행했다. 대법원장 면담도 요구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 홈페이지에는 ‘관련 사건을 통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는 문구만 나와 있을 뿐이다. 이미 2022년 현대, 기아차 불법파견 판결이 있었고, 불법파견 판단 기준도 서 있는 상황인데, 통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강도 높은 투쟁을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해고 노동자들의 생계문제도 있어, 매주 화~금 1인 시위, 매달 한 차례 1박 2일 투쟁으로 변경해서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국내 굴지의 로펌을 동원해 때마다 참고서면을 제출하며 판결을 늦추려고 하고, 대법원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지난 5월 25일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주최한 대법원 앞 문화제에서 경찰이 문화제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내가, 그리고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을 찾아 1인 시위를 하고 문화제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정당한 요구로 진행되는 문화제, 노숙농성 등은 집회신고 유무를 떠나 적극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제의 경우 집회신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야간 집회의 경우 헌법재판소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대법원 앞에서의 1인 시위, 투쟁문화제, 노숙투쟁에 대해 경찰은 인도를 통해하는 시민의 통행로를 보장하기 위해 라바콘을 세우는 등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지난 5월 25일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주최한 대법원 앞 문화제는 불법집회가 됐고, 노숙투쟁은 금지됐다. 투쟁문화제를 위해 준비한 방송장비 반입도 가로막혔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공무집행방해’라며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에 경찰은 법적 근거를 대지도 못하고, 경찰청 ‘윗선’의 지시라고만 강변했다. 또한 경찰은 이전과 같이 대법원 앞 인도에 문화제 할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인도를 경찰 펜스로 차단했다. 집회가 아니라 경찰의 문화제 봉쇄가 오히려 인도로 퇴근하는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했고, 대법원 앞 교통의 흐름을 방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부르짖는 ‘자유’에는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백번 양보해서 야간 투쟁문화제로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고, 소음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해도, 이것이 투쟁문화제를, 노숙투쟁을 금지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 역행하는 윤석열 정권을 강력히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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