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4. 12월 22일 구속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홍콩 민중동맹의 촛불집회 |
17일 이후의 투쟁은 홍콩 반 WTO 투쟁의 계급구성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홍콩 민중동맹 지도부는 민중행동주간의 조심스러운 모습에서 벋어나서 과감하게 국제 투쟁단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선회 하였고 이후에도 헌신적인 연대투쟁을 보여줬다.
이미 16일부터 단식투쟁 등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던 직접 행동그룹들은 헌신적인 지지지원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이를 뒷받침했다. 홍콩의 노동자와 시민들 역시 민중행동주간 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지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민중동맹에 속한 모든 단체들은 법률 지원뿐만 아니라 23일 14인의 구속자들이 보석으로 풀려날 때까지 면회투쟁, 모금투쟁, 촛불집회 등을 통해서 홍콩시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 국제연대투쟁이 곳곳에서 조직되었고 주요 반 WTO 단체 지도자들의 방문투쟁도 성공적으로 조직되었다.
12월 23일 풀려난 한국원정 투쟁단은 기소자 가족들과 전농,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지지투쟁과 이후 1월 5일부터는 홍콩시민들을 놀라게 한 무기한 단식투쟁으로 홍콩 민중동맹과 시민들의 지지에 응하게 된다. 이에 응하여 홍콩민중동맹은 1월 5일에서 11일 까지 매일 밤 촛불집회와 1월 10일의 철야 동조 단식 투쟁을 전개하였다. 노동자, 민주운동가, 이주노동자 등 500 명 이상의 시위대가 한국과 일본의 단식 농성자를 엄호하면서 경찰청과 중앙정부 청사를 향해서 행진한 1월 8일의 집회에서 홍콩의 시위대는 경찰 저지선을 넘나들며 격렬하게 항의 하는 등 이미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 투쟁 속에서 드러난 국제적 연대의 의지는 국제 노동운동 단체와 거대 NGO등의 엉거주춤한 태도와는 크게 대조를 보인다. 이들 ‘케인즈주의 연대’는 17일 투쟁의 파급 효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민중동맹에 ‘협력단체’로 되어있는 홍콩의 NGO들을 비롯한 국제적인 거대 NGO들은 이미 어떠한 종류의 논평도 거부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국제 노동조직들은 투쟁의 정당성을 지지하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 시위대의 ‘폭력’을 비판하는 양비론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홍콩시민들이 이러한 ‘폭력화’된 시위대에 동조하지 않을 것임을 가정하고 양비론을 통해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취하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여준다.(1)
▲ 사진 5. 1월 5일 한국투쟁단의 단식농성 |
한국 원정 투쟁단은 원래 의도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사실상 한국원정투쟁단의 홍콩투쟁에서 보여준 국제연대는 ‘선도투’의 틀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홍콩 민중동맹의 한계를 준비과정에서부터 인식한 한국 투쟁단의 독자 행보는 반 WTO 투쟁의 준비과정에서 홍콩 민중동맹의 활동가들로부터 자신들을 실무지원자 정도로 밖에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을 계속해서 토로하게 했다.
비록 한국투쟁단이 민중행동 주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이후의 투쟁의 방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투쟁단에게는 사전에 홍콩과 국제적 운동 단체들을 자신의 투쟁전술 속에서 응집해 들어가는 역량과 의도가 부재했다.
WTO 회담 이전 한국투쟁단의 강고한 투쟁의지는 홍콩 민중동맹의 지도부와도 민중동맹 소속의 직접행동 그룹들과도 공유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15일 삼보일배 이후, 투쟁단 지도자들의 일부는 ‘한국’투쟁단이 홍콩경찰과 WTO를 응징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반복하고 있었다.
민중행동 주간, 그리고 바로 17일 당일에도 한국 투쟁단의 투쟁 계획은 홍콩의 동지들과 공유되지 않았으며 한국투쟁단의 많은 주체들은 그래야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많은 동지들이 투쟁과정에 결합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러한 선도투적 투쟁 방식은 또한 한국투쟁단의 ‘국제주의’의 내용적인 측면에도 의문을 갖게 한다. 한국투쟁단의 국제주의는 점증하는 자본의 지구화와 자본주의적 모순의 팽창 속에서 더 이상 일국만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국제적 행동주의가 유일한 전술임을 인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주의라기보다는 일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주의를 ‘방법’으로 하는 일국적 국제주의 (Nationlaist Internationalism)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계급구성, 새로운 국제행동주의의 가능성
홍콩의 반 WTO 투쟁의 전개과정은 투쟁과정에서 보수화되어가고 있던 반 WTO 투쟁의 계급구성을 다시금 급진화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한편 선도투적이고 일국적인 형태의 국제연대 방식은 기존의 국제연대 행동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역시 보여주었다. 무
엇보다도 중요한 성과는 반 WTO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조명받기 시작한 반자본 국제행동주의가 또 다른 요소를 획득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홍콩에서의 대중조직이 중심이 된 한국 투쟁단의 강고한 투쟁, 각기 다른 나라로부터 스스로 국경을 넘어온 이주노동자들의 헌신적이고 단결된 투쟁, 세계농민운동의 연대체와 진보적 노동조합들의 연대투쟁,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질적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준 홍콩 민중동맹의 투쟁은 반자본 반세계화 운동의 미래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낡은 운동의 말뿐인 국제주의는 직접적인 지원과 헌신적인 활동을 보여준 행동주의 연대투쟁과 스스로를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진부함을 다시금 드러내었다.
▲ 사진 6. 홍콩 어린이가 그린 연대의 희망 |
홍콩투쟁에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행동주의적 국제연대는 현존하는 국제주의의 낡은 틀거리들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던졌다. 거대 신사회운동단체의 수혜주의적이고 서구중심적인 국제연대도, 거대 노동조합의 일국적 국제주의도, 대중조직, 신사회 운동조직, 농민, 노동자, 실업자와 학생들을 넘나드는 새로운 행동주의를 통제하지도 아우르지도 못했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서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된 자본주의적 발전의 모순과 운동주체의 재구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이 운영하는 ‘지구적 공장’ (Global factory)의 등장으로 귀결되는 최근의 자본의 팽창과 자본 운동성의 증대는 공장노동자와 자본사이에서 응집되어있던 자본주의적 착취관계의 모순을 사회적 수준에서 심화시키고 사회전체로 확장시켰다. 제도화되고 보호되던 노동은 해체되어 버렸다.
독특한 생산의 자연적, 물적 기반에 근거해서 지구적 공장으로 편입되지 않고 있던 제 3세계의 농업노동은 이제 더 이상의 예외 없이 지구적 공장의 임노동으로의 재편을 강제당하고 있다. 전근대적 사회 구조에 대항해서 발전했고 그것의 점진적 해체에 의해서 점차 약해져가던 농민운동은 자본의 팽창에 의해서 무토지 농촌 노동의 힘 있는 단결로 전환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제도화된 노동조합의 교섭력 안에서 점차 체제내화 되어 가던 ‘조직된 노동’ (organised labour)이 비시장적 사회관계의 요소를 거부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급속하게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투쟁들을 촉구하고 있다. 반자본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이 자본주의적 노동의 재구성속에서 하나하나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반자본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은 낡은 국제연대의 틀을 벋어나 새로운 행동주의적 국제연대의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에도 적지 않은 함의를 던지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기존에 당연시 되어왔던 국제자유노련 중심의 노동조합 국제연대의 틀거리에 대해서 다시금 심각한 자문을 던져할 시기가 다가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밖으로 진보적인 노동조합과의 질적으로 새로운 연대의 틀거리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만큼 중요한 것은 안으로 노동운동 내부를 수 없이 많은 다른 종류의 노동들 - 사무직과 생산직, 자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 로 구분하던 장벽들을 허무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농민, 빈민, 소수자 (?) 운동을 비롯한 여타의 사회운동과의 연대의 형태일 것이다.
새로운 행동주의적 연대는 노동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질적인 변화 없이 이들과 외연적인 관계를 맺는 ‘사회운동적 조합주의’의 연대가 아니라 지구적으로, 사회적으로 확장된 자본주의 노동의 영역을 인정하고 조직하는 것, 그리고 이들 노동의 주체들과 함께 광의의 노동운동을 구축하는 연대이기를 바란다. 자본이 우리에게 먼저 부과한 다양한 형태의 벽들을 허무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행동주의 국제연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희망이자 과제이다. 홍콩 투쟁은 이러한 점에서 이제 막 시작한 샘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에서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반자본의 희망을 발견하였다.
각주
(1) 홍콩 Oxfam등의 일부 NGO는 지금 까지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과격한 투쟁으로 인해서 홍콩시민들의 지지가 급격하게 하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17일 이후의 연대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은 홍콩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홍콩 Oxfam은 스스로 자신들이 만나고 로비하는 사람들이 홍콩 민중들이 아니라 홍콩의 지배계급임을 스스로 드러내 보였다. 국제적인 노동조합들도 겉으로는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들 시위대가 범법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일체의 불법행동이 (경찰에 의해서) 사실로 밝혀질 경우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이 공공연하게 거론되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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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2월 반WTO 홍콩 투쟁 당시 통역을 맡아, 일정을 함께 했던 장대업 아시아 노동정보 센터(Asia Monitor Resource Centre) 활동가님이 보내주신 평가 글이다. 1,2회로 나눠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