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고 내 발목을 잡은 것은 1학년 때의 비참한 성적표였다.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성적표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부족한 이수 학점을 메우고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투적인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재수강을 했고 계절학기 수업을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화두는 언제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의 문제였고, 여기에 딱히 답들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과 연일 쏟아내는 경제 위기와 관련된 뉴스는 우리가 가게 될 ‘코스’가 이미 정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욕망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가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좁지만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수입, 비까번쩍하지는 않더라도 내 노동력을 기꺼이 사 주는 직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삼류 드라마에서처럼 ‘내가 아직 돈이 많지 않아서 미안해’ 하지 않을 만큼이면 족하다. 하지만 결국 비정규직에서 다시 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불안한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그러다 보니 졸업을 하는 게 두려워졌다. 그래서 두 번의 휴학을 결정했고, 휴학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또 준비했다. 그러나 숨통을 틔어줄 거라 기대했던 휴학은 사회라는 커다란 벽과 마주할 시간을 잠시 연기한 것일 뿐이었다. 대학은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결국 사회로 나와야 했다.
지방대, 낮은 취업률... 일상화된 차별
나는 지방대 출신이라고 해서 크게 차별받은 경험은 없다. 어쩌면 실제로 존재하는 그 차별이 두려워 머뭇거렸던 건지도 모른다. 언론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학력 차별과 관련된 소식들과 주변의 시선 속에서 이미 차별을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방대 출신들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평범한 나에게 그 분위기는 두려움을 가져다주기 충분하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넌 왜 서울로 안 오고 전주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대범하게 굳이 서울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살 필요가 뭐 있느냐며 되묻는다. 그리고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에서부터 정치, 경제까지 비판하면서 지방을 살려야 한다고 제법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이런 말은 반은 진심이고 반은 거짓이다. 내가 만약 능력이 있고 자신 있다면 그렇게 말할까? 나는 왜 여기서 살까? 하고 되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취업률이 높다고 해마다 자랑처럼 떠들었지만, 그것이 허풍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저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났지만, 다들 박봉에 비정규직이었다. 학교가 선전한 높은 취업률이라는 것이 다단계 판매원들의 유혹과 하등 다를 바 없음을 깨달은 것도 결국 사회에 나와서였다.
서울로 간 친구들의 전언에 따르면, 지방대는 떳떳한 명함이 되지 못했다. ‘성형수술 전의 사진’처럼 꽁꽁 숨길 수 있다면 숨겨야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가 명함이 되지 못한다면 어른들 말처럼 ‘기술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다닌 과에서 배운 기술이라고는 시와 소설 쓰는 법 정도였다. 이를 기술이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말이다.
안정된 사회적 계급으로 입사와 안정된 가정 = 성인식?
분명 이런 일이 지방대 출신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지방에서는 지방 국립대 출신과 지방 사립대 출신의 서열이 다르고, 전국적으로 보면 대학 서열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아옹다옹하거나, 졸업 후에도 갈 곳 없어 누렇게 뜬 얼굴로 부유하고 있다. 사실 서울의 ‘노량진’이나 ‘신림동’은 우리 사회의 제도권 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지방의 또 다른 이름’이다. 취업 준비생, 재수생, 편입생, 아르바이트생, 학원 강사들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돌고 돈다. 정규 사회로 진입하지 못하는 ‘비정규 인생들’이다.
안정된 사회적 계급으로의 입사와 안정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성인식이 되었다. 그래서 청년들은 아직 성인식도 치루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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