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늪에서 만난 향기로운 사람들

[쌍차 희망버스](2) 해고된 노동자가 해고된 노동자에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는가? 4년 가까이 남들이 이해하건 하지 않건 간에 걸어온 이 길이 스스로에게 대견스럽기도 하고 함께 해준 이들에게 고마운 맘 반이요 미안한 맘 반이다. 아직 끝이 난 것도 아닌데 담담하고 또 담담하다.

지난 2009년 3월 강요된 희망퇴직으로 36명이, 부당한 정리해고로 15명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이후 이에 맞선 투쟁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동서공업 사측의 민주노조를 와해 말살시키기 위한 탄압의 한 과정이었음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었다.

  황영수 씨. [출처: 다산인권센터]

금속노조 동서공업지회 13대 집행부가 들어섰던 2008년 임단협 파업투쟁이 그 탄압의 서두였다. 한여름 동서공업 사측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공격적 직장폐쇄로 인해 한치 앞을 예상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대응을 면밀히 준비하지 못한 당시 집행부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직장폐쇄 첫날 6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몰래 또는 당당하게 정문으로 출근하여 라인을 가동시키고 둘째, 셋째날.... 열흘이 흐르자 점점 복귀하는 조합원들이 생겨났다. 보름이 흘러가니 50여 명 남짓의 조합원들이 남아 공장 밖을 지키며 사측의 직장폐쇄 철회까지 함께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의지를 지켜냈고 결국 공장 안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50여 명의 조합원들은 희망퇴직, 정리해고로 공장 밖으로 내몰린 조합원이 대부분이었다. 젊디젊은 20~30대의 나이에 공장근속 몇 년 안 되고 부양가족 없고 근태 안 좋으면 결국 인원정리의 조건인 점수를 낮게 책정 받아서 인원정리 대상에 반드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열성조합원이었던 그들은 결국 그렇게 제 갈 길을 찾아가거나 남아서 해고투쟁을 했다. 이미 직장폐쇄 이후 노노갈등이 심화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급격하게 와해되는 분위기를 틈타서 동서공업 사측은 끝을 내기 위한 고삐를 더 당겨버린 것이다. 투쟁으로 돌파구를 찾아낼 수 없었던 힘없는 조직의 말로는 실로 비참했던 것이다.

허나 어쩌랴. 길이 보이지 않으면 만들어서라도 찾아서라도 가야하겠기에 꾸역꾸역 정리해고 철회와 원직복직 쟁취를 위한 투쟁의 길을 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금속노조 첫 정리해고 사업장이라는 슬로건이 창피하기도 하고 반면에 힘 있는 연대를 통해 잘하면 빨리 끝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착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 후 정리해고 사업장이 여기저기 물밀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포레시아, 파카한일유압, 쌍용자동차 등등. 이렇게 자본과 정권의 악랄한 탄압에 이은 노동자들의 절망, 죽음이 이어지고 결국 해결의 실타래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몫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장기간의 시간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2년을 보내고 이제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동서공업은 이미 일방적 인원정리 전의 인원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해고한지 채 일 년도 안 된 시점에 사측의 인원충원에 조직적으로 준비해서 복귀시킨 3명의 정리해고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12명은 ‘해고무효확인소송’ 대법원판결을 기다리며 생계에 해고투쟁에 각자의 몫을 지니고 견뎌내고 지켜내며 투쟁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 회사가 2008년 당시 13대 집행부에게 임단협 파업투쟁을 빌미로 업무방해 손배를 진행하여 얼마 전 민사1심에서 3억2천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고 서울고법에 항소하여 재판이 진행중이며, 3차례의 금속노조탈퇴를 시도하여 결국 기업별 노조로 전환한 현재 집행부는 도움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손배의 당사자인 당시 지회장, 수석부지회장, 사무국장은 2년 가까이 잔업, 특근이 배제된 상황에서 사측이 걸어놓은 가압류 집행을 앞둔 시점에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민주적 성향의 몇몇 조합원들도 현장관리감독 강화 및 스파이활동 권유를 받으며 또한 잔업, 특근에서 배제시키는 더럽고 치졸한 행태를 당하고 있다.

[출처: 다산인권센터]

간혹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또 ‘나와 다른 나’인 그들은 투쟁하길 잘한 것일까? 아니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잘 버텨내고 있는 것일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노동자의 삶이란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인데, 이 더러운 사회에서 이 공장이 아닌 다른 공장에서 노동을 하면 권리를 보장을 받을 수 있을까?

해고자의 심정은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해고의 부당함을 외치며 투쟁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것인지 뭐 하러 이런 짓까지 해가며 억울한 내 사연을 토해내고 저항하려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생각이 많아지면 맘을 놓게 되니 단순해지려 노력을 하기도 하지만 그냥 가족을 생각해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론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또 내 삶을 살아가더라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정규직으로 노동을 하건 비정규직으로 노동을 하며 삶을 이어가건 ‘절망의 늪 속 삶’엔 변함이 없으니 결국 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맘 다지고 또 그 길을 걸어간다.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의 삶이란 결국 빠져나오려면 할수록 깊은 구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늪이 아닐까. 늪을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해고는 나쁘다. 그냥 정말 나쁘다. 유럽의 어느 나라는 해고되면 정부에서 교육도 시켜주고 생계비도 지원해주면서 다른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복지혜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사회의 해고는 노동자에겐 절망이요 죽음이요 살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고되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어 난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되어 주었고 그렇기에 지금도 또 앞으로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없었다면?

절망, 죽음, 살인의 늪에 희망의 손을 내미는 그들은 누구인가? 사람다운 향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같은 해고된 노동자이기도 투쟁하는 노동자이기도 남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함께해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헌데 아직도 목이 마르다. 해서 이제는 내가 마른 목 채워 줄 사람 더 있게끔 더 있어 주게끔 부족하지만 그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싶다. 그렇다 한들 여전히 부족한 나 자신은 어쩔 수 없기도 하다.

해고된 후부터 시작한 노래가 나의 투쟁의 무기이자 연대의 무기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우유배달부 황씨’라는 해고된 노동자의 삶을 담은 창작곡도 만들어 부르고 여기저기 많이 다녀보진 못했지만 노래로 동서공업투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외치고 나의 노래로 나와 같은 이가 또한 내가 힘 주고 힘 받기를 원하며 그렇게 가야 할 길 가고 있다.

얼마 전엔 노동가수 김성만 동지께서 투쟁사업장 투쟁기금지원을 위한 앨범작업에 함께하자는 제안도 하시고 해서 올해 노동절을 기점으로 2장짜리 앨범을 단 돈 ‘일만 원’에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앨범작업이 진행중이다. 여기에 부족하지만 나의 노래 ‘우유배달부 황씨’도 실릴 예정이다. 밑천 없이 시작하는 앨범작업이 잘 되어 갈 일은 없다. 사전에 후원을 조직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뭐든 쉬운 일은 없는 법. 그 길에 함께 함이 그냥 좋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르고 그들도 그들 자신을 잘 알지 못하게 하는 이 자본의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공간이 절망 속에 싹 틔워가는 어둠속 깊은 땅속의 씨앗으로 만나고 있다. 마침내 구속된 땅속을 파헤치고 뻗어나갈 그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해서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이 아프다.

  지난 12월 31일 쌍용차 송전탑 고공농성장 아래서 노동자밴드 피라냐와 함께 연대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황영수 씨.
[출처: 다산인권센터]

억울하고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들이 나를 온전히 사로잡아 망가뜨려 마침내 다시 올라설 기운조차 주지 않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조금씩 조금씩 한 발 한 발 내딛게 해주는 그 사람들이 있다.

‘향기 있는 사람’에 내가 있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향기 있는 사람으로 조직하고 만들고 세워냈으면 한다. 물론 싸움의 당사자가 삶과 투쟁의 의지가 없다면 성립될 수 없는 조건이 희망이요 연대이겠지만 꺼져가는 삶과 투쟁의 의지의 씨앗을 다시금 심어 줄 수 있는 것 또한 희망이요 연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어있는 문제이건 아니건 간에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 지원이 이루지지 않는다면 결국 둘 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되지 않겠는가?

해고된 당사자인 나도 다른 공간에서 해고된 노동자의 맘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헌데 살아남은 노동자이건 내몰린 노동자이건 그 모습들 보고 있으면 그냥 ‘나’인 것 같아 어느 순간 동화되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도 현장탄압 받으며 잔업, 특근 끊겨서 힘겨워해 봐야 하는데, 나도 손해배상 100~200억 맞아 봐야 하는데, 나도 절망에 휩싸여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아야 하는데, 나도 천막농성 해야 하는데, 나도 송전탑에 올랐어야 하는데, 나도 단식했어야 하는데, 나도 구속되었어야 하는데, 나도 용역깡패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병원에 입원했어야 하는데, 나도... 나도... 그럼 그 맘 다 헤아리고 다 아우르고 다 함께 갈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당장의 답은 없다. 헌데 이놈의 늪에서 진정한 끝이 정리해고 철회! 원직복직 쟁취! 가 되진 않을 것이다. 이제 하나의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 있다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법에 의존한 저자세보다 투쟁에 의존한 고자세가 더 매력 있고 아름답다.

투쟁하는 노동자들 향기 나는 꽃에 끊임없이 달라붙는 진드기가 되어 줄기와 잎의 양분을 빨아먹고 동화되자. 그리고 더 수많은 진드기를 불러 모으자. 향기 나는 꽃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희망과 연대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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