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복직을 꿈꾼다

[연속기고](4) 해고자 재충전을 위해 따뜻한 연대를

[필자주] 3월 29일과 30일에 걸쳐 “해고자의 날” 행사가 열린다. 29일에는 ‘해고에 맞서는 투쟁의 역사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하고, 3월 30일에는 ‘봄날은 왔어! 해고는 갔어!’라는 문화제가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다. 해고가 만연한 시대, 해고자들이 죽어가는 시대, 해고자들을 살리고 우리 모두가 연대의 권리를 누리는 자리이다. 많은 분들이 함께 연대해주었으면 좋겠다.


17년 동안 이랜드노조 활동 중 네 번의 해고를 당했다. 2001년과 2003년의 해고는 노사합의로 무효가 되었지만 2007년과 2008년의 해고는 연달아 대법원에서까지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복직을 꿈꾼다. 언젠가 정년퇴직 전에 반드시 이랜드에 복직하여 옆자리에서 숨죽여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원서를 돌리고 싶다. 작년에, 13년 만에 서울지하철로 복직하는 해고 노동자를 보며 희열을 느꼈다. 해고 노동자들에게 복직은 놓을 수 없는 꿈이며 가슴 떨림이다.

2009년 1월, 해고가 되어서라기보다 510일 파업투쟁을 끝내고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잠시 휴식을 선택했다. 회사도, 노조도, 마음 편히 쉴 시간을 준 적이 없지만 내가 스스로에게 ‘안식년 휴가’를 준 것이다. 엄마가 된 지 11년 만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해고자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노조 활동 17년 동안 해고를 두려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막상 해고가 되고 보니 많이 외롭고 서러웠다. 집에 있는 데도 시름시름 아팠다. 소화가 안 되어 죽을 먹기가 일쑤였다. 살도 많이 빠졌다. 2년간의 안식년 휴가를 끝내고, 다시 활동의 현장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노조 활동을 하다보면 투쟁을 해야 할 경우가 많고, 투쟁을 하다보면 해고와 구속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구속은 실형을 받는다 해도 몇 년이면 나오지만 노조 활동으로 인한 해고는 평생의 생존권을 송두리째 잃는 것이기에 어쩌면 구속보다 더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해고를 살인에 비유하겠는가?

투쟁의 전면에 서 있다가 해고된 노동자들은 해고가 되고 나서도 오랜 기간 투쟁의 구심이 되어 왔다. 그들의 용기와 기개가 노동운동을 발전시켜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많이 지쳤다. 언제나 강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해고자 개인의 삶에 주목하고, 개개인이 주인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2011년부터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게 되고, 노동자 “품”이라는 정서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다. 대부분 비정규직, 해고자, 활동가들이었다. 가슴에 맺힌 한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연대하는 노동자로 보다 맘을 터놓는 친구로 만났을 때, 온 몸으로 느껴지는 깊은 상처에 새삼 놀랐다. 그룹상담 프로그램을 하다가, 내 모습이 투영되어 내가 제일 많이 울기도 했다.

하지만 평상시 그 아픈 속내는 꽁꽁 감추어져 있다. 내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약한 자나 하는 짓이기에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말이 더 거칠게 나오고, 그 거친 말로 인해 가장 가까운 동지가 상처를 입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먼저 나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받아주고 안아주는 것이다.

성경에 안식년이라는 제도가 있다. 6년이 지나고 7년째가 되면 한 해를 쉬는 것인데 땅도 쉬게 해 주고, 종에게도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람, 자연, 평등을 위해서는 참으로 지혜로운 제도임에 분명하다. 또한 종교에 상관없이 이것이 창조의 섭리가 아닐까?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만이 이러한 창조의 섭리에 거슬러 밤낮 없이, 쉬지 않고,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자본의 잘못된 성실 논리에 우리 노동자들도 말려들어간 것은 아닐까?

투쟁에 앞장섰던 해고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재충전은 필수이자 권리이다. 내면을 치유하고, 관계를 아름답게 하고,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복직 외에도 꿈이 하나 생겼다. 해고자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편하게 와서 쉴 수 있고, 알려질까 두려움 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격려를 받을 수 있고, 관계성을 증진시키는 집단 프로그램도 할 수 있는 ‘노동자 심리상담 및 정서교육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해고자의 집'이라고 하면 너무 침울하려나? 하지만 해고자라는 것이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나는 왠지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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