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야구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땀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정직한 땀을 말하기에 앞서 메이저리그에서 통용되는 말을 먼저 인용해보자. 메이저리그에서는 ‘1루는 훔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1루는 도루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적어도 1루까지는 걸어서든 뛰어서든 홈런으로든 혹은 맞아서든 정직하게 나가야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도루가 정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도루도 야구 규칙의 하나이다. 1루를 밟은 이후에 여러 작전을 펴든 도루를 하든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야구라는 스포츠에 정해져 있는 게임의 규칙이다. 그러나 만약 규칙을 위반하고 1루 도루를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퇴장 명령을 받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야구에서처럼 누구나 지키고 따라야 하는 규칙이 이 사회에선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그런 사례가 작은 언론 뉴스타파에 의해 연일 폭로되고 있다. 바로 조세회피처를 둘러싼 저명인사들의 이름들이다. 재벌가뿐만 아니라 연극인과 법조인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의 이름까지 나왔다.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는 아버지에게는 돈 한 푼 주지 않고 재산을 빼돌리다니 불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직 실명까진 거론되지 않았지만 정치인들의 이니셜이 정가에 떠돈다고 한다. 여의도발 바람이 심상치 않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유리지갑 봉급쟁이들은 허탈하다. 지금까지 확인된 금액만 6조 원이 넘는다. 무너진 규칙과 구멍 난 조세제도로 해외로 빼돌려진 돈이 천문학적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재벌과 있는 자들은 각종 규제를 풀어줄 것을 뻔뻔하게 주장했다. 땀 흘리지 않고 남의 물건 훔치는 현대판 불한당들이 따로 없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가진 자들의 주장도 듣기에 낯 뜨거울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기간 GM한국 사장의 민원성 건의를 기다렸다는 듯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행정부의 수반이랄 수 있는 대통령이 삼권분립의 원칙을 깬 것이다. 그동안 통상임금 산정 시 정기적이며 일률적으로 지급되던 정기상여금은 제외됐었다. 통상임금이란 의미에서 한참을 후퇴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이번에 대법원이 판례로 바로잡은 것이다.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4년간 38조가 든다며 생떼를 부리고 대형 로펌을 동원해 로비를 펼친 것은 물론 정치권으로도 숱한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되는 정기상여금의 경우는 그동안 노동자들이 눈뜨고 코 베이듯 떼인 돈이다. 이것은 돌려줘야 하는 돈이다. 한국 사회의 왜곡된 임금체계가 빚은 이 같은 문제에서 노동조합 또한 책임이 없을 순 없다. 기본급이 턱 없이 낮음에도 그동안 각종 수당으로 낮은 기본급을 채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을 가지고 대공장 정규직을 힐난하고 비난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책임이 있다면 모두가 공범인 것이지 왜 대공장 정규직만 욕을 들어야 하는가.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자본이 쳐놓은 귀족노조 프레임의 재탕에 다름 아니다. 이제 이런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양비론과 양시론을 줄타기하는 건 가진 자들을 유리하게 할 뿐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6월 7일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프로젝트인 H-20000프로젝트 모터쇼가 있는 날이다. 땀의 정직함과 몸에 밴 노동의 기억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다. 또한 그동안 등한시했던 모든 해고자들에게 기운과 용기를 주는 행사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과 노력이 집적된 이번 행사가 해고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인식의 변화란 무엇일까. 해고자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란 것과 자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도 아니란 사실이다. 자신의 운명과 선택을 믿고 굽힘없이 진실을 찾아나서는 이들이 해고자다. 어쩌면 자본의 발가벗은 모습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탄압을 받는 사람들이다. 잘려나간 삶과 생의 단면을 기어이 잇고 마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이들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입장을 함께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 4년간 쌍용차 해고자는 강제적으로 노동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왔다. 더 이상 쌍용차 사례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 압력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늘어난 사회적 압력이 제도와 틀이라는 사회 구조를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번 행사가 일회성 퍼포먼스가 아닌 이유다. 차를 다시 만들고 작업복을 다시 입고 먼지 낀 공구를 다시 기름칠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하늘에 둥둥 떠다니던 쌍용차 문제를 드디어 지상으로 끌어내린다는 의미다. 진흙탕에 빠진 채 공회전만을 반복하던 쌍용차 국정조사가 대로를 향해 질주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의 연대가 절실한 이유다.
쌍용차 문제에 드디어 회계조작과 기획파산 시나리오의 구체적 증거가 드러났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들이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베일 속에 가려졌던 쌍용차의 진실이 이제 베일을 벗었다. 쌍용차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고개를 돌려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증거가 있냐며 뻗대던 회사는 하던 소리 반복하며 사태 추이를 주시한다. 이제 남은 몫은 정치권이 아니라 아스팔트 위의 사람들이다. 오랜 기간 쉼 없이 달려와 지치고 힘들겠지만 다시 한 번 더 앞을 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6월 7일 서울시청 모터쇼에서 완성된 차량의 베일을 벗겨내는 그때가 쌍용차 사태의 진실의 문으로 한 발짝 성큼 들어서는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직한 땀의 힘을 믿는다.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바위를 깨 산을 옮긴 우공이산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정해진 규칙대로 경기를 했지만, 한쪽이 계속해서 반칙을 일삼는다면 그 경기를 엎어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지 않나.
우리, 지금은 세상에서 단 한 대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만들어야 할 자동차를 위해 발걸음을 시청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 1루를 무단으로 도루하는 자본과 정권의 반칙과 무법에 맞서 정직한 땀의 경기를 하는 우리 자신들을 응원하기 위해 6월 7일 시청으로 모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꼬리말. 6월 7일 서울시청 맞은편에서는 재능교육의 ‘묻어가는 벼룩시장’도 열립니다. 많은 연대의 발걸음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