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 앞의 동지와 적

[기고] 구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 헌법소원 공개변론을 앞둔 날의 단상

광화문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 나는 2013년 6월 1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구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에 관한 헌법소원사건의 공개변론을 위해 준비팀 회의에 참석했다. 2010년 12월 10일 현대자동차가 헌법소원사건을 헌법재판소에 접수한 직후 별도로 주 담당변호사가 선임돼서 사건에 대응해왔다. 그래서 어제 나는 어떻게 공개변론을 준비하고 있나 살펴보고 참견하겠다고 참관인으로 회의에 참여했던 것이다. 물론 이 헌법소원사건에서 이해관계인 비정규직노동자의 공동대리인 중 1인이니, 나는 법적으로는 단순히 참관인인 것은 아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아산과 울산의 판결, 현대차의 불복

2010년 말, 서울고등법원은 서두르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아산공장 비정규직노동자 김준규 외 6인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사건 항소심재판이었다. 2007년 6월 이 사건 1심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법원에서 최초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고 판결했다. 2년 초과해서 근로했던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는 구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라며 김준규 등 4인의 비정규직노동자는 현대자동차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2년 초과해서 근로하지 않아서 현대자동차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원고 3인과, 피고 현대자동차는 이 판결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3년여 동안 기일의 추정과 속행, 수차례 재판부의 변경 등으로 변론준비기일과 변론기일을 오가면서 재판은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대리인 김앤장 변호사들은 울산공장사건이 고등법원을 거쳐 이미 대법원에 상고돼서 조만간 그 선고가 나올 테니 아산공장사건도 사내하청근로는 울산공장과 다름이 없다며 그 결과에 따라 판결하면 된다고 재판 기일을 추정해서 대법원 판결선고 뒤에 진행해 달라 했었다. 당시 이 아산공장 사건 말고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를 파견근로로 법원이 판결한 사건이 없었다. 대법원에 상고된 울산공장사건도 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까지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는 파견근로가 아니라 그야말로 사내도급계약에 의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로서의 근로라고 판단했었다. 그러니 그에 따른 대법원판결이 선고될 거라고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아산공장사건은 울산공장과 다르다고 서울고등법원에서 빨리 선고해달라고 주장했었다. 2010년 7월 울산공장사건 대법원판결이 선고됐다. 파견근로라고 2년 초과해서 근로했던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최병승은 현대자동차 근로자라고 파기환송판결을 했다. 이 판결이 나오자 피고 현대자동차의 대리인 김앤장 변호사들은 울산공장사건과는 다르다며 증거조사 등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는 다르지 않다며 이미 충분히 해왔다고 주장했다. 재판의 상대방이 했던 주장이 내 주장이 되고 내 주장이 상대방의 주장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김앤장 변호사들과 나는 언제나 사용자와 노동자로 편을 가르고서 상대방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해왔었는데 이때는 이랬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아산공장사건을 서둘렀다. 피고 현대자동차는 구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이 위헌법률이라며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청해줄 것을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자동차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파견근로라며 2년 초과해서 근로했던 김준규 등 4인은 현대자동차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현대자동차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바로 이 헌법소원사건이 내일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이 진행된다.

현대차 대리인의 아이러니

헌법소원. 접수일자 2010년 12월 10일, 사건번호 2010헌바474호, 사건명은 ‘구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3항 위헌소원’이라고 헌법재판소홈페이지 사건정보화면에 기본정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청구인대리인에 2010년 12월 10일 이 헌법소원 청구를 대리했던 김앤장 변호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일 있을 공개변론을 앞두고서 사용자 현대차의 대리인 김앤장 변호사들은 사임했다. 치열하게 법정에서 공방을 전개할 결정적 순간에 어찌된 일인지 자신들이 검토해서 시작했던 사건의 대리인에서 빠져버렸다. 어제 준비팀 회의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김앤장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재판모양새를 고려해 사임한 거라는 추측의 말을 들었다.

이제 법무법인 화우의 변호사들이 청구인 현대자동차의 대리인으로 공개변론에서 구 파견법 고용의제조항은 위헌이라고 주장하게 됐다. 이 법무법인에는 전 대법원장 이용훈 변호사가 고문으로 있다. 2008년 9월 파견대상업무가 아닌데 업무에 종사하게 한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구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이 적용된다고 대법원장, 대법관들의 전원일치로 대법원전원합의체판결을 선고했던 당시 그 공개변론사건(예스코사건)에서 재판장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근로자대리인으로 불법파견에도 고용의제조항의 적용을 공개적으로 변론했던 변호사도 소속돼 있다. 그러니 내일 청구인 현대자동차의 대리인으로 헌법재판소 법정에 나와서 이번에는 사용자를 위해서 고용의제조항은 위헌이라고 공개적으로 변론할지 모른다.

신종 인신매매 파견근로, 용납할 수 있는가

어제 준비팀 회의에 참석해서 보니 내일 공개변론을 위해 변론시간까지 재는 등 꼼꼼히 준비하고 있었다. 노동자권리를 보장한 노동법의 예외인 파견법이고, 그 파견법의 허용한도를 넘은 파견근로의 사용이니 고용의제는 노동자권리 보장을 위한 노동법의 당연한 귀결이고 근로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서는 헌법위반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국가와 이해관계인의 대리인들이 읽는 의견서를 들으면서 파견과 고용의제를 다시 생각한다. 구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을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니 헌법으로 생각해보았다.

파견근로. 이 세상에서 근로는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노무를 말하고 파견근로에서 근로는 그러한 근로계약의 법률관계를 말한다.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가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 근로계약이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4호). 이것은 특별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정의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당사자일방이 상대방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 민법상 전형계약으로 정하고 있는 고용계약이다(민법 제655조). 이 자본의 세상에서 법질서는 노동력을 제공받는 자는 그에 대한 보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계약관계를 정상적인 세상의 질서로 선언하고 난 뒤에, 그에 따라 그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 즉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특별히 노동법을 제정했다.

파견근로는 이를 거스르고 서 있는 관계이다. 그것은 본래 이 세상의 질서가 예정했던 근로의 관계는 아니었다. 따라서 근로자를 파견해주고서 그 근로자의 근로에 대한 대가의 일부를 편취하는 파견근로의 사업은 근대국가의 법이 용납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도 나는 의문이다. 굳이 계약의 자유를 수정한 현대국가의 질서까지 운운하여야 하는지 의문스럽기조차 하다. 이걸 용인한다면 노동자는 사고파는 대상으로 거래되는 것이고 파견사업주는 노동자의 근로로 사용사업주로부터 대가를 챙기는 질서, 신종의 인신매매와 중간착취가 이제 세상의 질서가 되고 만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니 대한민국 헌법으로 말해보자. 이런 세상에서 노동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질 수가 없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누리기 어렵다(헌법 제10조 전문). 이것을 국가의 법으로 질서라고 보장하고 있다면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헌법상 의무(제10조 후문)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굳이 근로조건의 기준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한 헌법상 근로자의 기본권, 근로의 권리(제32조 제3항)까지 언급할 것도 없다. 그러니 파견근로가 헌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법률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 파견근로를 국가가 법률을 제정해서 허용해놓고 2년 초과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그러면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본다고 한 규정이 문제고 위헌이라고 사용자는 주장한다.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하겠다고 하고 있다.

법률이 파견근로를 2년 이내에서 사용하도록 허용해주고서 2년 초과해서 사용하면 안된다고 그러면 근로자를 사용하는 자의 근로자로 본다는 고용의제조항이 계약의 자유 등 사용사업주 현대자동차에게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구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을 이 나라 헌법으로 심판해달라고 하고 있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다. 이 세상은 민법의 고용계약이든, 그 계약으로 노무제공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의 근로계약이든 그렇게 선언하고 있다. 파견법이 2년 이내에서만 파견근로자 사용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걸 위반해서 사용하고 있거나, 파견법이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파견대상업무라고 허용하고 있지 않은데 그걸 위반해서 사용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때는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인 거다.

오히려 문제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처럼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이라는 파견대상업무로 허용되고 있지 않은데도 파견법을 위반해서 사용하는 경우라면 그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당연히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 현대자동차가 사용자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김준규 외 6사건, 울산공장 최병승 외 1사건에서 2년 초과해서 사용한 경우에 한하여 고용의제조항을 적용해서 현대차의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우리의 법원은 아직까지도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라고 판결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법원의 법리를 심판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그리고 고용의제조항이 아니라 파견법이 위헌이라고 헌법으로 심판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파견법을 만든 것은 국가

어제 저녁 광화문 교보빌딩에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회의를 했다. 현대자동차가 청구인으로 청구한 헌법소원사건에서 국가 대한민국은 그 상대방인 피청구인이다. 준비팀 회의는 국가의 대리인들과 이해관계인 근로자의 대리인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국가의 대리인 법률사무소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피신청인 대한민국과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는 구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에 관해서는 합헌이라고 주장하고 합헌결정을 받아내야 하는데 동일한 이해를 갖고 있다. 헌법소원 청구인 현대자동차를 물리쳐야 한다는 데서 하나인 것이니 어쨌든 현대자동차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동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파견법을 만들어서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비정규 노동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국가다. 고용의제조항 앞에서는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동지인 것은 분명한데 파견법 앞에서는 결코 노동자의 동지가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파견법을 헌법으로 심판하는 때에야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보장받는 기본권 주체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설 수 있다. 그때에도 이번 헌법소원 재판에서처럼 국가는 노동자의 동지일 수 있을까. 회의를 마치고 나온 광화문,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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