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에 대한 지독한 시비

[연속기고] 통합진보당 이00 / 충남대련 김00 성폭력사건 돌아보다

성폭력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행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불쾌한 성적 언어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굴욕적인 감정이나 신체적 손상,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하는 모든 행위.


TV만 틀면 끊임없이 성폭력사건이 흘러나온다. 비단 나와 조금 먼 TV속에서만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성폭력은 바로 내 옆의 사람들을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이름으로 만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어서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성폭력에 대한 지독한 시비 몇 가지는 여전히 그 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고 이는 현재 수개월째 충남지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지역 내 성폭력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첫 번째, 내가 아는 그/그녀는 성폭력 가해자일리 없다는 것

물론 내가 아는, 나와 친했던,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술잔을 기울였던 그/그녀가 성폭력사건의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한번쯤 의심하게 된다. 그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아? 하면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폭력피해는 83.2%이상이 잘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받는다(한국성폭력상담소, 2012년 상담통계 및 상담 동향분석).

내 주변에는 없는 게 확실한 사이코패스나 괴물이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폭력은 딱 봐도 가해자가 될 만한 사람, 그러니까 평소에도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만이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폭력가해자=괴물’이라는 공식은 괴물이 아닌 사람, 열심히 투쟁하던 동지, 반성폭력운동에 앞장서던 활동가, 나와 가까운 그/그녀는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이상한 공식을 만들어낸다.

어제까지 세상을 바꾸자는 집회현장 곳곳에서 만났던 사람도, 여성인권을 이야기하며 반성폭력운동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어느 순간 성폭력가해자가 될 수 있다. 글로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이 말이 실체를 가지고 내 곁으로 오면 쉽사리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든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것

이 말은 피해자가 ‘의도’를 가지고 성폭력피해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TV나 영화를 통해서 흔히 보이는 옷이 찢기고 단추가 떨어진 채로 산발을 하고 길거리에 나와 누가 보든 말든 통곡을 하는 피해자는 극히 일부이다.

그런데도 가해자와 그에 동조하는 이들은 TV나 영화를 통해 주입된 내용과 피해자의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행동을 했으니 피해자 일리 없다’며 비난하고 성폭력 피해사실 자체를 의심하거나 없던 ‘의도’를 심어 피해자를 순식간에 가해자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고통을 대하는 방법이 다르듯 성폭력피해를 당한 피해자 중 어떤 이는 가해자를 찾아가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차분히 증거를 수집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옷매무새와 화장을 고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며 심지어 바로 다음날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처럼 일하기도 한다(참조. 유쾌한 섹슈얼리티인권센터 이은심 대표의 글 중). 가해자다운 가해자는 없듯이 피해자다운 피해자는 없다.

세 번째, ‘진짜’ 성폭력이 맞다면 ‘고소’하라는 것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놓은 사회를, 틀을 깨기 위해 투쟁하던 이들이 갑자기 성폭력사건만 생기면 준법정신이 투철한 시민으로 변장한다. 정권퇴진까지 얘기하던 이들이 갑자기 자신들이 퇴진하라던 그 정권의 심판을 받자고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법’이 아니라 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힘’이다. ‘힘’이 없어서 헌법에도 노동법에도 집시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것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성폭력피해자’들은 신고하면 자신에게 더 큰 피해가 온다는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니 이러한 법적, 사회적 허점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가해자들이다. 성폭력피해를 신고하는 순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이름이 더 많이 회자되고, 가해자가 내 주변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그녀가 성폭력을 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이들이 피해자를 의심하게 되고, 피해자가 호소하는 성폭력피해가 ‘진짜’ 성폭력인지 피해자에게 어떤 ‘의도’는 없는지 시비를 걸어 끝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산산조각 날 것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피해자도 가해자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우리나라의 성폭력 신고율은 10%(100명중 10명), 신고가 된 사건 중 기소율은 45.4%(10명 중 약5명), 기소된 사건 중 구속율은 14.4%(5명중 약1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2 한국의 성인지통계 경찰청).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자신 있게 법의 ‘심판’을 받자고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상처뿐인 영광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 가해자를 사회나 조직에서 매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묻는 것

성폭력사건에서 그 어떤 것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성폭력 그 자체이다. 성폭력이라는 원인이 없었다면 그것으로 인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폭력을 행하기로 선택한 것은 가해자다. 사회에서, 조직에서 매장될 것인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고 뼈를 깍는 각오로 혁신하여 살아남을 것인가는 피해자에게 물을 것이 아닌 가해자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올곧이 가해자의 몫이다.

나는 통합진보당 이00/ 충남대련 김00 성폭력사건의 피해자들이 생니가 빠지고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힘이 위의 지독하고 악의적인 시비들을 하나하나 함께 깨나가며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지역과 전국의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가영과 하늘이 악몽의 시간을 넘어서 자신과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을 때까지 아니 그 후에도 그 손을 놓지 말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말

조지영 님은 통합진보당 이00/ 충남대련 김00 성폭력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입니다. 공동대책위는 지난 7월 가해자의 실명 공개를 결정했고, 공동대책위의 정식 명칭은 가해자의 실명이 명기됐습니다. 다만 참세상은 가해자의 실명을 보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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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소리

    참으로 힘든 날을 보낼 피해생존자와 대책위 활동가분들에게 존경과 지지를 보냅니다.
    좋은 글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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