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자 했던 인간, 자유롭고자 한 만화

[기고] 검열과 청소년 보호

무엇이 자유를 향한 한 인간의 열망을 좌절하게 했는가? 우리는 여전히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그림 킴, 글 안토니오 알타리바)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만화는 이 작품의 작가인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아버지의 생애를 다룬 만화로, 자살이라는 다소 무거운 사건으로 프롤로그를 열지만 그 과정을 재치있고 익살스럽게 그려내며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끔 한다.

만화는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프랑코 독재정권을 온 몸으로 통과하면서 자유롭고자 노력했지만 좌절하고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일생을 담고 있다. 이렇듯 유럽 현대사와 그 역사 속의 한 개인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스페인 내에서 1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하고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될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만화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다. 청소년유해매체물은 서점의 진열대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지 않다. 때문에 필자는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의 진열대가 아닌 계산대에서 책을 요청해서 구매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만화를 출간한 ‘길찾기’ 출판사가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에 불복해 재심의 요청을 했고, 지난 8월 29일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위’)는 결과적으로 그 결정을 취소했다. 이렇게 작품은 유해물이라는 판정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얼룩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어쨌든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자유롭게 날아오르고자 했던 한 인간의 삶을 다뤘지만 한국에 들어오면서 청소년보호법(이하 ‘청보법’)에 발목이 잡혀 유해물이라는 멍에를 쓰고 허공에서 날개 짓을 하던 시절을 보낸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실 한국에서 청보법은 다양한 표현물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는 은밀하게 작동하면서 표현물 자체에 대한 국가적인 규제와 동시에 창작자의 자기 검열 또한 행하고 있다. 청보법은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시행되었는데, 이 법은 시행되자마자 청소년보호라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각종 표현물들을 검열하는 체제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같은 영화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본격화된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는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표현의 자유 탄압 국면에서 문화보수주의를 대변하며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검열장치로 활약했다. 특히 2010년 여성가족부 산하로 청보위가 이전되면서 청보법은 가부장제와 모성애에 기반한 가족주의, 정상 가족 신화, 보수 기독교의 청교도주의 등과 결합하며 표현에 대한 검열은 물론 사회적 통제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청소년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청보법의 등장으로 각종 매체들은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는 이름으로 검열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영화나 게임과 같은 경우는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게임물등급위원회를 통해 등급분류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사전심의라는 심의형태 때문에 일종의 정보 서비스로서 기능해야 될 등급제가 오히려 사전 검열의 기능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단순히 청보법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은폐되어 있는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가 문제의 핵심이다.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는 진정 청소년이 어떤 사회적 주체로서 초점이 맞춰있다기보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복으로 각종 표현물이나 매체들을 검열하는 역할로서 작동한다. 따라서 청보법으로인한 검열제도나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은 간행물이나 방송프로그램, 영화, 비디오, 공연, 게임, 음반 등을 직간접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하게 될 것이다.

특히 간행물에 적용되는 부분을 살펴보면 청보법 제8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제8조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 결정에 대한 조항으로, 각 매체물을 심의하는 기관이 ‘윤리성’과 ‘건전성'의 여부에 따라 유해성을 판단하게 되어 있다. 간행물을 심의하는 기관은 간윤위인데, 출판문화진흥법에 따르면 간윤위는 “간행물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구현하고 간행물의 유해성 여부를 심의하기 위한 위원회”다. 또한 간윤위는 출판문화진흥법 제19조 ‘간행물의 유해성 심의’를 기준으로 청유물을 판단한다.

요약하자면 체제위협성, 음란성, 폭력성이라는 세 가지 항목이 판단의 기준이다. 여기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은 항목은 체제위협성이나 폭력성도 아닌 ‘음란성'이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이념적 갈등과 세계대전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체제 위협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으면 또 모를까, 몇 개의 장면들을 꼬투리 잡아 음란물이라고 판정을 내린 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혹자들은 만화의 제목에 있는 ‘아나키스트’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의성 때문에 간윤위가 음란성을 내세워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설령 이 추측이 사실일지라도 이 만화를 억압하는 대외적 명분이 청소년보호라는 점, 그 판단 기준이 음란성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사실 만화의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면 ‘비행의 예술’(El Arte de Volar)이다. 자유롭게 삶을 날아오르고자 했던 신념을 가진 한 인물의 삶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상황 때문에 좌절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만화의 구성도 5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프롤로그로 시작해서 4층 유년기, 3층 청년기, 2층 중년기, 바닥 노년기로 점차 추락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가 프랑코 정권 하의 스페인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살아남으려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해야만 했다. 단순히 지난날의 이상을 버리면 되는 게 아니라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격동하는 사회와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이렇게 타협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만화를 읽으면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묘한 슬픔과 분노감이 교차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그리고 우리는 그와 같은 길을 반복하지는 않아야 한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지만 앞으로 다가올 다른 작품들도 청보법과 같은 검열장치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함께 날아오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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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국정원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의 회의록 발췌문을 언론과 새누리당에 흘려 노무현 대통령이 남한의 영해를 북한에 넘겨주려는 것처럼 왜곡했다”면서 “북방한계선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노 대통령이 선언한 부분을 국정원은 발췌본에서 삭제했고 오전과 오후 회담의 문구를 이어 붙여서 노 대통령의 입장을 조작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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