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가 규약 바꿔 비정규직까지 받는다면?

[기고] 박근혜와 전교조의 대결 포인트...조합원 투표와 연가투쟁·전임자 복귀 거부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하자, 전교조가 정부의 규약개정 요구의 수용 여부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전교조의 조합원 가입 자격 논란을 보면서 문득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났다.

2005년 무렵이었다.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진행하는 노사교섭 정회 시간에 한 회사의 사용자가 레모나를 만드는 경남제약이 금속노조 소속이라는데, 화학섬유연맹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다른 사용자가 레모나를 담는 통이 ‘금속’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한 노조 교섭위원이 레모나에 ‘철’(철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금속노조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조합원 15만 명의 국내 최대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은 금속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만든 산업별 노동조합이지만 별의별 직종의 노동자가 다 가입해있다.

‘레모나’ 만드는 경남제약이 금속인 이유

2005년 사회복지법인인 성람재단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230여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재단에 교섭을 요청했다. 그러자 성람재단은 “금속노조에서 우리 재단 노동자들을 업무와 무관한 자신들의 노조에 가입시킨 것은 위법이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금속노조를 상대로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사회복지는 금속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교섭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2005년 8월 서울남부지법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업종이 다양화, 복합화됨에 따라 각 산별노조 사이에서도 조직대상이 중첩될 수 있다”며 “조합원 가입 허용 여부는 조합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금속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금속노조 규약 제 2조에는 “금속산업과 금속관련산업 노동자와 다음 각 호의 자는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며 △해고자 △금속산업과 금속관련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구직중인 실업자 △기타 제조업에 근무하는 자 △기타 가입을 희망할 경우 중앙위에서 승인된 자로 되어 있다.

법원은 사회복지사가 금속 또는 금속관련산업이나 제조업이 아니지만 노조 규약에 따라 ‘가입을 희망할 경우 중앙위원회에서 승인된 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08년 9월 11일 대법원은 회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한마디로 노조의 조합원 가입 규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2004년 2월 27일 대법원은 서울여성노조에 대한 판결을 통해 해고자와 실업자도 조합원 자격이 있다고 판결했으며,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등 산별노조와 청년유니온 등 초기업노조에서 해고자와 실업자가 조합원과 노조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법원, 사회복지사도 금속노조 규약에 따라 조합원 판결

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단법인으로 회원은 특별회원인 현역 국회의원 300명을 포함해 1411명이다. 1991년에 제정 공포된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에 따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받을 뿐만 아니라 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법이 개정돼 2014년 1월 1일부터 만 65세 이상이 되어야만 받을 수 있지만 엄청난 특권임은 분명하다.

단 하루를 국회의원을 했어도, 유죄 판결로 국회의원직을 잃어도 회칙에 따라 월 2만원 가량의 회비를 내면 헌정회 회원이 된다. 국회의원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잃었을 경우 연금지급만 중단될 뿐이다.

전교조는 오로지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운영되고, 정부로부터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조차 지급받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교원노조법에 따라 해직교사의 노조가입을 허용한 규약을 고치지 않으면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유죄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잃은 사람이 회원이기 때문에 헌정회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의 정신과 교원노조법의 모법인 노동조합법, 대법원 판결의 정신에 따라 전교조가 조합원으로 해직 교사를 받아들이든, 비정규직 교사를 받아들이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받아들이든 그것은 전교조의 자유다.

따라서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지 않은 교원노조법은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 자유와 자치의 정신을 부정하는 악법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정리해고법, 파견법과 맞바꾼 전교조 합법화 법률이 노동3권은커녕 노조운영의 자율성도 보장하지 않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헌법과 모법의 정신 부정하는 교원노조법

정부의 전교조 법적 지위 박탈 시도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웃음거리다. 이미 설립된 노동조합을 취소할 권한이 법률에 없고, 국제노동기구가 긴급구제에 나서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으며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 중에 교원노조에 해고자의 가입을 막는 나라가 없다.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정권의 정당성에 치명적 타격을 받은 박근혜 정부가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리고, 검찰총장을 몰아낸 직후 전교조 법적지위 박탈 시도에 나섰다. 국정원과 함께 박근혜 당선의 1등 공신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노동공약을 폐기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전교조로 몰아가겠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정부의 규약 개정 요구를 거부했다. 9월 26일 지도부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28일 전국대의원대회에는 재적인원 441명 중 70%가 넘는 역대 가장 많은 대의원들이 참가해 전교조 조직을 투쟁본부로 전환했다.

전교조 대의원들은 “노조설립 취소를 위한 시정명령은 전교조에 대한 표적·정치탄압”이라고 규정하고, “노조설립취소 저지를 위해 총력투쟁을 전개하고 조합원의 총의를 모으는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한다”고 결정했다. 국가인권위 긴급구제와 헌법소원을 제출하고, 10만 교사 선언과 10월 16~18일 조합원 찬반투표, 10월 19일 전 조합원 상경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교조는 조합원 찬반투표가 연가투쟁을 위한 투표가 아니라 규약개정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보수언론은 이미 “당초 총력투쟁으로 나서겠다던 강경입장에서는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전교조는 총투표는 전교조 탄압이 얼마나 부당한지 알리는 총력 투쟁 전술이라고 했지만, 투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성실히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 7년 만에 투쟁 모드로 전환했지만

1989년 참교육의 깃발을 내걸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전교조는 1500명의 조합원이 해고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독재정권에 맞서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7차 교육과정, 네이스(NEIS), 교원성과급 등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연가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지난 7년의 세월 동안 전교조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정부는 교육 현장에 기간제 교사를 늘리고, 국제중, 자립형사립고 등 특권학교를 양산했으며, 학교성과급과 교원평가 등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이명박 정권 5년, 초·중·고등학교 전체 교원 가운데 기간제 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7년의 4.1%에서 2012년 9%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 중·고등학교 정규교원은 작년보다 1,000명이 줄어든 반면 기간제교원은 3,000명이 늘어났다. 교원에 포함되지 않는 시간강사는 2007년 1527명에서 2012년 1만4120명으로 10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하지만 전교조의 투쟁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전교조 규약에는 기간제 교사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지만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직 교사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학교를 졸업해봤자 청년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인 시대에 전교조에 대한 왜곡 선동은 쉽게 먹혀들어갔다.

전교조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교조의 대결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관심거리다. 노조에서 해직교사를 내쫓지 않는 한 전교조도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첫 번째 대결은 10월 중순 6만 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찬반투표 결과와 10월 19일 조합원들이 얼마나 모이느냐다.

두 번째는 10월 23일까지 규약을 시정하지 않아 전교조에 대한 설립을 취소하고, 휴직으로 처리되어 있는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복귀를 명령하는 시점이다. 100명이 넘는 전교조 전임자들이 전원 해고를 각오하고 복귀를 거부하느냐가 투쟁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정부가 조합비 자동이체를 끊어 전교조를 고사시키는 것에 대비해 진행하고 있는 조합비의 CMS 자동이체 전환, 해고자에 대한 투쟁기금 모금, 사회적 연대투쟁의 확산 등을 통해 조직력을 굳건히 하고, 사회적 여론을 모아내는 것이다.

전교조 투쟁의 포인트

전교조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약자다. 교원 노조가 아니라 교직원 노조라고 한 것은 교육계에 종사하는 누구라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전체 교육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산별노조가 되겠다는 취지였다.

독일은 교육과 관련한 업무 종사자, 교육관계 단체 노무 제공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영국도 재직자나 근로자가 아닌 사람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퇴직자나 학생이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규약에 명시하고 있다.

900만 비정규직 시대,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기간제 교사는 4만 1228명으로 교사 열 명 중 한 명이 비정규직 교사이며, 교원에 포함되지 않는 강사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훨씬 늘어난다. 정부는 비정규직 교사, 시간제 강사를 더욱 확산하고 있다. 교무 보조, 조리사, 행정직 등 ‘학교 회계직원’은 14만 명에 달한다.

전교조 강령에는 “교직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과 민주적 권리의 획득 및 교육여건 개선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고 나와 있다. 교직원이 정규직 교사만이 아니라면 전교조는 기간제 교사와 강사,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전교조 규약개정 투쟁의 관건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법적지위 박탈에 맞선 투쟁의 승패는 사회적 여론을 얻고 싸우느냐, 고립되어 싸우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전교조가 정규직 교사들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전체 교육노동자와 함께 하는 조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교조가 비정규직 교사,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헌신적으로 연대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고,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전교조가 조합원 자격에서 해직교사를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기간제 교사와 강사, 학교 비정규직 등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가 가입할 수 있도록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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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전교조 ,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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