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소통과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자화상

[기고] ‘외부세력’ 밀양할매 앞에 함께 울자

“당신들, 이 괴로움을 알아? 평생을 같이 살아온 이웃들이 갈라져서 인사도 못해. 길에서 마주쳐도 찬성쪽 반대쪽이라 서로 못 본 척하며 지나가야 한다고. 그 고통을 알아? 난 그게 제일 괴로워”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해. 피 말리는 일이야. 차라리 빨리 닥쳤으면 좋겠다. 기다리던 ‘상황’(침탈)이 오든 오지 않던 피 말리는 건 마찬가지야. 그리고 이런 피말림이 벌써 몇 년간 계속돼 온 거야! 이번엔 정말 끝장을 보고 싶어!!”

-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현장에서 할머니의 말씀


“밀양할매, 밤새 안녕히 주무셨는지요?” 라는 인사말이 얼마나 부끄럽고 무기력한 말인지, 그리고 정말이지 무책임한 말인지 절감하는 때다.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대부분 70세를 넘긴 노구의 밀양할머니들은 송전탑 예정지 6곳에 움막을 치고 쇠사슬을 소지한 채 차가운 흙더미에서 외롭게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밀양할머니들은 죽음과 단식 그리고 병약한 노구를 이끌고 젊은 전경에 맞서 위태롭게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을 테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소통과 공감이 사라진 0.6%

정부와 한전에 대한 밀양할머니의 분노는 무지막지한 외골수의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0.6%. 한전이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을 할머니들과 주민에게 처음 알린 2005년 8월에 있었던 환경영향평가 설명회 때 참석한 할머니들과 주민의 비율이다. 정부와 한전은 2000년부터 이번 송전탑 사업을 준비하면서 주민에게는 5년 뒤에나 알렸고, 그것도 몇몇 이장과 무엇을 위한 설명회인지도 모르고 이장을 따라간 단 0.6%만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정부와 한전은 사업 계획단계부터 부지 선정, 주민 협의의 전 과정에서 형식적인 절차를 밟았을 뿐 ‘협의’는 진행하지 않았다. 이후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갈등조정위원회, 제도개선추진위원회 등 협의체가 구성되기도 하였지만 정작 정부와 한전은 논의에 충실히 참여하기보다 협의체 기간에도 밀양 시장을 고발하는 등 공사를 재개하고 강행하는 데 주력하였다.

밀양할머니들의 이유 있는 분노와 투쟁

그동안 정부와 한전은 할머니들과 주민들이 제시한 대안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진정으로 할머니와 주민들을 끌어안으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겉으로는 대화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찬성·반대 할머니와 주민들을 이간질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추석 전 정홍원 국무총리의 방문이 추석 이후 공사를 강행하려는 사전 포석이라는 예상이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밀양할머니의 분노와 투쟁은 너무나 정당한 것이자, 소통과 공감이 사라진 정부와 한전에 대한 저항이자 외침이다.

인권이 사라진 전쟁터, 밀양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투쟁과정에서 밀양할머니들과 주민들은 공통으로 공권력과 경찰들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지 못함을 느낀다고 증언하고 있다. 식사와 식수 그리고 잠자리를 최소한으로나마 마련하려는 시도조차 모두 봉쇄당하여 추위와 식사를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못할뿐더러, 경찰들이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고압적이고, 밀양할머니들과 주민들을 사람으로서 국민으로서 전혀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경찰과 공권력의 일방적인 통행금지로 인해 고령의 할머니들이 길도 없는 산을 세 시간 이상 헤매야 하며, 그 과정에서 길을 잃거나 미끄러지고 넘어져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노고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으로 단식 중인 할머니들은 최소한의 안정적인 공간이 확보되지 못한 채 이불 하나에 의지하여 밤이슬의 냉기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게다가 경찰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천막반입을 허락하지 않고 그로부터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바로 그 앞에 경찰 방패를 앞세운 병력을 세워두고 있다. 단식 중인 할머니들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임이 명백한데도,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나 안전조치를 받기는커녕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한 채 그냥 방치된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국가권력의 원칙, 그들이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

밀양할머니의 권력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 국가권력의 폭력성, 평생을 농사로만 살아왔었던 밀양할머니들에게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지금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투쟁과정에서 그녀들이 평생을 몸으로 익혀왔던 사회와 이웃에 대한 애정이나 애정 어린 비판이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분노로서 하루아침에 무너져내고 있을 것이다.

무지렁이 농사꾼 밀양할머니, 밀양할머니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면 국가가 잘 해결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어진 것이다. 희망은 고사하고 국민으로서 배분하기로 한 기본적인 권리와 약속된 기대마저도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도무지 타협과 공감이 없는 국가권력, 그들이 정해놓은 원칙만 난무하는 곳 밀양!

외부세력, 밀양할머니의 처절한 외침에 함께 공감하자

억압받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가장 큰 행위는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밀양을 통해서 공감보다는 모욕의 시대임을 절감하고 있다.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 품위 없고 보잘것없는 그 무엇이 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밀양할머니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그저 농사짓고 이웃과 더불어 늙어가는 것이 ‘국가’로부터는 공감받지 못하고 ‘위험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밀양할머니가 그저 농사짓고 이웃과 더불어 늙어가는 것이 범죄가 되는 시대, 원자력이 아닌 대안에너지로서 미래세대 그리고 우리세대가 밝고 건강하게 희망을 꿈꾸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 소통과 공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일방적인 언어와 폭력만이 일반화되는 시대가 밀양할머니들을 통해서 고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부세력’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밀양할머니들과 공감해야 할 일이다. 밀양할머니들의 낮은 목소리가 혼자만의 외로운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적 울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이다. 밀양할머니들의 공감과 소통의 울음에 함께하자! 그때 공감은 ‘행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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