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노동자, 문화예술노동자, 가사노동자, 실업자와 구직자, 해고자 모두 노동자로서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가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노동자’가 매우 천대받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통해서 사회의 주인임을 증명했고 그리고 오랜 싸움의 결과로 권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이제 정부는 노동자의 범위를 좁게 만들어서 많은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사업자등록증을 내게 해서 도급관계로 위장하는 특수고용을 만들기도 하고,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생활 보호 등을 내세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못하게 만들고, 실업자와 구직자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노동자성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많은 노동자를 ‘노동자’의 범위에서 제외하여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노동자’라는 이름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가 단결과 투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문화예술노동자들이, 가사노동자들이, 실업자와 구직자, 해고자들이 바로 그렇게 해왔습니다.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노동자입니다.
영화·음악·문학·출판·연극·미술... 여러 예술장르들의 현황과 문제는 얼핏 상이해보여도 고용불안과 불명확한 노동관계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의 일상화라는 현실을 공유한다. 비정규노동과 자본 중심의 간접고용·특수고용 문제, 그리고 청년과 여성노동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산업은 커지고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 시장독점의 결과와 생산구조의 왜곡 그리고 생존권 문제라는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시장논리와 노동소외는 장르와 지역의 경계를 지켜주지 않는다. 대기업 문화자본이 음악계와 예술계를 점령하고 있다. 자본의 유입은 당장 유용한 해법으로 보이겠지만 어느 분야건 대기업 자본으로 문제가 해결된 사례는 없다. ‘잠재 갈등의 예비 양산’이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에 도시경쟁과 문화정치의 대두로 일부 숨을 쉴 구멍을 얻은 경우도 있지만, 지역 권력의 암투 속에 희생된 문화기획자와 예술 종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려면 시청광장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제 정당들의 문화예술 정책 공약은 한류산업·문화강국과 같은 시장 이데올로기를 반영했으며, 예술인을 위한 정책은 뒷전으로 미루거나 과감하게 생략해버렸다. 진보정당에서조차 선전과 동원의 대상으로 호출되곤 했다. 그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왔지만, 정작 예술인의 절박하고 시급한 노동·생존권은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겨버리곤 했다. 예술계 안의 ‘내부착취’ 문화도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을 일부 개선하려 한 예술인복지법은 취지 훼손과 실효성 제한, 수혜대상의 좁은 범위, 예산의 불안정성, 정부 종속성이라는 문제를 드러내며 예술인 복지와는 거리가 너무 먼 예술인복지법이 되어버렸다. 인식의 전환과 예술인복지재단의 재설정 그리고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이처럼 장르와 영역을 가리지 않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예술인 대부분은 불안정 노동·수입과 불확실한 미래라는 ‘2불 상황’과 미조직화의 특징이 있고, 미조직화가 ‘2불 상황’의 개선과 발언권 제고를 요원하게 하는 악순환 구조이다. 예술인을 위한 여러 노조·조합·협회가 있어서 특정 직군과 영역을 교섭·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각종 조직·단체에 소속될 수 없다는 점, 각개약진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점, 범 장르적인 요구를 대변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일부 자기 서클의 이익만 추구하는 단체로는 공론화 기능과 정책 반영을 위한 대표성이 제한되는 한계들이 있다. 파편화되어 있는 예술인들이 목소리를 모아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장르의 벽을 넘어 연대하지 않으면 보장받을 수 없는 권리가 있다. 이 시대 예술(인)의 문제를 직시하는 진전을 위한 연대, 공동체를 위한 당사자 운동이 절실한 이유이다.
예술인소셜유니온은 시장·사업자 중심의 정책기조와 산업구조를 노동·예술인 중심으로 재편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앞서 예술인들의 죽음에서 배웠듯이 보편적 인민복지, 특수한 예술인복지, 구체적 예술정책이 사회·문화 생태계에 모두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면서 각각의 보편성과 특수성 그리고 구체성을 이해하고 돌파하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따지고 앉아 있는 것은 체제가 만들어놓은 덫에 갇히는 꼴이다. 나아가 사회와 함께 공유·공감·연대·협력의 길을 닦고, 서로 잇고, 보다 넓히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인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토론 그리고 실천을 제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