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누구나 생활할 만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최저임금이 생활할 만한 임금으로 인상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서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정 노동시간만큼 일하는 대도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만 주어도 된다는 생각도 많아집니다. 또는 학생이나 여성, 노인에게는 최저임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특정 업종을 저평가해서 최저임금만 줘도 되는 업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 회사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특성이나 고용형태나 하는 일에 기준하여, 생활할 수 없는 임금을 받아도 괜찮은 사람이란 없습니다.
지금 최저임금인 한 달 108만원으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고, 일해도 가난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은 반드시 생활할만한 임금이 되어야 합니다. 평균임금의 몇%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생활하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그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책정해야 합니다. 모든 노동자들은 생활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일 뿐이며, 모든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노동자에게는 조직과 투쟁이 필요한 것입니다.
2007년 17살,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며 기대했던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기대는 ‘아르바이트’를 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동네 자장면 집에서 아파트 한 동을 돌고 2,000원을 받는 일을 했다. 너무 힘들고 돈도 적다보니 그때 당시 시급 ‘3,480원’이라는 돈이 너무나 커보였다. 그때부터 지금 2013년 23살, 나의 시급은 ‘4,860원’이다. 7년 동안 별별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시급이 너무 낮아서 힘들어도 오래 일해야 내가 원하는 목표금액에 도달할 수 있었기에 최대한 덜 힘들고 오래할 수 있는 일이나, 시급을 많이 주는 일을 찾으며 옮겨 다녔다. 보다 나은 노동환경에서 알바를 하고 싶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1시간=4,860원, 아르바이트 인생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최저임금이 1만원? 그게 말이 돼? 절대 안 돼!”와 “최저임금 1만원? 와 대박! 근데 어떻게? 못하잖아.”다. 두 가지 전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그렇지 않아요”라고 반박해주고 나면 가슴이 쿡쿡 쑤신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못 버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빚진 대학교 학자금 걱정과 밀린 방세, 통신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보람이라며 위로하며 말이다. 오히려 기업이 망할까봐 사장님이 망할까봐 걱정한다. 너무 적게 받고 있으니 만원이란 돈이 최저임금이 된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는 세상에 살면서 4,860원이 적당하진 않아도 어쨌든 내가 정한 최저임금이 아니더라도 걔네가 ‘어떤 기준’에서 정해줬던 간에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임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들이니 어찌 가슴이 안 아플 수 있겠는가.
왜 안돼? 될 수 있어! 어떻게? 하면 되지!
첫 번째, 길거리에 지나다니면 많은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어떻게 생기는지는 관심이 없다. 커피 한잔에 원가 123원짜리를 소비자들에게 30배 이상인 3,800원에 팔며, 원가 1,000원짜리 햄버거세트를 5배인 5,000원에 파는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돈으로 계속해서 프랜차이즈 상점을 만들고 돈으로 돈 만들기를 해대는 것이다. 기업들의 이러한 폭리를 줄이고 이익률이 200%를 돌파하는 이익을 일하는 노동자에게 시급으로 1만원을 주어도 절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물론 영세사업자들을 이야기하자면 좀 다르다. 이윤자체가 나의 생활비와 맞먹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알바에게 최저임금 1만원 주어야 해요!”라고 쉽게 말할 순 없지만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된다면 사장님께 “사장님도 알바하세요. 시급이 1만원이라 알바해도 먹고 살 수 있어요!”라고 말을 해줄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너무나 수동적인 알바 노동자들이다. 알바는 고용주와의 관계가 ‘갑’과 ‘을’보다는 ‘갑’과 ‘정’이 된다. 기본적으로 법의 테두리 근처에도 못가는 환경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한 것들을 지닌 채 현대판 노예처럼 일을 하게 된다. 게다가 알바를 하면서 부당한 일들을 당해도 사장과 싸우는 것보다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게 되니 알바들의 수동적인 마인드와 노예근성이 점점 심화된다. 그렇게 비워진 일자리들은 청소년들처럼 사회에서 낮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채우니 갈수록 문제가 악화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헤치고 뚫어나가야 한다. 누가? 우리가 직접. 적어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밀어 넣고 어쩔 수 없는 ‘갑과 정’의 관계를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최저임금 1만원이 품고 있는 것들
요즘 오전에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주부사원들이 일하고 있다. 가정에서 일하던 아줌마들이 밖으로 나와 알바로 돈을 번다. 햄버거나 치킨배달을 시키면 아저씨가 배달을 온다. 늦은 저녁 음식점에서 서빙하는 이모들, 퇴근 후 집이 아니라 알바를 하러가는 직장인들도 있다. 대리운전을 뛰는 아저씨,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받는 아가씨, 이들 모두 부자가 되려고 알바를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알바를 두 개, 세 개씩 해대는 것이다. 알바 인생이 그렇다. 물불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 모두가 그러겠지만 내가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을 한다. 그것도 조건이라고 할 수 없는 악조건들 속에서.
이렇게 법적 테두리 근처에도 못 미치는 알바들의 근로조건들은 곪고 또 곪아터져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지금도 어디서부터 손을 내밀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손을 봐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외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1만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된다면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계속해서 장시간 일을 하기도 하겠지만 10시간 이상 일하던 것을 6시간 이하로 줄이게 되고 남은 시간을 여가시간에 사용하며 삶의 질을 스스로 높일 것이라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수동적이고 자존감 낮은 알바들의 마인드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적극적으로 사장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당돌한 알바들이 될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