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고 있는 필자는 이 영화제에 프로그래머로 함께했다.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독립영화인으로 서울 주민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독립영화 프로그래밍에 임했다. 하지만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부풀려진 영화제 규모에 대해서 걱정이 되었고,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판단도 있었다.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의 영화 및 영화제에 대한 이해 부족은 물론 집행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영화제는 시작 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고 내부 스탭들 사이에 갈등과 충돌은 말할 것도 없었다. 7월부터 계약직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체불되었고 개막 2주 전까지 상영 장소가 결정이 되지 않았다.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업체와 기술팀이 결정되지 않았음은 물론 영화제 자료집조차 준비되지 않았다.(영화제 전 필진들의 글을 모두 수집했음에도 현재까지도 자료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영화제 홍보는 당연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성대한 개막식에서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이 카메라 세례를 받는 동안 영화제 며칠 전 급조된 자원봉사자들은 자신들의 역할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며 개막식을 진행해야했다. 영화 상영 관련해 비전문가들인 프로그램 팀과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기술팀 상영기사가 되어 영화제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고, 이로 인해 많은 상영사고가 있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상암유니세프광장에 초청공연이 3일 전에 돌연 취소되는가 하면 스크린 설치비 미납으로 인해 청계광장 상영 개시일이 하루 연기 되고 영화제의 주요 상영장소인 세빛둥둥2섬과 상암유니세프광장은 예정보다 3~4일 앞당겨 문을 닫았다. 청계광장에서 “당신과 나의 전쟁”(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이 상영되었을 때는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이 상영 관련해 멱살을 잡고 싸우는 등 어이없는 일들은 매일 일어났다.
▲ 제1회 서울시민영화제 포스터 |
가까스로 폐막식이 진행되었고, 하진욱 집행위원장은 전반적인 운영에 대해 사과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 영화제 시작 전부터 하진욱 집행위원장과 삐걱거리던 이혁진 조직위원장은 폐막식에 초대받지도 못했고, 그럼에도 수소문해 와서는 자신도 하진욱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주장을 했으며 이 주장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영화제 전반적인 운영과 체불된 임금에 대해 프로그램팀은 하진욱 집행위원장에게 지속적으로 항의했다. 집행위원장은 협찬금이 예상보다 적게 들어와 영화제가 파행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갑, 을, 병 관계에 있는 협력업체들 간에 이간질과 불신을 야기했고, 급기야 영화제 파행원인이 좌파 프로그래머들의 영화선정에 있었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다.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운영에는 방관한 채 나름의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듯이 보였으며 이는 셀러브리티를 초청해 청담동의 한 클럽에서 진행한 폐막식 쫑파티를 봐도 알 수 있었다.
파행 운영은 폐막 이후에도 계속 됐다. 영화를 보러 왔다 허탕을 친 시민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항의하기 시작하자 어느 날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메뉴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이에 프로그램팀이 항의하자 웹을 담당하는 업체 탓으로 돌렸다. 계약직 스탭들과 아르바이트생이 42명, 영화 상영료와 원고료 등을 받지 못 한 영화인이 총 21명, 배급사가 15곳, 개폐막식 협력업체가 10곳이나 되며, 미지불 총액은 1억 원 가량으로 1천만 원 이상 협력업체와 세빛둥둥2섬 장소 사용료, 그리고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 한 개인들 인건비를 포함하면 2013서울시민영화제의 적자 규모는 3억~4억 가량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필자는 두 위원장에게 공식 해명 요청서를 보냈지만 답변은 없었고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은 서로의 잘못이라 싸우고 있으며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입장은 상식의 수준이다. 하지만 그간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이들에게 그런 상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개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영화제가 끝나면 해산하기 때문에 이런 일로 피해를 입은 개인들은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어 곧잘 포기하곤 만다. 그저 똥 밟았다 생각하고 술 한 잔에 쓰린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대부분 계약서 없이 인맥을 통해 일하고 있는 상황이고 계약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만만찮은 소송비용과 지루한 법정 다툼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함께 해결해보고자 프로그램팀을 중심으로 2013 서울시민영화제 대책연대(준)가 만들어졌고 노동부 고소, 민, 형사 소송 등 여러 방면으로 해결의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영화제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왜 다들 이렇게 영화제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걸까요? 영화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중, 소규모의 독립영화제를 함께했던 필자의 경험으론 영화제란 주류가 되었건 비주류가 되었건 다양하고 의미 있는 각 영역의 영화들이 대중들에게 선 보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네 삶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고 좀 더 풍부한 내일을 꿈꾸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제가 소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었을 때, 내부 인력들은 말할 수 없는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되고 다수 대중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몇몇의 영화제들에서 이미 경험했듯 파행은 그 극단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은 지저분한 싸움으로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되었던 영화제들은 어느샌가 잊혀지고, 소수의 몇 사람에게는 여전히 스펙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혁진 서울시민영화제 조직위원장과 하진욱 집행위원장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문화, 예술계를 들락날락하며 새로운 일들을 모색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일례로 이혁진 조직위원장은 항의하는 프로그램팀의 일인에게 2014년 국회 윤중로 봄꽃축제기간에 영화제를 생각하고 있다며 함께 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협찬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 자기 탓이냐며 발뺌하고 있는 하진욱 집행위원장은 현재도 부산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버젓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의 항의와 요구를, 돈 안준다고 응석 부리는 몸짓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많이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이렇게 문화예술인들의 노동력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일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 그리고 이를 해결할 방법들이 요원하다는 사실과 이를 통해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해야 하는 현실에 참 화가 납니다.
역시나 주위에서는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하던 일이나 잘하라고 합니다. 고생했던 사람들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 분란 만들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 합니다. 안되겠습니다. 내가 영화를 만들고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자 하는 이 의미 있는 장들이 이렇게까지 모로 가는 것에 매우 슬퍼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길 위에서 길게 싸워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영화제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일련의 과정에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 영화제에 관심과 기대를 가졌을 서울 주민들이었을 겁니다. 영화제 내부에서 영화제 파행에 일조했던 한 명의 프로그래머로서 제1회 서울시민영화제에 대해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더불어 사기 영화제를 공식 후원한 서울특별시, 영화진흥위원회, 한강사업본부, 한국YMCA전국연맹, 국제와이즈맨한국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의 책임 있는 모습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