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 밀양 가자!

[기고]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위해서

프란츠 파농은 알제리에서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알제리 민중의 고통에 심각하게 빠져들게 된다. 파농은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 섬 출신으로서 나치와 싸우기 위해 의용병에 자원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리옹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지만 그는 의용병 시절에도, 그리고 알제리에서도 인종차별과 폭력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듯하다. 그나마 조금 기대를 걸었던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소련의 헝가리 침공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알제리 민중의 상황은 외면하자 튀니지에 있던 알제리 민족해방군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에 앞서 알제리의 알제 외곽에 있는 블리다 정신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파농은 제도권 정신의학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흑인을 전두엽이 제거된 백인 수준의 지적 능력의 소유자로 바라보는 유럽의 정신의학은 알제리 민중의 문화와 민족의 상징체계를 고려하지 않는 치료법을 쓰고 있었다. 이에 반해 파농은 무슬림 특유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그 지평에서 알제리 환자들을 치유해 나갔다. 그러한 와중에서 알제리 민족해방군과 연결이 된 것이다.

파농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아서 그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고 평전의 저자는 말하지만, 미루어 보건대 파농은 자신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일상이 바로 식민지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음을 눈치 챘을 것이다. 프랑스 본국의 사회주의자들조차 그 당시 소련으로 표상되는 사회주의 모델에 대한 관념에 빠져 있을 때 말이다. 물론 파농이 백인도 아니고 본국 출신도 아니어서 더 깊숙이 알제리 민중의 상황에 공명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파농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될 수는 없다. 소수자가 소수자의 편에 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지극히 온당하기 때문이다.

시선을 우리 사회로 돌려 물어보자. 우리에게는 과연 식민지 알제리가 없는 걸까? 극단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너무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국의 시민들인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식민지의 민중이면서 제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이라고 말이다. 삼성전자의 텔레비전 광고에 백인만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 광고는 제국의 시민에 대한 욕망을 정확히 읽고 만들어진 것이며 동시에 그 욕망을 끊임없이 확대생산하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우리가 가진 너무 많은 식민지 중 하나가 밀양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밀양이라는 식민지는 우리의 미래와 곧바로 연결되는 사안을 품고 있다. 핵 문제가 그것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방사능 물질에 대한 공포가 퍼지기 시작하자 우리 정부는 괴담 유포자 처벌을 운운하기까지 했지만, 핵 문제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할 계기임이 분명하다.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문제가 이렇게 거대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밀양 할매들은 공동체를 지키지 위한 싸움의 과정에서 체득했다. 이렇게 사람의 인식은 구체적인 현장 속에서 감각을 통해 얻어지고 또 심화되는 것이다.

물론 방사능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일단 이렇게만 말해두겠다. 지구에서 방사능 물질이 옅어지고 난 다음에야 생명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그러니까 방사능 물질과 생명체는 양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핵발전소의 파괴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어이없게도 그것을 위한 송전탑 건설이 지금 밀양에서 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밀양 할매들의 외침은 딱 한 가지로 요약된다. 그냥 이렇게 농사짓고 살다 죽게 내버려 달라는 것. 이 소박한 평화에 대한 염원은 지금 우리의 염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평화는 더 이상 착취와 배제와 차별을 멈추라는 것으로 번역 가능하다. 우리가 밀양 할매들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무한하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위해서라도, 오는 1월 25일에 밀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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