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옥천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유성에서 날아온 어느 노동자의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야간노동 때문에, 공장을 폐쇄하고 소화기와 자동차부품을 던지며 사람을 다치게 한 용역깡패와 노조탄압 때문에, 한 달 간 28시간 잔업과 15시간의 특근을 해서 돈을 버는 노동자들에게 붙여지는 귀족노조라는 딱지 때문에,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도저히 안녕하지 못한데 이 ‘미친’ 세상에서 과연 당신은 안녕하냐고 말입니다. 유성의 노동자들이 안녕해야 세상이 안녕하지 않겠냐는 말에 안녕하지 못하다면 함께 안녕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옥천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두 시간이나 넘게 기차를 타고 내려와야 하는 곳이기에 유성나들이를 제안했을 때 함께 가줄지 많이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연대의 힘이 더 절실하다는 걸 알기에 꼭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었습니다. 이곳이 우리가 직접,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와야 할 의미 있는 연대의 장이란 걸 꼭 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놀랍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를 비롯한 대학생 열댓 명과 페이스북을 통해 유성나들이 소식을 들은 옥천 주민분들께서 함께 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셔서 참 든든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깜깜해서 두 지회장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던 농성장
예전에도 광고탑을 한번 찾은 적이 있었지만 한겨울에 찾은 농성장은 참 추웠습니다. 주위를 슥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뭐가 그리 바쁜지 쌩쌩 거리며 지나가는 자동차와 논밖에는 없었습니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갔는데도 매서운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오고 광고탑 위의 파란 금속노조 깃발이 세차게 펄럭이는 소리가 밑에까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심지어 도착하니 깜깜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니, 이런 곳에서 농성을 한단 말이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찾은 농성장은 이곳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면 손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그런 곳에 있었습니다. 이 휑한 곳에 광고탑 하나가 우뚝 서있고, 그 위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위는 얼마나 매섭고 추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너무 추워서 몸도 덜덜 떨리고 마음도 시렸습니다. 문화제를 여는 장소였던 길바닥도 네 명이 앉으면 꽉 차고, 길 바로 옆에는 논두렁이라 자칫 잘못 발을 헛디디면 아차 하는 사이 그곳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지난번 굴다리 위에서 홍종인 지회장님이 농성을 시작하셨을 때 목에 밧줄을 걸고 있는 모습을 보며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굴다리에서 내려오신 후로도 그 밧줄을 버리기는커녕 다른 조합원분들이 목에 걸고 아침 출근투쟁을 하고 계신 모습을 보며 세상이 참 무섭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끔찍한 기억이 담겨있는 밧줄을 여전히 목에 걸고 계시다뇨. 그런데 또 하늘로 올라가다니. 그것도 이번에는 이정훈, 홍종인 지회장님 두 분 모두 올라간다니. 꼭 저에게 우리는 안타까워 할 시간도 없다고 목 놓아 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유성나들이에 함께 했던 새내기들도 저 높은 광고탑위에 100일 넘게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학생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는 함께 살자고 외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이 삶의 절박함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높은 곳에 계신 두 지회장님이 반갑게 해주시는 인사를 받자 이유 없이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사실 누가 봐도 고공농성은 정말 힘든 일인데 왜 항상 자기들은 안 힘들다며 밑에 있는 사람들 걱정을 해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잡미묘한 마음으로 문화제를 시작했습니다. 사회를 보기 위해 앞에 서있는데 누가 앉아있는지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습니다. 그런데도 저 멀리 뒤쪽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성은 ‘안녕하지 못하다!’라고 외치던 그 자리에, 그 순간에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촛불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불빛은 어느 유성 노동자의 말처럼 한 순간 자기를 희생해 하얗게 타올랐다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태양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 울려 퍼졌던 노래의 가사처럼 ‘하얗게 내뿜는 숨 속에 뜨겁게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이 얼음 같은 세상을 녹이는 태양이 되었습니다.
‘노동자’라는 말에 사람 냄새가 나게 해준 유성지회분들
유성지회분들을 처음으로 만난 때는 꽤 오래전입니다. 2년 전, 친한 친구가 하는 동아리에서 축제 기간에 주점을 연다며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때 연대주점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주점 부스 앞쪽에는 대기업들의 홍보부스가 줄지어 서있고 시끄러운 노래 소리와 술 취한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가득 찬 민주광장에서 본 금속조끼를 입은 아저씨들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고 이질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처럼 세상에 참 문제가 많다는 건 대충 알고 있고 저 파란 금속조끼를 입은 아저씨들이 그 문제들에 대해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노동자’분들을 가까이 보게 되니 어떤 표정으로,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할지 괜스레 고민이 됐습니다. 그때 키가 참 크고 잘생긴 분이 저희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유성아산지회 홍종인 지회장이라고 소개하며 유성투쟁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며칠 전이 유성기업에서 폭력적인 직장폐쇄가 일어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라며 시작한 지회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제 세상을 구성하던 상식과 틀에 금이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요구가 왜 노동자들의 해고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다치고 아프게 만든, 심지어 두개골이 함몰되기까지 한 용역들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제가 가지고 있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법대로 하자!’는 말이 밥 먹듯이 나오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이미 사실로 밝혀진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검찰은 가만히 있고, 법대로 처리해달라는 말이 왜 아무 힘도 가지지 못하는지 역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로서 노동권과 노동조합을 가르쳐 놓고서는 왜 노조를 없애지 못해서 난리인지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은 결국 유성지회 노동자분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배우는 전공수업에서, 뉴스에서,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효율성에는 사람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야간노동이나 해고라는 것이 절대 효율성만으로 얘기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라는 유성 노동자분들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유성투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투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술자리에서 ‘내가 학생들 커서 야간노동 없는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겠다!’는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별거 없는 사람들의 별거 있는 움직임, 3.15 희망버스에 함께 해요!
저는 별거 없는 학생입니다. 집값도, 등록금도 부모님이 내주십니다. 기껏해야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벌이 정도 하는 학생입니다. 만약 제가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면 유성기업사장을 만나서 눈 한번 부라리면서 ‘똑바로 안할꺼냐’며 혼 좀 내고 유성투쟁을 한 방에 승리로 이끌었겠죠. 하지만 전 안타깝게도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도 아니고 제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별 거 없는 사람일지언정 무기력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 맞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전국의 대학가로 퍼져나갔던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어떤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예전에 유성지회 깃발은 어디를 가나 보이는 것 같다고 얘기하자 홍종인 지회장님이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땅 곳곳에서 연대의 힘이 없어서 조용히 사라져간 투쟁사업장들도 정말 많이 있다고, 그러니 앞으로 사람들이 연대의 손길이 절실한 곳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제 연대의 손길이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는 유성을 향했으면 좋겠습니다.
3월 15일 유성으로 희망버스가 떠납니다. 저는 한진으로, 울산 현대차 공장으로, 밀양으로, 전국 곳곳으로 향했던 희망버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힘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유성지회분들은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신념과 함께 하는 동지들에 대한 신뢰로 지금까지 버티고 계십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이 지쳐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든 상황이 힘들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큰 힘을 드릴 수 있을지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답은 희망버스에 함께 하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희망버스에 함께 해주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절박합니다. 이 희망버스의 힘으로 이정훈 지회장님이 다시 땅을 밟을 수 있고 이 땅의 민주노조를 지키고 있는 모든 곳에 희망이 되는 원동력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3월 15일! 함께 모여 더욱 환하고 뜨겁게 빛나는, 모두가 태양이 되는 그런 희망버스를 함께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