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양말 한 켤레’에 오세요

[기고] 농성장 침탈당한 기륭노동자가 삼성서비스 연대마당에 함께 하는 이유

5월 25일은 수운 최제우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앞세우며 동학을 창시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돈이 곧 하늘인 세상입니다. 정부와 자본과 보수언론들은 매일 경쟁과 효율, 규제완화와 비정규직화를 외칩니다.

‘돈내천 사상’이 잡아먹은 대한민국, 돈이 최고인 사회에서 사람은 가장 값싼 비용이었습니다. 효율과 규제완화는 세월호 몰살과 상왕십리 지하철 추돌사고를 불렀습니다. 탐욕의 자본 앞에서 전북 신성여객 버스노동자는 목숨을 던져야 했습니다.

5월 17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염호석은 41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저희 조합원의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계신다.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협상이 완료되면 꼭 병원비를 마련해달라”고 유서를 남긴 착하디착한 34살 청년이었습니다.

돈이 곧 하늘인 세상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은 1895일의 투쟁을 거쳐 만들어낸 정규직 고용 합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하더니 지난 연말 야반도주했습니다. 우리는 기륭전자 건물의 사기 매각 의혹을 밝히고 기업사기꾼 최동열 회장을 처벌하라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5월 21일 낮 12시 40분 경 법원 집행관과 용역경비가 세 명의 여성조합원이 지키고 있는 기륭 농성장에 난입했습니다. 법원 집행관 10여명은 농성장으로 올라와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밝혔고, 조합원들은 이 건물의 사기 매각 의혹을 얘기하며 강제집행은 안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이 집기를 빼내가는 것을 가로막자 집행관은 대기하여 있던 40여명의 남성과 여성 용역들을 불렀습니다. 40대의 여성용역들이 오석순 조합원의 가슴을 발로 밟으며 “이년 밟아 죽여버려”라고 소리쳤습니다.

4-5명의 여성용역들은 여성조합원 완전히 포박해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짐을 옮기기 시작했고 사다리차를 이용하기 위해 짐을 옥상으로 옮겼습니다. 제가 현장에 도착을 했을 때 조합원들은 1층 로비 밖으로 끌려나와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순간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 당황스러웠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얼마나 버티고 싸웠을까요? 농성장 침탈 소식을 들은 동지들이 달려왔고, 도저히 안 뚫릴 것 같던 공간이 열렸습니다. 기륭 조합원들은 로비로 들어가 버텼습니다.

야반도주 기륭전자 사기매각 의혹에 농성장 침탈

그때 기막히게도 경찰이 투입되어 연대를 하러 온 노동자들을 갈라놓고 끄집어내는 일들을 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8층 계단에서 울부짖으며 옥상으로 향하는 내내 많은 노동자들이 이렇게 죽음으로 내몰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뛰어내리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최동열 회장과 같이 죽지 못하면 나라도 죽겠다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절박하게 싸우지 않는다면,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3시간 동안의 격렬한 저항을 보면서 집행관은 짐 빼기를 포기하고 용역과 경찰들은 함께 농성장을 내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여성 용역에게 밟힌 오석순 조합원은 왼쪽 갈비뼈와 오른쪽 손목이 골절되어 입원했습니다. 많은 조합원과 노동자들이 온 몸에 피멍이 들고, 피가 났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겨우 농성장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언제 또다시 농성장 침탈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함께 저항하며 농성장을 지킬 것입니다. 동지들이 있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기륭전자 농성장 침탈을 막을 수 있었던 힘

지금 이 시간, 삼성이라는 탐욕의 세월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 참혹합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고 배고파서 못살았다”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최종범 열사의 유서와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노조가 승리하는 날 화장하여 정동진에 뿌려주세요”라는 염호석 열사의 유서가 너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가전제품조차 또 하나의 가족이라던 삼성전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장례식장에 경찰을 난입시켜 시신을 탈취하고, 유언대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노조 지도부를 연행하여 구속시켰습니다. 생모에게 최루액을 뿌리며 열사의 유골을 탈취해갔습니다.

그날 언론에는 삼성의 패륜과 만행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전면 광고가 실렸습니다. 저는 어마어마한 무한 권력을 보면서 너무나 화가 났지만,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기륭처럼 작은 자본도 저렇게 끈질기게 버티고 경찰을 동원하는데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지고 공권력 위에 군림하는 삼성 자본을 노동자들이 어떻게 이겨낼까?

시신 유골탈취, 언론엔 삼성 광고만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마저 저버린 야만의 삼성과 맞서 힘겨운 싸움을 씩씩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손을 멈추고 서초동 서울 본사 앞에 올라와 2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동지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서비스 고 최종범 열사의 딸의 아빠 없는 돌잔치를 함께 했던 ‘별이 빛나는 돌잔치’가 생각났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손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8년 여름 기륭전자 옥상에서 60일이 넘는 단식을 하고 있을 때 달려와 주던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2010년 가을 포클레인 위에서 절규할 때 손잡아 주던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 양말 한 켤레를 나누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륭전자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농성장 침탈이 언제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조합원은 용역경비의 폭력에 의해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조합원들 온 몸이 멍투성이입니다. 신대방동 기륭전자 농성장은 병실입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 밤 비바람으로 추위에 떨고 있을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소고기 무국을 끓여서 가져가려고 합니다. 후원받은 양말세트도 들고 가려고 합니다. 28일 저녁,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따뜻한 연대와 희망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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