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삶 속에서 시나브로 각인시킨 '특성'은 상황이 위급할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표현되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세월호사건'은 이 사회 각계의 리더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심성, 인간됨을 새삼 확인해주는 리트머스지가 되고 있습니다.
정몽준 씨가 서울시장 예비후보였을 당시 그의 아들이 '미개인 발언'을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분노했습니다. 정몽준 씨는 "철부지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라고 사과한 바 있습니다. 물론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믿고 싶었습니다. '세월호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아이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서로를 챙기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남겨 일상적 삶 속에서조차 자기 살길만 찾았던 우리와 같은 범부들에게 진정 우정이,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다시 갈 길을 떠났습니다. 대개가 정몽준씨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인데도 말입니다.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후 말을 잊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왈칵 쏟으며 아들의 발언에 대해 재차 사과하기에 그래도 '가난한 집 출신의 재벌'이 조금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연일 '색깔공세'를 펴는 모습을 보고 그 버릇 어디 가나라는 생각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교사로 삶을 마감한 세월호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되살아나 그저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해질 뿐입니다.
사실 정몽준 씨는 아들교육 하나는 잘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대 자본가이자 수구정치세력 안에서 대권을 꿈꿀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 정몽준 씨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죽음을 시종일관 무시하는 것을 보고 그 아들이 무엇을 배웠을지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두 달 사이에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자 8명이 폭발, 추락, 익사 등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아들의 잘못이 있다면, 그저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가정에서 받은 교육을 솔직하게 털어 놓은 '정직함'은 아닐는지요. 아니 어디 그 아들이 문제겠습니까. 그것을 퍼뜨린 '발 달린 페이스북'이 문제였겠지요.
하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너무나 합리적이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가와 그 아들이 한국사회 문명화의 선두 주자라는 점을 가감 없이 표현하여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이 땅의, 아니 이 세계의 모든 자본가들과 지배권력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비난받기보다는 오히려 칭찬받을 일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절이 시절인 만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칭찬의 릴레이가 불쑥불쑥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분이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인 조광작 목사님이라는 분인데, 그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해 결국 사과와 함께 그 직위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아마 이 분도 '세월호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학생들 또래의 과거시절에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갔었거나, 혹은 주변에서 그리로 수학여행을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나 봅니다. 그 때는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지요. 언감생심 수학여행이 다 무엇입니까. 가난한 아이들은 지근거리의 소풍조차 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 밖에서, 혹은 좀 떨어진 후미진 공터 등에서 한나절을 서성이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버티었던 그런 시절이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그 때도 저 목사님이 지금과 같은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혹시 함께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가난한 친구가 마음에 걸렸던 그런 고운 마음을 지닌, 예쁜 아이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목사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과 함께 하다가 결국 로마제국의 권력과 그들의 마름이 된 유대 지배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나사렛 예수'의 고난에 찬 삶에 감동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이런 상상은 쓸데없는 것이겠지요. 불철주야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하는 조광작 목사님은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모두 백정이다."라는 발언을 첨가했더군요. 얼마 전 모 케이블방송 뉴스진행자들이 '세월호사건'의 아픔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보이고 잠시 방송을 진행하지 못한 것을 두고 벌어졌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그 진행자들이 박근혜 씨가 대국민담화발표 중 적지 않은 눈물을 흘렸을 때, 혹은 이후 그 담화내용의 보도과정에서 눈물을 보였다거나 그리하여 고발당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을 포함한 적지 않은 이들 모두는 '백정'이겠지요.
그런데 진정 저 목사님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발언의 정황상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 추론할 수는 있으니 믿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존중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목사님인데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겠지요. 어찌되었든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백정'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 목사님이 앉으나 서나 찬미했을 예수가 로마제국과 한 패가 되어 부와 권력을 좇았던 유대의 사두가이들보다는 아마도 차별, 냉대 받던 백정을 더 위하고 존중해주셨을 것이라는 나름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비록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착취와 수탈, 억압과 차별이 있는 모든 곳을 교회라 생각하며 아낌없이 가르침을 나눠주고 그것과 맞서 싸운 예수의 궤적에는 진정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많은 교회지도자들에게는 외람되지만, 예수의 이름을 빌어 이 미천한 '미개인이자 백정'이 기도합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진정 성령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책임'은 저들의 몫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항상 대중을 '미개인', '백정' 등으로 생각하며 천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놀리는 입술에 귀가 멀고 순간마술에 눈이 어두워진 적지 않은 이들이 그들을 추종해 왔기에 그들은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황금의 뉴타운 개발, 전면적인 노령연금 지급, 반값등록금 실시 등의 공약에 압도되어 진정 그들이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정치세력들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짝사랑의 편지'만을 계속 날렸으니 어느 누군들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쓰레기 같은 거짓 공약과 자존을 흔쾌히 맞바꾸는 이들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표할 자본가와 권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공약들은 "단지 선거용이었을 뿐"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것 아니겠습니다. 오직 조롱, 농락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더 막막한 일이 있습니다. 이 순간, '세월호사건'으로 고통 받고 가슴아파하는 이들을 '미개인', '백정' 등으로 생각하는 이 사회의 고귀한 리더들과 하나의 몸이 되어 교육현장을 책임지겠다며 활보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감독 아래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포함한 교육과정 전반이 설계된다는 것이 진정 두렵지 않습니까. 그 계획 속에서 아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아니 자신들의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들이기도 한 이들을 마치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랬듯이 사지로 내몰고 비하, 혐오하는 저 사회지도층들의 복제판이 된다면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죽음을 통해 우정,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떠난 세월호의 아이들과 지금도 그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 친구들, 동료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뜻을 잇겠다고 거리에서, 학교현장에서 노심초사하는 양식 있는 많은 선생님들에게 정말 너무 부끄러운 것 아닙니까.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사회와 삶을 비록 실낱같은 희망으로라도 놓지 않는 이들이라면, 아니 진정 '미개인들'과 '백정들'이라면 이제는 껍데기가 된 수구정권과 집권당, 그들의 눈치만 보는 보수야당의 리더와 그 추종자들, 부와 권력에 눈 먼 교회의 수장들, 그리고 교육을 그저 돈벌이의 수단인 변호사사무실의 운영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교훈과 가르침을 주어야 할 때입니다.
6.4선거가 다가옵니다. 잘 알다시피 선거가 존재하는 최소한의 의미는 주권자가 책임을 져야할 사회정치세력들에게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자존감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결국 '미개인들', '백정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방책의 일환이고 그것을 통해 돈이면 다되는 줄 아는 이들과 그들의 몸종이 된 권력에게 '주권자'로서 경종을 울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월호사건'을 잊지 않겠다고 자임한 이상, 그 길의 초입에서 벌어지는 저 점입가경의 망나니짓을, 저 의식적인 정치적 도발들을 그냥 보아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비록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녹녹치 않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자기화하기 위해 함께 대화하고 연대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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