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며칠 간 강풍과 폭우가 쏟아지더니 이제는 폭염이다. 구미는 어제 폭염경보까지 내렸다. 40m 굴뚝에 올라온 지 50일이 넘었으니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쉽지가 않다. 그런데 날씨보다 힘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다.
스타케미칼 자본에 의해 공장 가동이 중단된 지 1년 7개월째다.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이하 해복투)는 스타케미칼의 핵심 설비부문을 인수하기로 한 동종업체 TK케미칼에 대해 타격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과 TK케미칼 김해규 사장 간의 계약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풍문으로 돌던 분할매각이었다. 계약의 선제조건이 노조와 노조원의 완전한 철수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3년 1월 폐업을 앞세운 기획된 구조조정이 확인된 것이다.
한국합섬을 인수한 김세권 사장은 공장 가동 이후 고용을 승계한 100명의 조합원을 제외한 필요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길 원했다. 실제 2012년 임단협의 핵심 쟁점으로 사측의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사측이 폐업을 앞세운 구조조정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월 회사가 폐업을 선언하자 현장의 일부 간부들이 ‘차광호 집행부의 일주일의 부분파업이 폐업의 원인’이라며 회사를 살리자고 들고 일어섰다. 20년 가까이 활동해 온 동지들이었기에 믿고 노동조합을 맡겼는데 어용 집행부로 돌아설 줄 몰랐다.
금속노조 스타케미칼지회 집행부는 “폐업이 확실하니까 위로금을 받고 권고 사직하는 것이 실리”라고 주장했다. 흔들리는 조합원을 설득하고 함께 투쟁하자고 해야 할 노조가 싸울 의지도 없고 회사 입장을 똑같이 주장하는 걸 보면서 조합원들은 고개를 돌렸다. 168명의 조합원 중 139명의 조합원이 권고사직에 응했다.
나와 동료들은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분명 기획된 구조조정이기 때문이었다. 권고사직서를 내던지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자 스타케미탈지회는 핵심 조합원 6명을 징계 제명했다. 금속노조의 재심에서 해복투의 정당성이 인정돼 징계가 무효화되자 각종 지원을 차단하며 노노 갈등으로 비화시켰다.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서울 무역부, 충북 음성 스타플렉스본사를 오가며 투쟁을 계속했다.
조합원들은 권고사직으로 내몰아 놓고 정작 스타케미칼지회, 구미지부에 파견나간 간부들은 최근까지 회사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았다. 결국 노동조합이 고용을 청산하는 주요 역할을 한 것이었다.
해복투가 결성되지 않고 어용 집행부의 의도대로 갔다면 김세권 사장은 아주 편안하게 회사를 분할 매각해 앉았을 것이다.
금속노조에는 투쟁을 하다가 길어져 생계가 어려워지면 장기투쟁기금이라는 신분보장기금을 지급한다. 우리는 작년부터 금속노조에 장기투쟁기금을 요청했다. 스타케미칼 어용집행부는 권고사직을 마무리하고 공장에서 나갔다. 다음날 나는 굴뚝농성을 시작했다.
해복투 동지들은 어용집행부가 공장에서 나갔으니 이제는 금속노조 조합원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투쟁을 했다. 그런데 이것이 웬 마른하늘에 날 벼락인가?
금속노조 신분보장기금 심의운영위에서 2명의 운영위원의 문제 제기로 기금 지급이 보류됐다.
그러던 중 금속노조 부위원장과 담당 부서 책임자가 해복투와의 간담회에서 어용집행부를 인정하기 때문에 굴뚝 농성을 시작하기 전에는 신분보장기금 보장 기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자들에게 권고사직을 강요하는 집행부의 잘못을 비판하며 회사와 싸운 기간인데 투쟁기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절차와 규정을 중요시하는 금속노조가 2번에 걸쳐 직권 조인한 어용집행부를 인정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생계가 막막한 동료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며칠 전 ‘사회적 파업 연대기금’에서 500만원을 지원했다. 금속노조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사회단체에서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해 줘서 고마웠다. 생계가 어려운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밤에도 폭염이 계속된다.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4~50대 가장인 동료들이 돈 한 푼 없이 청춘을 바친 일터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빚을 내서라도 생계비를 지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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