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좌파정치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일상화된 느낌이다. 이런저런 류의 정치평론가들의 촌평을 넘어 진보좌파정치세력 안에서도 그런 표현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노동자들을 착취, 수탈하는 자본주의체제, 남성지배의 가부장체제, 그리고 자연을 이윤과 부의 대상으로만 삼는 반생태사회에서 어떻게 진보좌파정치가 사라질 수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신 죽어나가고 그 가운데 다수를 점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노골적인 착취, 반인권의 상황에 놓여 있으며 4대강사업의 결과가 상징하듯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자연이 저토록 파괴되어 가는데 말이다. 그것이 실종되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들리는 저 삶의 아우성들과 투쟁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데도 진보좌파정치가 실종되었다고 한다. 특히 6.4지방선거에 이어 7.30 재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진보좌파정치의 존재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하나는 제도 밖의 투쟁을 정치로 간주하지 않는 인식이 여전히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핵심은 생산관계, 분업관계 등에 내재하여 작동하는 계급투쟁 그 자체, 그리고 그것에 환원될 수 없는 사회관계들 및 그 안에 내재하는 권력관계들과 맞물린 다양한 투쟁들에 있는데도 말이다. 제도 밖의 투쟁들을 정치로부터 배제하는 발상은 ‘부르주아 정치학’이 전제하는 오랜 발상인데도 이른바 진보좌파를 자임하는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그것을 그저 ‘정치의 저 만치에 있는 사회운동’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른 하나는 제도정치 안에서도 진보좌파다운 정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기우에서 말하건대, 제도정치와 제도 밖의 운동이라는 이분법을 전제로 제도정치의 한계, 무용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발상 위에서 제도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는 진보좌파정치는 사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실현가능성 여부, 그 정도와 무관하게 제도 밖의 정치를 법, 제도 속에 각인시키고자 제도와 비제도를 관통, 넘나들면서 ‘헤게모니정치’를 구성하고자 하는 집요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헤게모니정치에 가장 부합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세월호사건’의 유가족들이다. 그들 각각이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는가와 무관하게 그들만이 자기지배라는 진보좌파정치의 핵심모토를 그나마 일관되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흐름이 이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힘은 ‘세월호사건’의 개별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냉철한 이성과 굳은 의지로부터 나온다. 지금 유가족들이 수구 사회정치세력들의 그 어떤 비아냥, 음해, 왜곡 등에도 떳떳이 맞설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세월호사건’에 대한 투명한 조사와 그 결과에 따른 시비와 책임을 묻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언제 성금을, 보상금을, 아이들 대학입학의 특전을 달라고 했는가. 그들이 언제 의사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가. 그들은 그런 발상들이 자신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한 풍문은 ‘세월호사건’의 보편적 의미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제 발 저린 자들이 대중선동을 위해 퍼뜨리는 것일 뿐이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 사회구성원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우연처럼 다가온 세월호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명명백백히 하여 더 이상 그와 같은 사건이, ‘무기력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가난한 자들의 삶을 더욱 질식시키고 자본의 살을 찌우기 위한 저 고색창연한 ‘국가개조’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공유하여 거기에 맞는 대중적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유가족들은 오직 ‘공통의 것’을 찾고자 노심초사하기에 커다란 동요 없이 자신들의 길을 의연히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7.30선거를 앞둔 지금 제도 안의 진보좌파정치세력들의 행보는 어떤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 사회에서 제도 밖의 투쟁을 정치로 보지 않는 발상이 지배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보좌파정치의 실종’이라는 언술은 바로 이들 제도 정당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커다란 이유는 그들 대개가 수구-보수 독점의 정치로부터 벗어나고자하지 않고 거기에 편승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거 시기 그들의 주관심은 그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존재이유와 선거 전략을 마련, 조탁,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구정치세력과 보수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누가 출마하고 그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의 문제에만 집중되고 있다. 결국 이는 ‘후보단일화’라는 선거공학의 문제로 귀결되고 따라서 소수파인 진보좌파 정당 후보의 ‘무조건 사퇴’로 마무리되는 수순을 밟기 일쑤인 것이다.
대의정치에 참여하는 진보좌파정당의 기본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것, 즉 문제해결자임을 자임하고 때로는 욕먹고 맞아 입술이 터지고 야유를 받으며 연단에서 내려오고 그래도 또 다시 만나 설득하고 배우면서 대중과 함께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수구-보수독점의 정치지형에 편승하여 ‘단일화의 떡고물’만을 얻으려고 하니 눈에 뛸 리가 없는 것이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내가 완주하여 혹시라도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패배하고 수구세력이 승리하게 되면 어쩌지, 그 정치적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지, 독박 쓰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포로가 되어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하위파트너로서의 역할만을 충실히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노예의 정치'가 어디에 또 있는가. 그리하여 결국 대개가 대범한 척 ‘조건 없는 지지’를 하지만 실제로는 품위 없이 허둥지둥 물러나고 마는 것이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통진당의 경기도지사 후보의 사퇴는 그 전형 아니었는가. 그렇게 지난 수십 년을 보냈는데도 한국정치가 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이번 7.30지방선거를 앞두고 동작을 선거에 출마한 정의당 노회찬 후보에게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는 24일까지 후보단일화가 안되면 사퇴하여 보수자유주의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런 행보는 실망을 넘어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진보좌파정치세력의 일원이 아니라고 한다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진보혁신회의(준)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자진사퇴라니 정치가 무슨 ‘자선사업’인가. 단일화의 필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단일화를 해도 무엇인가 대중적 이해를 위한 협상내용이 있어야 할 것이고 정치적으로 대중이 판단하고 사유할 수 있는 ‘꺼리들’은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에 따라 단일화를 하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도 정치적으로 납득이 되는 방식으로 출마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노동당의 김종철 후보가 오랫동안 지역 활동을 해오고 출마선언을 한 마당에 도대체 거기에 출마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노회찬 후보를 포함한 진보좌파정치세력이 지금까지 귀가 따갑도록 성찰해 왔다고 말하는 지역정치의 활성화에 부합하는 것인가.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진보정치세력 사이에 불신을 더 증폭시키고 그나마 상징적인 진보혁신회의(준)의 위상을 우습게 만들어 향후 이를 매개로 한 협력과 연대를 더 불투명하게 만드는데 기여했을 뿐이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출마를 안했으면 그냥 보수야당의 후보와 수구정당 후보, 노동당의 김종철 후보 등이 대결하는 구도가 됐을 터인데, 굳이 나와서는 자진사퇴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를 지지하겠다니 이 또한 무슨 괴초식인가. 그렇게 단일화에 자신이 있는가. 혹시 자신을 지지한다는 어느 대학교수의 극찬, 즉 노회찬의 국회진출이야말로 “신의 한 수”라는 말에 판단력과 절제력을 잃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이번 행보가 어떻게 귀결될지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의도대로 단일화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결과와 무관하게 노회찬 후보는 진보좌파정치에서 이제 잊혀가는 존재가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순간 ‘대권 3수를 위한 권영길의 '패착’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왜 일까.
이번 동작을 ‘노회찬 사건’은 ‘세월호특별법’의 정국에 직면해 있는 진보정당정치의 정치력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예이다. 거기에서 진보좌파정치의 커다란 그림을 사고할 줄 아는, 그런 정치인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왜 진보좌파정당들이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의 부침에 연동되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지금 ‘세월호 특별법’의 정국에서 왜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었는지 다시 한 번 깊이 자문해 볼 일이다. 문제는 의회에서 소수파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진보좌파정치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행보에서 배우자. 자신을 버리는 그 차가운 절제와 정치적 감각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역사적 사건'이 누군가를 흘려보내고 누군가를 새로 맞아 주체로 부상시키지는 않지만, '세월호사건'이 그 가속화의 계기가 되기를 진정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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