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규직 채용 조건에 딱 들어맞는 사람들

[칼럼] 누군가의 고통과 자신의 안온에 찬성표를 던진 그 순간

“그때는 우리가 힘이 없으니까, 불법파견이다 이래도 회사에서 ‘아니야, 도급이야’ 이러면 또 정리가 됐던 거죠.”

노조가 불법파견을 말해도, 힘 있는 회사가 합법도급이라고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도 불법파견임을 주장하며 싸웠다. 그 싸움의 한 형태가 노동부에, 법원에 불법파견 여부를 가려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었다.

2010년 대법원 판결이 났다. 불법으로 사용한, 원래는 ‘정규직’이어야 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법으로 확인되자 현대자동차는 술렁거렸다. 현대자동차는 책임질 마음이 없었으나, 법적 판결 또한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취한 행동은 신규채용 확대. 판결 불이행에 관한 입막음과 노동조합 조직력 약화를 동시에 안겨줄 수단이었다.

아무리 정규직이 되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들어가는 일이라 해도, 지난 10년 동안 신규채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몇 천만 원을 바쳐 정규직이 되고, 누군가는 인맥이 좋아 정규직이 됐다. 신규채용 원서를 손에 든 회사는 정규직이 될 사람과 아닌 사람을 갈랐다.

“나랑 같이 들어온 애들은 다 정규직이야. 원래 들어올 때부터 나눠져 있어, 정규직 될 놈과 아닌 놈. 다 정해져 있어, 빽이 좋은 놈과 없는 놈이.”

그동안 현대자동차 왕국에서는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가진 것 없는 자들의 행운과 불운이 갈렸다. 힘 있는 자들과 그 힘 안에서 평온을 유지하려 한 이들의 협상으로 현대자동차 수 천명의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힘 있는 자들에게 맡겨야 했다. 아니, 스스로 힘 있는 자들의 질서에 편승해야 행운의 끄트머리라도 잡을 수 있었다.

“어차피 회사가 선택한 사람들은 정규직이 되요. 지금까지 그래왔어. 우리가 하는 것은 회사로부터 선택받은 애들이 들어가는 그 문을 넓히는 게 아니라, 문에 들어가는 사람을 우리 모두로 만드는 거지.”

이런 말을 하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쟁취는 내게 “정의의 문제”였다.

최근 그 ‘정의’에 커다란 금이 갔다. 현대자동차 아산·전주지회는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사내하청 문제에 합의했다. 최대 4년까지만 인정되는 근속, 소송비용보전금 200만 원이라는 실속 없는 합의 내용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해고 4년 동안 그들의 좁아진 집, 도망친 가족, 망가진 몸에 대해 익히 들은 터다. 신규채용으로 정규직 문을 통과한 동료를 보는 심정, 나만 그 문을 통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목을 죄어오는 손배가압류도.

그럼에도 납득도 용서도 할 수 없는 것은, 내년 정규직채용에 배제된 3천여 명에 대한 기약없는 약속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고 지역과 공정 전환배치를 인정한다며 현대차 불법파견에 준 면죄부. 더 한 것은, ‘전주/아산 조합원 이외의 직접생산하도급 근로자’를 언급하며 교섭에 참여하지도 않은 울산공장 조합원들을 포함시켜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훼손시키는 합의내용이다.

합의에 눈을 감은 순간, 그 합의가 며칠 뒤 있을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 선고를 연기하기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찬성표를 던진 순간, 이들은 현대차가 내건 정규직 채용 조건에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 되었다. 기존 권력에 붙어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들.

지난 세월 그들이 비정규직 처지를 만들었다고 이를 갈던, 그 2000년의 현대자동차 합의도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일어난 일이다. 누군가의 고통과 자신의 안온에 찬성표를 던진 그 순간 이뤄진 일이다.

그럼에도 “평생 정몽구 하청 일만 했다”던 아산 공장의 나이든 노동자가 이번 합의에 반대하여 울산공장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내려온 것을 보았다. 큰 위안이었다. 여전히 힘 있는 사람들이 선심쓰듯이 나눠준 행운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4년 전 불법파견 싸움을 시작하며, 한 말을 반복한다.

“싸우는 게 가장 현실적일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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