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합의에 따른 소송 취하를 이유로 선고가 또 다시 연기되며 애를 태웠던 현대차 불법파견 소송이 열리던 9월 1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62호. 방청석을 차지한 기자들 때문에 법정 밖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노동자들은 ‘전원 승소’ 소식을 전해 듣고 복받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서로 부둥켜안고 오래도록 흐느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컨베이어벨트라는 자동흐름방식의 자동차 조립·생산 공정은 합법도급이 아니라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하급 법원의 엇갈린 판결에 종지부를 찍었다. 불법파견의 근거로 정규직과 혼재공정 등 6가지 근거가 판결문에 명시된 이유는 판결 대상자인 최병승이 의장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11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의 판결대로 아산공장 4명에 대해 현대차의 근로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2년 이상 근무한 4명 가운데 엔진공장 서브업무까지 불법파견에 포함됐다. 현대차 전체 생산공정이 불법파견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차체, 도장, 의장공정을 불법파견으로, 엔진 변속기 시트 등 나머지 공정을 합법도급으로 판정해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왜곡했다. 현대차의 대리인인 김앤장은 마지막 변론에서 대법원이 근거로 제시한 정규직과의 혼재공정 등 6가지 근거를 충족한 사람은 소송을 제기한 1569명 중 8명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리되어 있고, 컨베이어벨트가 자동이 아니라 수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전주공장은 전체가 합법도급이라는 주장을 폈다.
2014년 9월 18~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중노위의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고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현대차 생산공정 전체를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다.
법원은 현대차와 하청업체가 맺은 계약의 목적이 일의 완성이 아니라 노동력 제공 자체이고, 하청업체가 고유기술, 자본, 전문적 기술, 특화된 업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파견이라고 판결했다. 또 업무수행의 과정에 대해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 등이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도급인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그러한 지휘․명령이 도급인 등에 의해 통제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명시했다.
법원은 자동차회사의 첫 공정인 차체에서부터 차를 수출하기 위해 선적하는 일까지 전체 공정이 ①일련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②정규직 업무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이루어지며 ③작업결과가 누구의 작업인지 구별이 곤란하기 때문에 ‘합법도급’ 공정이 단 한 곳도 없다고 판결했다. 소방서의 업무 중 핵심 업무인 화재 진압은 정규직 업무이고, 장비 정비나 소방차 운전은 핵심 업무가 아니어서 도급 업무로 구분할 수 없듯이 자동차공장의 공정을 구분할 수 없다는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현대차, 현대글로비스, 하청업체가 1, 2차 도급계약을 체결한 하청노동자도, 개정 파견법에 따라 2년 미만 근무한 한시하청도 정규직으로 인정했고, 임금에 대해서도 잔업, 특근 등 개인별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을 제외하고 정규직과의 임금 차액 31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모든 사내하청 공정이 불법파견
‘현대차 모든 생산공정 불법파견 인정 9.18 판결’이 미칠 파장은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보다 훨씬 크다. 지난 7월 1일 발표된 고용형태공시에 따르면 현대, 기아, 한국지엠 등 완성차 5사에만 2만2천명의 간접고용(소속외 근로) 노동자가 있다. 청소, 식당, 경비 등의 업무를 빼더라도 1만5천명 이상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번 판결의 대상과 똑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자동차, 자동차부품, 전기전자, 기계, 철강 등 대부분의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높다. 고용공시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간접고용 노동자는 87만8천명이다. 300인 이하 사업장을 포함하면 최소한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서 일하는 100만 명 이상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결이다.
9.18 판결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같은 일을 하는 생산공정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이기 때문에 사내하청 제도를 없애라는 요구를 전면에 걸고 투쟁과 교섭을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노조는 ‘조합원 전원 정규직’을 전면에 내걸었다. 자본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는데, 노조는 한 발 한 발 양보했고, 급기야 계급적 요구 대신 조합적 요구를 앞에 내걸면서 조합원조차 모두 정규직화하지 못하는 잘못된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파 연합 집행부였던 문용문 지부장도 ‘조합원 최대 포함 근속 일부 인정 특별채용’을 합의하려고 했다. 생산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16.9% 사용하기로 합의한 정갑득 집행부부터 불법파견을 용인한 이경훈 집행부까지 현대차 정규직노조는 명백한 불법노동을 바로잡기는커녕 노사합의로 현대차 자본에 면죄부를 줬다.
현대차 정규직노조만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잘못된 합의에 대한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고, 잘못된 합의를 바로잡거나 반복하지 않도록 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금속노조는 몇 년 동안 중앙교섭에서 ‘생산공정 및 상시업무 정규직화’를 요구로 내걸었다가 포기했다. 올해는 금속산업 최저임금 적용대상에 사내하청, 파견, 용역노동자를 포함시키는 요구를 내걸었다가 실태조사를 하기로 합의하고 끝냈다. 9.19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적용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법은 최저기준이다. 노동조합은 교섭과 투쟁을 통해 최저기준인 법보다 높은 수준의 단체협약을 체결해왔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불법을 외면하거나 묵인하는 것을 넘어 불법노동의 공범 역할을 자임해왔다.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활동가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통렬한 반성이다. 더 이상 불법노동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정규직 활동가 통렬한 반성부터
9.18 현대차 모든 생산공정 불법파견 판결 이후 신규 채용만 학수고대하던 비조합원들의 노조 가입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10년 동안 구속, 수배, 해고, 폭력을 각오하고 싸운 결과를 무임승차하려는 비조합원들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조에 받아들이고 선배 조합원들의 희생을 갚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외면했고 비정규직은 한시하청(촉탁계약직)을 외면했는데 법원은 사내하청, 한시하청도 모두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우리 조합원만 정규직 전환’이 얼마나 위험한 요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현대차지부, 아산-전주비정규직지회의 8.18 합의를 기억해야 한다.
9.18 판결은 제조업 사내하청의 모든 공정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다. 현대차만이 아니라 부품사들도 마찬가지다. 고용형태공시 자료에 따르면 한국프랜지에는 235명, 덕양산업에는 298명의 간접고용(소속외 근로) 노동자가 있다. 대부분이 사내하청이다. 현대모비스와 한라공조 울산공장은 아예 비정규직 공장이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소, 화학사업장도 마찬가지다.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현장에 알리고, 정규직 소송을 추진하고 노조로 조직하는 일을 외면한다면 불법노동의 공범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1990년대 초까지 울산은 노동운동의 메카였다. 그러나 지금 울산은 불법노동의 메카다.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을 계기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울산의 노동조합 활동가라면, 선전물을 들고 가까운 공장 앞으로 가야 한다. 고개 숙이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 불법노동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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