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광화문 농성장 소회

[기고] 잊지 않겠다던 약속, 옅어지는 건 아닐까

3단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단순, 단단, 단아.
물건을 살 때, 일을 할 때, 사람을 볼 때 박노해가 생각한다는 3단. 단어의 재발견 정도겠지만, 나는 소위 ‘투쟁현장’을 갈 때 3단을 생각한다. 단순이야, 생각과 행동 사이 간극이 좁은 편이라 가능하다고 여기지만, 단단이라...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 현장 같은 경우, 대자본 삼성물산과 대림건설을 비호하는 경찰과 매일 맞서다 보면 그 단단함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쉬울 수 있다. 가끔 20대의 활동가들이 경찰에 의해 고착당하고, 짐짝처럼 내팽개쳐 지면서 허탈감과 자괴감, 분함 등으로 울기도 하지만, 다음 날과 그 다음 날에 묵묵히 현장에 나가 대응하면서 어느새 단단해져 가니, 현장에서의 경험을 쌓으며 단단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제정 촉구를 위한 단식장인 광화문 현장의 경우는 좀 다르다. 맞서 싸울 대상을 매일 마주하는 것도 아니고, 책임자들에게 항의하면서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슬픔에 쌓여 있는 유가족들과 그 슬픔을 함께 하고 위로하려는 소위 ‘동지’ 들만 가득한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에게 압박을 줄 수 있도록 마냥 현장을 유지해가야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야 하는 일은 오히려 단단함을 다지기가 힘들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허망하게 약속을 저버리는 대통령이 머무는 곳을 바라다 바라보면서, 그날이 그날 같은 나날들 속에서 유가족의 슬픔을 겪다 보면, 오히려 그 상실감은 한전 직원들과 고성이 오가며 경찰들과 몸싸움 하는 밀양송전탑 건설 현장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막을 자세히 모르면서 인터넷과 언론이 왜곡 보도하는 것만 보고 듣는 우매한 무리들인 ‘일베’ 들의 치기어린 행동에 대응하다가, 잃어버린 자식들 같은 아이들과 몸싸움을 벌인 날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영석이 아버지는 끝내 울음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인간의 원초적 서글픔들이 가득한 현장에서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일은, 꽤나 어색하고 힘든 일이었다.

오히려, 치유의 장소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치열한 현장에서 굳어져 있는 마음들을 서로가 위로하며 외롭지 않다고 되새김질 하는 곳,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들끼리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곳에서 하루를 꼬박 굶으며 깊어지는 공명 같은 내면의 서글픔들을 암묵적으로 함께 하는 행동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는 곳이 광화문 현장이다. 한 번 쯤은 비를 맞아야 단단해질 수 있다면, 그 비가 꼭 시련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제보다 오히려 단단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단아’는 힘든 문제다. 의미 있는 결론을 얻어 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해내지 못한 채 광화문현장을 철수해야 한다면 그 열패감은 그 어떤 현장보다도 클 것이다. 그 열패감을 딛고 또 다른 현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내공을 일컬어 ‘단아’라고 표현한다 해도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하여, 3단 중에 ‘단아’는 내게 아직도 숙제이다.

세월호 특별법 안에는 국민의 안전을 보다 강화하는 법안이 들어있다. 당연히 부여받아야 하는 국민이, 보장해야 하는 국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 않은가. 우리의 당연한 요구가 언제부터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을까. 가장 무서운 것은, 잃고 있는 우리의 권리들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다. 잃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삶이 점차 ‘투쟁’으로 변해가고 세월호 유가족 들을 소위 ‘투사’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닐까.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객선의 이름이 하필 ‘세월호’다.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집회에서 부르는 ‘님을 위한 행진곡’에서 꼭 걸리는 대목. ‘세월은 흘러가도~산천은 안다’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부분. 오늘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말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히는 것’이라고. 잊지 않겠다던 약속들이 옅어져가는 이 가을에 다시 나는 3단을 생각한다.

3단
박노해

물건을 살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 것 단단한 것 단아한 것

일을 할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사람을 볼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덧붙이는 말

전남 광주시민 박수정 씨는 40여일 동안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 지킴이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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