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마다 방송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어. 왜 상관없는 주민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느냐!”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잘랐겠어? 그리고 회사가 망할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왜 내쫓아?”
“회사가 어려우면 정리해고 할 수도 있지! 전부 다 죽을 수는 없잖아?”
“다른 길 찾아봐. 10년이나 이러고 있어? 애들도 있을 텐데... 정말 무책임한 사람이네”
억울하고 분해서 시작한 싸움이 어느덧 10년!
정리해고의 아픔만큼 주위의 시선 또한 힘들고 괴로웠다. 절망과 좌절의 세월 속에서도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 온 세월이 10년째, 새삼 그 세월의 깊이가 피부로 다가온다. 정리해고자 78명 중, 50명이 싸움을 시작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희망 없는 싸움에 하나 둘씩 떠나갔다. 14명 남은 동지들 중에 한 달 여 전 또다시 2명이 투쟁을 포기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하려고!” 10년을 함께 싸운 동지 두 명을 떠나 보낼 때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야심차게 시작한 불매투쟁, 시작은 너무 좋았다
(정리해고 투쟁 8년째인) 2012년 5월 21일, 지긋지긋한 투쟁을 끝내야 된다는 절박함으로 과천 코오롱 본사 뒤에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투쟁 끝날 때까지 집(구미)에 가지 않을 작정을 하고 사계절 옷 보따리 싸들고 상경했고, 천막농성 1년 후 코오롱스포츠 불매투쟁을 시작했다. 자본에게 직접 타격을 주는 투쟁이 아니면 코오롱이 신경도 안 쓴다는 걸 알았고 현재의 여건과 조건에서 가장 타격은 불매투쟁 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시작은 좋았다. 꽃분홍색 불매 몸벽보를 입고 등산을 하면서 코오롱의 부당함을 알리자 등산객들이 지지하고 격려해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즌2를 준비했고 삶은 계란까지 나눠주자 더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불매 동참을 약속했다. 10만 명에게 계란 10만개를 나눠주는 목표를 세웠고 비록 4만개로 마쳤지만 코오롱이 전국주요 102개 산에 불매 가처분을 신청하는 사상초유의 황당함을 연출하는 것에서 보듯 큰 성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은 불매투쟁
시즌2까지의 반응과 호응에 고무되어 불매시즌3을 매장 앞 시위로 진행했다. 전국 270여 개 코오롱 매장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한 달간 집중 시위를 하면?
결과는 참담했다. 전국 동시다발 불매투쟁이었는데 한 달간 실질적으로 불매 시위가 진행 된 매장은 270여 개중 단 7개. 더구나 민주노총사업장에서 수 십억원의 코오롱제품을 단체선물로 구매까지 했다. 불매투쟁을 시작한지 1년이 넘었고 민주노총 중집에서 적극적으로 결의했지만 불매 사실조차 모르는 사업장이 부지기수이다. 집회 현장 등에서 코오롱스포츠 제품을 입은 조합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니, 굉장히 많다.
무관심과 불매투쟁은 해도 안 될 것이라는 불신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래도 계속 간다!
“불매투쟁 끝난건가요?” 가끔씩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요! 코오롱투쟁 끝날 때까지 불매는 계속 합니다!”
불매투쟁, 쉽지 않다. 그러나, ‘산에 갈 때마다 불매리본을 챙겨가고’, ‘아이디어 고갈로 고민이라면서도 매주 계란을 삶아 불매계란 인증사진을 보내주고’, ‘몰라서 샀지만 앞으로는 절대 코오롱 제품 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지금까지 열 분에게 불매 릴레이 기고글을 부탁했었는데 단 한명도 거절하지 않았다.
천막 농성 2년이 넘어가면서 일 때문에 잠시 집에 들렀다 아이들과 작별하고 온 날은 마음이 심란하다. 날씨마저 추워지고 또다시 겨울을 보내려니 걱정도 된다. 몸과 마음이 해가 갈수록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갈 것이다. 10년의 투쟁과 코오롱스포츠 불매투쟁으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서, 코오롱정투위 최일배